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을 선택할 권리를 허하라"

성매매특별법 시행 5년... '성노동자 권리지원과 비범죄화 위한 토론회' 열려

등록 2009.09.21 19:49수정 2009.09.2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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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는 성매매특별법 5년을 맞아 '성노동자 권리 지원과 성노동 비범죄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 권박효원


"왜 돈을 받고 하는 섹스는 비윤리적이고 용납 불가능한가?" (인도 성노동자 선언 중)

성매매특별법이 시행 5년을 맞았다. 지난 17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제1회 'STOP 성매매' 영화제를 열었다. 그리고 같은 날, 한국여성운동연합 후원행사가 열린 서울 봉은사 앞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이 법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마스크에 모자·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법제정 당시 "생존권을 보장하라"면서 시위를 벌였을 때와 같은 차림새다.

금기의 '성노동'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성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성노동자 지원활동 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도 만들어졌다. '준비모임' 활동가들은 "성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 인권침해를 막고 이들의 일과 생활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성노동을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1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성노동자 권리 지원과 성노동 비범죄화를 위한 토론회'에서는 "'성노동하지 않을 권리'와 '성노동할 권리'가 모두 성노동자들의 권리"라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이 나왔다. 모든 성노동자는 성노동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며, 공권력은 폭력과 인신매매에만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전화방에서 일하다가 부당해고 당한다면?

현행 성매매특별법은 성구매자만 처벌하고 폭력·감금 등의 피해를 입은 성판매자는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성노동하는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국내 지원단체들의 주장이 반영된 규정으로, '윤락녀', '창녀', '범죄자'로만 바라보던 기존의 가부장적 관점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 성노동자 운동가들은 "성매매를 폭력 자체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다양성을 무시하고 성노동자를 주체성 없는 '희생자'로 보는 단순논리라는 것이다.


오김숙이 '준비모임' 활동가는 "성매매특별법에 따른 권리는 피해를 입증했을 때 사후적으로 보장되는 것으로 극히 소극적이다"면서 "성매매 불법화에 따른 경찰 단속과 입건·처벌로 인해 성노동 여성들을 일상적 공포를 겪는다"고 주장했다.

'구매자 처벌' 방식의 대표적 모델인 스웨덴의 경우, 고객들이 단속을 피해 은폐된 공간을 선호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콘돔을 거부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 때문에 성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안전하지 못한 섹스를 하게 된다. 스웨덴을 따라 법안을 만든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반면 2003년 모든 성노동이 비범죄화된 뉴질랜드에서는 성노동자가 이유없이 고객과의 섹스를 거절할 권리가 있다. 독일은 2002년 '합법적 매춘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졌고, 성노동자들이 직접 자신의 사건을 가지고 법정에 선다.

"고객만 처벌해도 성노동자들에겐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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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성노동자 권리 지원과 비범죄화 토론회'에서 대만 코스와스 활동가 리 유칭씨가 발제하고 있다. ⓒ 권박효원

이날 해외 성노동자 권리지원 사례를 발표한 사미숙 '준비모임' 활동가는 "성노동이 불법인 나라에서는 성노동자들이 폭력과 차별에 더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성노동이 불법인 나라에도 성노동자운동이 존재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노동자들은 자조조직을 만들고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에 필요한 건강과 안전시스템을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영국의 성노동자노동조합은 전화방 노동자의 부당해고를 철회시켰고, 성노동자들을 위한 무료영어 교육과정을 위해 2000파운드를 모금하기도 했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는 대만 성노동자와 후원자 조합인 코스와스(COSWAS, Collective of Sex Workers and Supporters) 활동가 리 유칭씨가 직접 자신들의 활동 상황을 설명했다. 대만은 성산업과 연관된 제3자에 5년 이하 징역형을 내리도록 하고 있으며, 성노동자는 최대 3일까지 구금될 수 있다. 반면 고객은 처벌되지 않는다.

1998년 설립된 코스와스는 매년 '성노동자 문화축제'나 길거리 연극을 벌이고 성노동자 비범죄화를 위한 시위를 이어왔다. 각종 선거 때마다 캠페인도 벌여 지난 2008년 총통 선거에서는 세창팅 민진당 후보에게 '성노동 비범죄화' 공약을 받아냈다. 심지어 지난 2002년에는 활동가 왕핑핑씨가 직접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부터 코스와스 자원활동을 시작한 리 유칭씨는 자신의 목표를 "성노동 합법화"라고 잘라 말했다. 성노동자가 하는 일은 다른 노동자가 하는 일과 하나도 다르지 않고, 돈을 벌고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오김숙이 활동가는 "성노동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유지시킨다"는 주장에 대해 "성매매만이 부도덕한 성관계냐"고 반문하면서 "이후 성노동자 권리지원 운동은 성노동자를 억압하는 '정숙한' 성도덕의 위선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매매만 부도덕해?"

한국의 성노동자운동은 갈 길이 멀다. 성노동자운동조직이었던 '민주성노동자연맹' 역시 활동을 중단한 상태고, 지난 2005년 출범한 성노동운동네트워크도 그동안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은미 '준비모임' 활동가는 "지난 4년 동안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구체적인 계획 없이 운동의 방향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른 반(反) 성매매단체들과 달리 우리는 변호사 한 명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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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특별법 시행 첫날인 2004년 9월 23일 밤 8시30분, 미아리 텍사스 업주와 업소 여성 500여명은 "생계를 보장하라"며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나 이 시위는 업주들이 조직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 오마이TV 김도균


'성노동자 지원활동 준비모임'은 아직 활동의 내용과 범위를 명확하게 정하지 않고 있다. 아직 10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여 방향을 논의하는 걸음마 단계다.

문 활동가는 이날 모임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하는 제안서를 읽으면서 "성노동자를 지원한다는 게 무엇이고 무엇을 지원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지만, 말 그대로 준비모임부터 해보자"면서 "이런 토론회 자리를 통해 모임이 (구체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가장 가까운 모델은 성노동이 불법화되고 유교적 문화까지 유사한 옆 나라 대만의 코스와스다. '준비모임'은 오는 22일 코스와스 활동가들과 간담회를 열고 성노동자 운동사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성매매특별법 #성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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