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꽃게 양념무침은 '밥 사기꾼'

어머니 손맛 계승한 아내

등록 2009.09.24 09:56수정 2009.09.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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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에 앞서 아내 흉부터 봐야겠다. 아내 요리 솜씨가 별로인 것은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까 절망적이었다. 결혼하고 보름이나 지났을까, 어머니가 "아가, 애호박 하나 사오그라!"라고 하니까 이내 달려가더니 오이를 사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님들은 "병원에만 있었던 사람이 뭘 알겠느냐!"며 두둔했다. 어머니도 "야야, 차차로 배워가믄 된다!"며 위로했다. 남편 처지에서 고마웠다. 그러나 나는 조그만 실수도 꾸짖고 흉보더니 아내 잘못에는 너그러워 한편 불만스럽기도 했다.

호박 사오라니까 오이 사온 얘기는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서, 아내가 화제에 오를 때마다 얘기 소재가 되었다. 지금도 형제들이 모이면 당시 얘기를 하며 웃는데, 아내는 오이가 긴 호박처럼 생겨서 사왔을 뿐이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내가 '어머니 손맛'을 계승하기까지는 얼추 15년 넘게 걸린 것 같다. 된장찌개 맛이 괜찮아지더니 어느 날 '무젓'(고향에서는 '꽃게 양념무침'을 '무젓'이라 했음)을 무쳐서 내왔는데 어머니 손맛 그대로였다. 해서 형수와 누님들에게 자랑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맛을 보여주면서 인정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월까지는 수게, 정월부터 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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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움직이는 꽃게들. 올해는 꽃게 풍년이라고 하지만, 1kg에 1만3천 원이라니, 자주 사먹을 수 없는 가격이라서 유감이다. ⓒ 조종안


제철인데도 값이 워낙 비싸 차일피일 미뤄왔는데, 더 늦기 전에 맛이나 보려고 아내와 해망동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예상대로 꽃게가 풍년이었지만, 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작년보다 1kg에 2,000~3,000원 정도 싸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자기들 세상을 만나 신나서 춤을 추는지, 손님을 부르는지, 발을 요리조리 움직이는 놈들은 1kg에 1만 3천 원이었고, 죽었어도 싱싱한 놈은 1kg에 1만 원이었는데 양념무침을 해먹을 거라서 죽은 게 2kg를 사왔다.

살아서 움직이는 게는 간장게장을 담아 먹을 때 좋고, 죽은 놈은 양념무침을 해먹을 때 좋은데, 손으로 들으면 묵직하게 느껴지고, 손가락으로 껍질을 눌러 촉감이 단단하고 탄력이 있으면 싱싱하고 살이 꽉 차있다는 표시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살아 움직이는 게를 선호하는 데 잘못된 선입견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움직이는 자체가 싱싱한 맛을 보장한다. 하지만, 수조 탱크에서 며칠씩 고생하면서 살이 빠진 꽃게보다, 잡자마자 곧바로 죽어서 그날로 어시장에 나온 놈이 더 흐무지고 맛도 좋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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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장 단지에서 건져낸 게. 배 무늬가 뾰쪽한 왼편이 수게이고, 둥그런 모양의 오른편이 암게이다. ⓒ 조종안


꽃게는 12월까지는 수놈 맛이 좋고, 정월부터는 암놈을 먹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거래처 아주머니 말씀인데, 껍질이 약간 보라색을 띤 싱싱한 꽃게는 맛이 고소하고 달착지근한데다 영양가도 높아 돌이 지난 어린아이들 이유식으로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최소 재료로 최고 맛을 내야

어머니 손맛을 그대로 계승한 아내가 꽃게를 다듬어서 양념무침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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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고소한 맛, 담백한 맛을 지닌 꽃게는 양념무침을 할 때 너무 많은 종류의 양념이 들어가면 특유의 게 맛을 잃어버리기 쉽다. 해서 정성과 손맛을 무기로 최소한의 재료로 최고의 맛을 내야 한다. 그래야 개운한 맛까지 즐길 수 있으니까.    

게는 되도록 손으로 다뤄야 하며, 싱싱하다고 생각되면 너무 깨끗하게 닦아내지 말 것을 권한다. 민물에서 잡히는 물고기와는 다르니까. 뾰쪽한 발끝을 잘라낼 때는 가위를 사용하는데, 게딱지 내장과 왕발 속살은 모두 긁어내 함께 버무려야 한다.  

파는 대파보다 '조선파'로 불리는 '쪽파'를 잘게 썰어 넣는 게 좋다. 주로 설렁탕이나 돼지고기 찌개, 생선 내장찌개에 들어가는 대파는 맛이 너무 진해서 고소하고 담백한 특유의 게 맛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매운 풋고추와 청양 고추를 썰어 넣는데, 양념이 묻어도 아이들이 쉽게 보고 골라낼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썰어야 한다. 어렸을 때 갑자기 매운 고추를 씹고 물로 입을 헹구느라 밥도 못 먹고 고생했던 경험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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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게 살 위에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얹어놓은 파와 청양고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 조종안


고춧가루도 한 번에 적량을 넣으려 하지 말고, 설탕, 다진 마늘, 진간장 등과 함께 적당히 넣고 수저로 버무리면서 눈과 입으로 맛을 봐가며 조절하면 실수가 없다. 고춧가루는 조금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될 정도가 좋다. 요리가 끝나면 국물과 살 속으로 스며드니까. 

진간장 역시 한 번에 간을 맞추려 하지 말고 파, 고추, 설탕 등 양념 위에 뿌려가면서 버무리는 게 좋다. 간장도 요리가 끝나면 고춧가루처럼 국물과 살 속으로 스며드니까 처음엔 조금 짭조름하게 간을 맞추는 게 좋다.    

결국, 눈짐작으로 넣는 파, 고추, 설탕, 마늘, 진간장과 꽃게 비율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맛이 결정되는데 노하우가 쌓이려면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각오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작은 게 왕발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 칼등으로 두세 번 쪼아 넣으면 되지만, 큰 꽃게는 마디를 잘라 젓가락으로 쑤시면 생선회처럼 그냥 먹어도 되는 연한 살이 몽땅 빠져나오는데, 버무릴 때 양념과 어우러지면서 양념무침의 진국이 된다.

가시가 있는 중간 마디도 버리지 말고 칼등으로 몇 번 쪼아서 함께 버무린다. '쪽쪽' 빨면서 발라먹는 재미도 쏠쏠하거든. '게 발은 앞사람 얼굴을 보면서 발라먹는 재미이고, 속살은 살짝 훔쳐먹는 재미'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매콤하고 달콤하고 고소한 진국에 뜨거운 밥을 비벼서 막 담근 파김치와 함께 먹으면 환상적이어서 흔히 '밥 도둑'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밥 사기꾼'으로 표현하고 싶다. 아내의 꽃게 양념무침은 먹을 때마다 밥을 억울하게 사기당한 기분이 들어서다.

꽃게 양념무침은 금방 먹어도 맛있지만, 하루쯤 지나면 게의 특유한 맛이 양념에 골고루 스며들면서 침샘을 더욱 자극하는데, 5일쯤은 냉장고에 보관해 놓고 아껴먹는다. 조금씩 변하는 맛을 음미하면서 감사하게 먹는 것도 즐거움이요,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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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버무린 꽃게 양념무침. 부부가 마주앉아 얼굴을 보며 게 발을 발라먹는 것도 즐거움이요 행복일 것이다. ⓒ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우리집 대표음식' 응모글


덧붙이는 글 '우리집 대표음식' 응모글
#아내 #꽃게 #양념무침 #밥 사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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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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