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금지법 첫 공청회... 찬반 고성 오가

법 제정 앞에 산적한 '숙제' 확연히 드러나

등록 2009.09.30 21:00수정 2009.09.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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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와 민주당 전병헌 의원 공동주최로 인종차별금지법 첫 입법공청회가 30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 이경태


"외국인 범죄 사건을 매스컴에서 보도하고 있습니까? 바로 우리 내국인이 역차별을 받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 테러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모욕죄도 있는데 인종차별금지법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인종차별금지법을 환영해야 할지 고민됐었는데 확실해진 것 같습니다. 심지어 같은 국민이지만 혼혈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모욕과 차별을 받는 분들도 있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저는 형사처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찬반이 팽팽했다. 참석자들의 발언 신청이 이어졌고, 누군가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다른 입장을 가진 참석자 몇 명은 "의사진행 발언을 혼자 하냐", "이게 무슨 공청회라고 그만둬라" 등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민주당 전병헌 의원실 공동 주최로 30일 오후 열린 인종차별금지법 첫 입법공청회. 인종차별금지법 앞에 산적한 '숙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질의·응답시간 중 벌어진 방청객 간의 격론은 그 중 하나인 우리 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차일 뿐이었다.

[숙제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우리 사회 안의 인종차별' 인식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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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열린 인종차별금지법 공청회 질의 응답시간에 찬반 양측의 방청객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등 인종차별에 대한 우리 사회구성원 간의 인식차를 명백하게 보여줬다. ⓒ 이경태


"강원도 원주의 흑인계 혼혈인 주아무개씨는 경찰을 폭행해 공무집행방해죄로 입건됐다. 경찰이 주씨한테 '튀기네, 어디에서 왔냐'며 먼저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 주씨가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서 한국인임을 밝히자, 되레 그 경찰은 '네 엄마가 양갈보구나'라며 주씨를 자극했다. 결국 싸움이 벌어져 주씨가 입건됐다. 어떤 자식이 어머니가 모욕을 당하는데 열이 받지 않겠나?"

국내 최대 혼혈인 단체인 국제가족한국총연합 배기철 회장은 혼혈인으로서 겪는 차별 사례를 하나씩 소개하며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배 회장 본인도 이탈리아계 백인 미군과 한국인 어머니를 둔 혼혈인이다.


배 회장은 "얼마 전에는 경기도 평택의 16살 흑인계 청소년이 주위의 멸시와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육교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한 사건까지 발생했다"며 "(우리 사회는) 당나귀와 말 사이, 다른 종끼리 태어난 종을 비하하는 '튀기'란 말을 같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쓰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 박완석 간사는 "이 법은 우리 국적을 취득한 귀화 한국인 및 그 자녀에 대한 법적·제도적 차별이 없음에도 이들을 기존 한국계 국민들과 분리했다"며 우리 사회 안의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차를 분명히 보였다.

그는 특히 "인종차별금지법은 국민과 외국인을 동일한 비교대상으로 놓는 오류를 범했다"며 "우리 국민과 외국인의 공통분모는 '인간'이기에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모든 기본권적인 생활영역에서 국민과 같은 권리를 취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종차별에 대한 법적 개념과 정의조차 제대로 내려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형벌까지 부과하는 인종차별금지법은 오남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차별의 입증 책임을 피고소인이 지고 있는 만큼 이는 오히려 자국인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숙제②] 한국의 법제는 이주민에 대한 철저한 차별과 배제에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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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헌법과 국제 조약 등에 의해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이 인정됨에도 기존 법 중 상당수가 외국인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배제하는 방향으로 제정됐다고 비판했다. 인신보호법 역시 '출입국관리법에 의해 보호된 자'를 법 적용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 이경태


법무법인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한국의 기존 법제가 이주민에 대한 철저한 차별과 배제에 기초하고 있다"며 "입법예고된 인종차별금지법이 이런 기존 법령과의 관계 및 수정방향 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행정의 공정성·투명성 및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정절차법은 외국인의 출입국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는 적용되지 않는다. 귀화·난민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인종차별금지법에서 전반적인 생활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한다고 했지만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국내 이주노동자들에게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없다. 법제적으로 이들이 배제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재외 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역시 마찬가지다. 황 변호사는 "이 법 역시 출입국관리법 시행령과 법무부장관 고시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의 가난한 동포를 사실상 배제하거나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다문화'에 대한 잘못된 강조와 정책이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며 "유럽에서 다문화 정책 일환으로 이주민들을 위한 학교를 단독으로 짓거나 하는 것들이 오히려 이주민들을 하위계급화시킬 수 있고, 사회적 갈등을 극대화시키기도 했다"고 성급한 법 제정으로 인한 부작용을 경계했다.

김세원 외교통상부 인권사회과 서기관도 "외교통상부는 가입·비준된 국제협약 준수와 국제사회의 요청, 인종차별금지 실효성 등을 위해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한다"면서도 "기존 법령, 정책과 충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법무부, 노동부, 보건복지부 해당부처와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숙제③] 차별금지법이냐, 인종차별금지법이냐?

2007년 무산된 차별금지법 논의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정혜실 다문화가족협회 대표는 "법 제정이 능사일지는 고민해봐야 한다"며 "고용의 문제에서만 봐도 차별은 성과 인종이 결부되어 나타나는데 이처럼 중첩되서 나타나는 차별 문제 모두를 '인종차별'이라는 화두로 풀어낼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정 대표는 "법을 제정한 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개정·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것부터 논의가 다시 되어야 한다"며 "지난 17대 국회 때 입법이 무산됐던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논의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변호사 역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번 인종차별금지법 입법예고를 계기로 해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일반에 대해 제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인종의 문제, 국적의 문제 만이 아니라 제반적인 차별이 종합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인종차별금지법을 입법예고한 전병헌 의원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크게 진전되지 못한 것은 성소수자, 종교 문제 등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며 "인권선진국에서도 논란 중인 성소수자 문제나 민감한 종교 문제 등을 포함해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논의한다면 당장 해결이 시급한 인종차별 문제 해결이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전 의원은 이어, "공청회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다수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개선된 안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인종차별금지법 #혼혈 #재외동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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