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체계가 사회불안 키운다

[책갈피] 웬델 베리 <삶은 기적이다>

등록 2009.09.10 17:16수정 2009.09.1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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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의 불완전성은 그 체계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나 그로부터 혜택을 입는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체계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체계의 불완전성이 아주 명확하게 보인다. - 웬델 베리, <삶은 기적이다>(녹색평론사, 2006, 박경미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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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녹색평론사

책표지 ⓒ 녹색평론사

"체계"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정한 원리에 따라서 낱낱의 부분이 짜임새 있게 조직되어 통일된 전체"라고 나온다. 사실, "체계"란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명령체계, 사상체계, 이론체계, 지휘체계, 교통신호체계, 세계체계 등등. 굳이 "부분과 전체"라는 철학적 명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오늘날 체계란 말이 지니고 있는 함의가 무엇인지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웬델 베리는 <삶은 기적이다>에서 바로 그 체계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그 체계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나 그로부터 혜택을 입는 사람들에게는 체계의 불완전성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체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체계의 불완전성이 명확하게 보인다고 꼬집고 있다.

 

여기에 "체계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나 그로부터 혜택을 입는 사람들에게 체계의 불완전성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알면서 모르는 척 외면할 때도 있다"는 말을 추가하면 좀더 완벽한 설명이 될 것 같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체계의 불완전성은 존재하게 마련이지만 최근 한국사회를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체계의 불완전성이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빈익빈 부익부(양극화),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체계의 불완전성은 점점 더 심해지는데 정작 체계를 만들거나 그로부터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시각은 일반인들의 시각과 한참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그로 인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일반인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이나 해명을 버젓이 내놓는다든지 하는 일들이 거의 매일 반복되고 있다. 정말로 웬델 베리의 말처럼 그들에겐 체계의 불완전성이 보이지 않는 걸까? 아니면 뻔히 알면서도 외면하는 걸까?

 

오늘 인용한 웬델 베리의 말은 간단해 보이지만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체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과 체계에서 소외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전혀 상반된 두 개의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첫째, 양측의 관계가 배타적일 경우, 체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체계의 불완전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반면 체계 내에서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체계 밖에서 체계의 불완전성을 감시하는 사람들을 포용하기보다는 무능력한 소외자로 낙인 찍을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체계 내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들 역시 체계 밖으로 몰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체계 내부와 외부 사이에 이분법적인 경계선이 그어지고 대립, 갈등 관계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둘째, 양측의 관계가 우호적일 경우, 체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체계의 불완전성을 감시하는 등대 같은 존재다. 체계 내에서 이들을 무능력한 소외자로 보지 않는 한 이들은 건전한 감시자로 기능할 것이다. 그로 인해 체계의 불완전성은 더욱 줄어들고 체계에서 소외되는 사람들도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도식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체계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체계 내에서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가 모색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은 바로 체계의 불완전성 자체를 줄여나가는 것이란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지고 보면 PD수첩, 촛불집회 등은 모두 체계의 불완전성을 감시하는 등대 역할을 한 셈이다. 웬델 베리의 말처럼 체계 내에서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체계의 불완전성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체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겐 체계의 불완전성이 좀더 명확하게 보이는 법이다. 차이가 있다면 바로 그 차이일 것이다.

2009.09.10 17:16 ⓒ 2009 OhmyNews

삶은 기적이다 - 현대의 미신에 대한 반박

웬델 베리 지음, 박경미 옮김,
녹색평론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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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델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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