[이상락 성장소설] 하늘을 나는 돛단배 - 16회

바다가 부른다(2)

등록 2009.09.07 09:00수정 2009.09.0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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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에 당도하여 갯바위로 올라서자마자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종석이가 마을로 통하는 언덕길로 눈길을 주었다가 다급하게 말했다.
"야, 쩌그 가이내들이 바구리 갖고 고동 잡으러 내레오는 것 같은디?"
아닌 게 아니라 대여섯 명의 여자 아이들이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무리지어 갯가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직 우리들이 알몸을 하고 있는 모습은 발견하지 못 한 눈치였다. 아니 발견했다 하더라도 거리가 상당하였으므로 흉잡을 만한 데를 세세히 볼 수는 없을 것이었다. 우리는 젖지 않도록 머리에 얹어 둘렀던 옷을 풀어 후다닥 몸에 걸쳤다.

"자, 그럼 시방부터 볼락낶기를 해보끄나. 일단 낚수에다 잇갑을 요러엏게 꿰고…괴기들이 봤을 때 낚수 끄터리가 안 봬야 속아넘어 갈 것 아녀."
희원이가 소금에 전 갯지렁이를 낚시에 끼워 보이면서 가들막거렸다.
"준비가 다 됐으면 쩌그 몰밭하고 몰밭 새다구에다가 낚수를 퐁당 빠치고 요렇게 홀짝홀짝 하면 돼."
"벨 것도 아니구먼. 그라면 우리가 낚수를 몰밭에 땡길 줄 알었냐?"
종석이가 말했다. 우리는 희원이가 무슨 대단한 비결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별것 없었다. 낚시에 지렁이 미끼 끼우는 것도 그렇고, 몰이 우거진 곳을 피해서 낚시를 드리워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봇돌이 바닥에 툭, 하고 부딪치는 느낌이 감지되었을 때 그보다 약간 들어 올린 다음에 홀짝거리는 것이 볼락낚기의 기본이라는 것쯤 우리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기가 톡톡 건드린다고 바로 채뿔면 안 된당께. 고놈이 잇갑을 입안에 머금고 쑥쑥 잡어댕길 때, 그 때 올례채는 것이여."
녀석은 끊임없이 중얼댔다. 그 때 희원이의 낭창한 첨대 끝이 서너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었다! 잘 봐라 이. 요렇게 휙, 잡어채면 볼록이란 놈이 꼼짝없이…. 워매, 이거이 뭔 일이다냐."
너무 일찍 챈 바람에 빈 낚시만 허공으로 올라왔다. 선생노릇을 하다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번엔 나에게 신호가 왔다. 녀석은 톡톡 건드리는 절차도 뭣도 없이 다짜고짜로 낚싯줄을 쑤욱 잡아당겼다. 채 올렸다. 입질에 비해서 어째 검불처럼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낚싯줄을 따라 수면 위로 올라온 검은 물체를 보고서 누군가가 버린 가죽 허리띠 토막이 달려 올라왔나 생각했다.

"우헤헤, 진고재다!"
희원이와 종석이가 손가락질을 하며 동시에 소리쳤다. 내가 정식으로 낚시질에 나섰다가 처음 건져낸 어획물이 '진고재'라는 사실에 나도 적잖이 실망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녀석의 입에서 낚시를 뺀 다음, 버리지 않고 망태 밑바닥에 잘 넣어두었다.
"요놈을 꾸 묵으면 얼매나 맛나다고."
"그래도 진고재는 재수 없어."
"느그들 고재가 뭣인지나 알어?"
"그람 그걸 몰르냐. 그랑께 그 거시기가 머시기 해서 장개를 가도 애기도 못 낳고…. 호식이 즈그 아부지가 바로 고재, 고재, 진고재 아녀?"

우리가 '진고재'라 부르는 고기는 아마도 장어과에 속하는 물기고인 듯한데 일반 장어보다 더 납작하고 길이는 보통 어른 손으로 한 뼘 반 정도 되었다. 주위 환경에 따라 검은색을 띠기도 하고 갈색을 띠기도 한다. 언젠가 낚시질 다녀오던 사촌형으로부터 고놈 한 마리를 얻어서 송송, 칼집을 낸 다음 왕소금을 뿌려 아궁이 불에 구워먹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사람들은 낚시질 하다가 그 고기가 잡히면 재수 없어 했다. 사람들은 멀쩡한 물고기에다 '길이가 길기만한 고자'('고자'를 사전에서 찾으면 '생식기가 완전하지 못 한 남자'라 풀이하고 있다)라는 의미로 '진(긴) 고재(고자)'라는 이름을 붙여놓고서 재수 없는 물고기 취급을 했으니 해당 물고기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일 터였다.

당시 우리는 남녀 간의 성관계나 이성의 신체구조 따위에 관심이 왕성할 나이였는데 어른들이 은밀히 주고받는 얘기들 중에는 우리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킬만한 거리들이 많았다.
-충냄이 말이여. 고재가 틀림 없능가?
-고재가 틀림 없제. 구실을 못 한당께 그래. 큰 아들놈 호식이는 그 적에 그 집에서 머슴 살든 놈 씨가 분멩하당께. 아, 광대뻬가 특 불거지고 눈매 부리부리한 것이 영락없이 그 때 그 머슴하고 판을 박었다고 안."
-둘째놈은 그 씨가 떠돌이 땜쟁이 것이라고도 하고….
-아녀. 둘째 놈 애비는 우리 동네 사람 중에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이 돌든디? 쩌그 유자나무 집 그 머시기를 들먹이기도 하고….
-듣고 봉께 얼굴 생김이 영판 비슷하네 이.
-쉬잇!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소. 충냄이 귀에 들어가면 좋을 일 없응께.

그러니까 우리가 저마다 어른들로부터 귀동냥으로 물어온 정보를 종합하자면 이러했다.
'충남이라는 사람은 고자다. 따라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충남이가 외지에 나가고 없던 어느 달 밝은 밤에, 충남이의 아내는 헛간 옆의 머슴방으로 들어가서 통사정을 했다. 아이 하나만 갖게 해주면 나락 넉 섬을 주겠다고. 그날 밤 머슴이 그 청을 들어주었다. 물론 그 머슴은 나락 넉 섬을 챙기고 육지로 가버렸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내 동생 선길이와 동갑인 호식이다. 호식이를 낳은 지 이태 만에 충남이의 아내는 또 한 명의 아들인 호준이를 생산하였다. 그런데 호식이와 호준이는 말이 형제간이지 아무리 요리조리 뜯어봐도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더러는 둘째 호준이의 아버지로, 구멍 난 양은냄비나 양철물통을 때워주러 다니던 떠돌이 땜장이를 지목하기도 했으나 유자나무집의 칠구 아버지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들은 그 '고자 이야기'를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령 호식이 어머니가 달밤에 몰래 머슴방에 들어가서 머슴을 홀리면서 했음직한 제법 음탕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넣기도 하고, 땜장이가 납땜을 하면서 호식이 어머니를 이러저러한 말로 꾀었다는 얘기들을 보태기도 했다. 게다가 유자나무집 칠구 아버지가 호식이 어머니를 연앳골 시냇가로 불러내어서 잘 익은 유자 냄새를 피워서 어찌어찌했다는 등…

처음에 단편소설 분량이던 그 소문은 어느 사이에 대하장강(大河長江)으로 불어나 있었다. 무엇보다 어린 우리들 중 일부 짓궂은 아이들은 호식이 앞에서 아예 드러내놓고 '고재, 고재, 진고재!'라고 소리치거나 '느그 머슴 아부지 만나러 웃녘에 안 가냐?' 따위의 질문을 하고는 끼리끼리 키득거리곤 했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호식이와 그의 동생 호준이는 언제나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근래 '왕따'로 상징되는 집단 따돌림 현상이 어린이와 청소년 사회에서 얼마나 심각한 문젯거리가 되고 있는지, 그리고 인터넷에서의 인신공격성 허위사실 유포가 당사자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위해가 되고 있는지를 상기하면, 그 때 우리는 호식이와 그의 가족에게 나무도 큰 잘못을 저지른 턱이었다.


"또 물었다! 이번엔 쏨패이다!"
역시 희원이는 한 수 위였다. 녀석은 불과 삼십여 분 사이에 볼락 세 마리에다 꽤 큼지막한 쏨팽이 한 마리를 낚았다. 종석이도 볼락 한 마리와. 몸통 비늘에 울긋불긋 무지개무늬가 새겨진 각시고기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나는 아직 처음에 낚았던 '진고재' 한 마리가 고작이었다.
"선호야, 요렇게 해봐."
종석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녀석은 낚싯줄을 들어 올려 미끼를 새로 끼운 다음에, 희원이가 한눈판 틈을 노려서 희원이의 낚시 구덩이에다 봇돌을 빠뜨린 다음 본래의 자기 자리로 낚싯줄을 살살 끌어왔다. 그러니까 종석이는 낚시 경험이 풍부한 희원이 녀석이, 우리에게는 아무 구덩이에나 낚시를 드리우라 해놓고, 자신은 그 엿둥에서 가장 고기가 잘 무는 명당을 차지했기 때문에 그처럼 고기가 줄줄이 올라왔을 것이다, 그러니 녀석의 구덩이에 낚시를 빠뜨렸다가 거기 있는 고기를 자기 자리로 유인해오자, 그런 계산이었다.

"난 그따구 짓거리는 안 해."
난 정체모를 오기가 발동해서 종석이에게 그렇게 쏴주었다.
"이상하단 말여. 분멩히 톡톡 건드리기는 했는디 채 올례 보면 잇갑만 따 묵고 없당께."
희원이 쪽 고기를 물속에서 몰래 끌어다 낚아 올려보려는 시도가 먹히지 않았던지 종석이는 연신 빈 낚시를 채올리며 투덜거렸다.
"그라먼, 톡톡 건드릴 때 잡어채지 말고 낚수를 사알짝 들어 올례봐. 틀림없이 복재이가 따러 올라올 것잉께."
"참말로?"

희원이가 가르쳐준 대로 종석이가 살그머니 낚시를 들어올렸다. 아닌 게 아니라 복어 두 마리가 거의 수면까지 따라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그런데 정작 뒤이어서 복어를 실제로 낚아낸 쪽은 희원이였다. 복어는 입질이 대단히 간사해서 잇갑을 똑똑 따먹기 선수였다. 물론 낚시에 걸려 올라올 때도 있었으나 그럴 경우 녀석은 '진고재'보다 훨씬 더 야박한 대접을 받는 물고기였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 낚시에도 복어 한 마리가 달려 올라왔다.
우리는 잠시 낚싯줄을 내려놓고 그 두 마리의 복어를 장난감 삼아 한바탕 해찰을 피울 생각에 지레 신이 났다.

"요 못 된 자석들 땀세 우리 장인어른이 돌아가세부렀는디 내가 곱게 보내줄 것 같으냐."
희원이가 자신이 낚은 복어를 낚시에서 분리해내며 전의를 불태웠다.
복어는 갯바위 낚시질에도 잡히지만 멸치그물이나 주낙에도 심심찮게 걸려 올라왔다. 살집이 통통하고 큰 경우 어른들은 고놈들을 쉬 내다버리지 못 하였다.
-술 묵고 속이 징하게 쓰린디 복재이 요놈을 조깐 고아 묵세.
-그라다 죽어 이 사람아. 복재이 묵고 죽은 사람이 한두 사람이여?
-멍충하게 묵응께 탈이 생기제. 창수하게 핏줄하고 대가리하고 잘 띠내뿔고 한 나절만 푹 고으면 암시랑토 안 하당께. 독은 무신놈의 독, 맛나기만 하듬만.

속설로는 마른 대나무가지로 불을 때서 복어를 끓이면 복어 독에 화를 입을 염려가 없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실제로 즐겨먹는 사람들은 무시로 복어를 매운탕처럼 끓여 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내장을 빼내고 말려두었다가 구워먹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방과 후에 우리는 우리 동네 사람이 복어를 잘 못 먹었다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윤자 아버지가 그 사람이었다. 윤자네 집은 한 때 외지에서 머슴을 두 사람씩이나 들여서 부릴 정도로 그 섬마을에서는 살림살이가 상대적으로 넉넉하였고, 우리와 같은 학년이었던 윤자는 여자애들 중에서는 가장 공부도 잘하였으며 얼굴도 예쁘고 상냥하기까지 하였다. 1학년 2학기쯤에 나는 처음으로 윤자가 내 각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윤자도 나를 참 좋아하였다. 어느 날 나는 절구로 나락을 찧고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넌지시 이렇게 말했다.

"엄니, 나 요담에 커서 쩌그 윤자랑 겔혼하면 안 되까?"
"뭣이여? 쩌그 샘 옆에 사는 그 윤자 말이여?"
"응. 얼굴도 이삐고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도 영판 곱고…"
"후후후후훗. 우리 집 장남이 어째서 그런 요상한 생각을 다 했으까 이."
"그거이 뭔 소리여?"
"이놈아, 윤자는 너하고 같은 겡주 이씨여. 너가 윤자한테는 아제 뻘이랑께. 윤자는 우리 집안 가이내다, 그 말이여."
"뭔 소린지 몰르겄네. 그라먼 우리 굴전리 사는 이가들 집 가이내들은 다 내 각시가 될 수 없는 것이여?"
"그라제."
"그라먼 마가들 중에서 골라보라고? 거그는 맘에 든 가이내가 없는디?"
"거그서 골르지 말고, 이 담에 쩌그 웃녘에 가서 출세를 해갖고, 서울이나 어디 징하게 큰 동네에 사는 이삔 가이내를 골라서 장개를 들어야제."

그러나 서울 어딘가에 살고 있을 먼 훗날의 내 각시에 대해서는 통 실감이 나지 않았고, 나는 다만 윤자가 내 각시가 될 수 없다는 사실만이 섭섭하였다. 뒷산에 함께 나무하러 갔다가 나로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사연을 전해들은 마희원이가 그렇다면 윤자를 자기한테 달라고 했고, 나는 마음이 쓰렸으나 그러라고 해버렸다. 그 뒤부터 희원이는 공공연히 윤자가 제 각시라고 떠들며 돌아다녔다.

"어, 쩌그 저 사람들 시방 뭣 하는 것이여?"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우리는 학교가 파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외팽나무 고목이 서 있는 곳을 조금 못 미쳤을 때 오른쪽 바닷가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어른들 세 명이서 한 남자를 갯돌밭으로 질질 끌고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다가가서 보니 온몸을 늘어뜨린 채 사람들에게 끌려 다니는 이가 바로 윤자 아버지였고, 그를 갯자갈 위로 마구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윤자네 두 삼촌과 마을 소사였다. 빨리 집에 가라며 두 눈을 부라리는 윤자 삼촌의 표정이 너무 무서웠으므로 우리는 궁금증을 억누른 채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저녁, 윤자네 집에서 통곡이 흘러나왔다. 윤자 아버지가 결국 복어를 먹고 죽은 것이라 했다. 어머니가 이웃의 영길이 어머니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왜 윤자 아버지를 그처럼 갯자갈 위로 끌고 다녔는지 그 궁금증이 풀렸다.
"복재이를 묵고 그 독에 취하면 잠이 징하게 쏟아진다네. 잠이 들어불면 영 못 깨나고 죽어불 것 아닌가. 그랑깨 잠을 못 자게 할라고 사람들이 갯바탕에서 한바탕 끗고 댕기고 했제마는 아무 소용이 없드라네."  
그런 일이 있고난 뒤였으니 복어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야, 야, 이 복재이 배 조깐 봐라 이."
희윤이가 제가 낚아올린 복어를 손에 쥐고서 허연 배 쪽을, 거북손이며 담치 따위가 붙어 있는 울퉁불퉁한 갯바위에 살살 문질러댔고, 그러자 화가 난 복어는 개엑개엑 이 가는 소리를 내면서 나름으로는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려고 자꾸만 자신의 배를 부풀렸다. 순식간에 복어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잘 봐라 이."
희윤이가 바람이 탱탱하게 들어차서 아예 동글동글해진 복어를 갯바위에 올려놓더니 오른발 뒤축으로 힘껏 내리밟았다.
'빠앙!'
복어 배 터지는 소리가 바닷가 절벽에 부딪쳐 메아리를 만들만큼 크게 울려 퍼졌다. 나도 내가 낚은 복어를 바위에 패대기쳐 죽인 다음에 바다에 내던졌다. 녀석은 빵빵하게 부푼 배를 하늘로 향한 채 정처 없이 떠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몸속에 독을 품고 있었을 뿐, 그 복어들이 그처럼 부당한 학대를 당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는데….

"선호야, 물이 들기 시작한다. 낶기 그만하고 언능 건너와!"
어머니가 굴 바구니를 열무 웅덩이 쪽에 내려두고서 선호에게 집에 가자고 재촉하였다. 
"야, 이선호, 너는 오늘 그 진고재 한 마리밲이 못 잡은 것이여? 흐흐흐…"
희윤이와 종석이가 일부러 내 망태를 들춰보고서 키득거렸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을 터인데 영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야, 선호 너 첨대가 바다로 떠내레가고 있어!"
이제 그만 파하고 다시 여를 떠나려고 낚시를 바다에 담근 채로 낚싯대를 바위에다 아무렇게나 걸쳐놓고 손을 씻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낚싯대가 깊은 바다 쪽으로 동동 떠내려간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옷을 입은 채로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헤엄을 쳐서 대나무 첨대 끝을 잡고 다시 여로 건너왔다. 그런데 낚싯대가 자꾸만 다시 바다로 끌려가려고 했다.

"어어? 그라먼 첨대가 파도땀세 저절로 떠내려간 거이 아니라 큰 괴기가 낚수에 걸례서 첨대를 끗고 간 것인가? 어어, 어어어? 참말이네. 물었다!  크, 큰놈이 물었어!"
희원이와 종석이도 달려들어서 내 낚싯대를 함께 붙들었다. 녀석은 얼마나 힘이 센지 요동을 칠 때마다 낚싯대를 붙잡고 있는 우리 셋의 몸뚱어리가 이리저리 비틀거릴 지경이었다.
"우와, 강세다!"
강세(감성돔)였다. 그처럼 얕은 몰밭에서, 더구나 갯지렁이 미끼 정도에 감성돔이 잡히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다. 무지하게 큰놈이었다. 힘겹게 끌어올려서 어머니 쪽을 향해 두 손으로 번쩍 치켜들었다. 녀석이 도망가려고 온몸을 두어 번 힘차게 뒤채었는데, 때마침 비쳐든 저녁노을에 감성돔의 비늘이 황금처럼 번쩍 빛났다. 온몸에 짜르르 전율이 일었다. 밀물이 갯바위에 찰발찰박 부딪치는 소리가 정겹고도 사랑스러웠다.
#복어중독 #갯바위 낚시 #볼락 #갯지렁이 #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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