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딸이 밤마다 하는 일?

젊은 니들이 팩 해야겠니? 나이든 엄마가 해야겠니?

등록 2009.09.11 16:32수정 2009.09.1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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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해주야 뭐해? 안 자?"
"측"
"책읽어? 그냥 자, 내일 학교 일찍 가야잖아"
"측!"
"잘 안들려. 크게 말해"
"측!"
"에이, 방문 연다. 뭐라고?"
"에이, 엄마는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팩 한다고!"
"야! 넌 어제도 팩하고 오늘도 팩하고, 엄마는 한번도 안 하는 팩을 왜 너희는 허구한 날 하냐?"
"엄마는 어차피 나이 들어서 안 해도 되지만 우린 젊잖아. 그러니까 피부관리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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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딸이 밤마다 하는 일, '책'읽는 것이 아니라 '팩'하는 일. ⓒ 권영숙


에고, 그럼 그렇죠. 딸이 한밤중에 책을 읽을 리가 없죠. 최대한 팩이 안 움직이게 말을 하니 '팩'을 '측'으로 알아듣고, 더 미루어 '측'을 '책'으로 들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

큰딸이 기숙사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일주일 전 제게 밤 11시 전에 전화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시간을 보니 10시 57분. 너무 늦어서 하지 말까 하다가 또 왜 안 했느냐고 닥달할 딸이 두려워 눈 딱 감고 기숙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기숙사 선생님이 한참동안 딸을 찾아 헤매는 듯 부르는 소리가 나서야 딸은 전화를 받습니다.

"으므니(어머니), 열흔시가지 흐르고 해드니 여시 오시칠분에 흐셨네으. 차 자하셔서여(열한시까지 하라고 했더니 10시 57분에 하셨네요. 참 잘하셨어요.)"
"한길아 너 이빨 아파? 왜 이를 앙다물고 그래?"
"으므니(어머니), 지그 으므니께서 즈가 픅을 하는데 저화를 흐셔서 무이 즐즐 흐르그 있거드요, 하슬 마씀 드 끄나셔스면 끄느시죠(지금 어머니께서 제가 팩을 하는데 전화를 하셔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있거든요. 하실 말씀 다 끝나셨으면 끊으시죠)."


어이가 없습니다. 전 이빨이 아픈 줄 알고 얼마나 놀랐게요. 기숙사 학교에서 유일하게 치료가 잘 안되는 것이 치과치료입니다. 그래서 가정학습이나 방학 때 미리 점검하고 학교로 가야하기 때문에 늘 신경이 쓰입니다.

팩을 해도 젊은 딸들보다 엄마가 더 하는 게 맞지!

어쨌든 이 조막만 한 딸들이 엄마는 하지도 않는 팩을 마음껏 자유자재로 하시고 계십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네 피부는 젊어서 탱탱하고, 엄마는 이제 주름지려고 하는데 해도 제가 해야죠. 왜 지네들이 더 밤이면 밤마다 설치냐구요. 같잖게.

통 미용에 관심이 없던 큰딸이 고등학생이 되더니 여름방학 내 팩을 한다, 밤에 운동을 한다 설쳐댔습니다. 살을 빼야 수영복도 폼나게 입고, 민소매 옷도 입는다나요? 언니가 그러니 덩달아 동생은 더 설칩니다. 가뜩이나 해주는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예뻐지는 법"에 관계된 책도 여러 권 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중고시절 유독 학교에서 멋 부리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머리를 괜히 둥글게 올리고, 귀밑머리를 살짝 꼬아서 내리고, 딱 붙는 청바지를 입고, 유명 브랜드 신발을 신고, 심지어 화장을 살짝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멋 부리지 말고 공부나 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내 학창시절

제가 학창시절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엄마가 "얼굴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구박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나름 꽤 미용에 신경을 쓰고 싶긴 했는데 일단 귀찮음이 최대의 적이었고, '머니'가 두번째 적이었습니다. 용돈을 전혀 안 주는 부모님을 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미용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전 딸들이 저와 달리 멋 부리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이 무척 좋습니다. 가끔 부지런히 멋 부리는 딸들 덕분에 팩도 얻어 합니다. 해주가 감자를 직접 갈아서 팩을 만들면 저도 붙여줍니다. 물론 좀이 쑤셔서 딱 한번 하고는 두 손 들고 안 하지만요.

날 흐릿한 것이 은근한 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멋 #팩 #초딩 #대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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