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억짜리 장학재단 갖고 올 수 있을 것"
 청와대, '삼성재단 삼키기' 조직적 개입 의혹

[단독] 전직 교육수석-비서관 및 교육부 전방위 압력 행사 정황... "손병두 이사장 만들어라"

등록 2009.10.11 23:41수정 2009.10.12 08:23
0
원고료로 응원

청와대 본관(자료 사진). ⓒ 이종호


지난 8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하 삼성장학재단)의 한국장학재단 편입 백지화를 공식 발표했지만, 정부의 '이사회 장악 시도' 등 외압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2월부터 청와대와 교육부가 '8000억짜리 삼성장학재단 삼키기'에 전방위적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천세영 전 교육비서관 "삼성장학재단 갖고 올 것"... 청와대의 뜻? 

a

안민석 민주당 의원. ⓒ 권우성

11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안민석 의원(경기 오산시, 민주)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장학재단을 한국장학재단에 편입시키기 위한 논의가 본격 시작된 것은 지난 2월.

당시 한국장학재단 설립준비위원회 1차 회의록에 보면, 천세영 전 청와대 교육비서관(현 충남대 교수)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갖고 있는 7500억원을 엄밀히 따지면 여전히 삼성이 갖고 있는 형태이므로, 사회적 명분에 의해 (한국)장학재단이 설립되면 재단으로 갖고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 시절 공약이었던 장학재단 설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처음부터 민간의 삼성장학재단을 '밑천'으로 삼을 구상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천 전 비서관의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와 이주호 현 교육부차관,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의 긴밀한 관계 때문이다. 이경숙-이주호-천세영 세 사람은 인수위 시절 각각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사회문화분과위 간사, 사회문화분과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인수위 해체 뒤에도 이주호-천세영 두 사람은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과 교육비서관으로 호흡을 맞춰 일했다.


인수위 시절 세 사람은 '맞춤형 국가장학제도 구축'을 192개 국정과제의 하나로 선정했다. 이들은 또 국가장학제도 구축의 한 축으로 민간재단, 특히 삼성장학재단 통합을 이미 논의하고 있었다. 

한국장학재단 설립준비위원회가 구성된 올해 2월에도 세 사람은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경숙)과 설립준비위원(천세영),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이주호)을 각각 맡아 업무 연관성이 깊은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천 비서관의 '삼성장학재단을 갖고 올 수 있다'는 발언은 혼자만의 구상이 아닐 개연성이 높다. 인수위의 '국가장학제도' 공약을 마련한 세 사람의 의중이 발언에 담겨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곧 청와대의 뜻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천 전 비서관은 11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오래된 일이라 삼성장학재단을 갖고 오자, 말자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장학재단의 기조가 연계 정보를 통합해 학생들이 풍부하게 장학금을 이용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하자는 것이었고, 삼성장학재단 통합 역시 그런 일반적 기조 위에서 논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장학재단 준비위원으로 일할 때는 청와대를 나온 뒤라 이주호 차관과 (삼성장학재단 통합과 관련한) 얘기를 한 적 없다"고 덧붙였다.

a

지난 2008년 1월 30일 오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영어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공청회'에 참석한 천세영 자문위원, 이경숙 인수위원장, 이주호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서울시교육청, 삼성장학재단 '정관 개정' 시도    

그러나 '삼성장학재단 편입 작전'은 착착 진행됐다. 지난 3월 9일 서울시 중부교육청은 갑자기 삼성장학재단에 공문을 보내 재단 해산에 대한 정관 삭제를 요구했다.

삼성장학재단 정관 제36조(해산)는 "이 법인을 해산하고자 할 때에는 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감독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단 설립자의 의사에 반하여 해산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서울시 중부교육청은 이 중 "설립자의 의사에 반하여 해산할 수 없다"는 부분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이 부분이 삭제되면, 이사회 의결에 따라 언제든지 해산이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청와대가 이사회만 장악한다면 한국장학재단으로의 편입 등도 쉬워지게 된다. 하지만 삼성장학재단이 강하게 반발해 정관 개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엔 서울시교육청이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6월 18~19일 이틀간 삼성장학재단에 전격 감사를 실시해 '표적 감사' 논란이 일었다. 감사장에는 서울 중부교육청 관계자가 나와 재단 해산에 관한 정관 개정을 또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삼성장학재단 감사에 투입된 서울시교육청 감사반은 "공정하고 체계적인 재단 운영 및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고, 정관 개정은 또 한번 무산됐다.

신인령 이사장 "서울시교육청, 전 정부 선임 이사 교체 요구"

8월 이후에는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노골적인 이사회 장악 개입이 시작됐다. 이 같은 정황은 삼성장학재단 이사회 회의록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의 고위간부가 신인령 삼성장학재단 이사장을 직접 찾아와 올해 9월 임기가 끝나는 이사 7명 자리에 정부측 인사를 넣어야 한다고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도 있다.

'임기만료 임원 선임에 관한 건'을 안건으로 상정한 지난 8월 21일자 회의록에서 신 이사장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오늘 안건처리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서울시교육청은) 전 정부에서 선임된 이사들이므로 임기 만료된 이사들은 현 정부에서는 연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달 24일 회의록에서도 신 이사장은 "교육부 쪽에서는 임기만료 임원 모두를 교체하기 위한 7명의 명단을 준비해 뒀다"며 "적어도 공석인 2명의 자리라도 추천하길 원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타 부처가 산하기관장을 내몰던 수법을 서울시교육청이 그대로 따라한 셈이다. 결국 이틀 뒤인 26일 이사회에서 손병두 KBS 이사장과 신영무 변호사가 삼성장학재단 이사로 선임됐다.

하지만 교육부의 삼상장학재단 장악 시나리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엔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이 'MB맨' 손병두 이사를 이사장에 앉히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7일 신인령 이사장 등의 임원취임 승인신청을 허가한 서울시 중부교육청은 열흘 뒤인 18일 갑작스럽게 "임원취임승인서를 정정한다"며 신인령 이사장을 '이사'로 바꾼 뒤 "새 이사장을 선임하라"고 지시했다. "21일 이사회에서 이사장 선임에 대한 의결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8월 21일자 회의록에는 "만장일치로 신인령 이사장의 연임에 동의하다"는 결론이 명확히 나와 있다. 이는 서울 중부교육청이 이사회 의결도 무시한 채 압력을 통해 이사장을 바꾸려는 부당한 시도로 보인다.

'신인령 이사장 연임' 결정에도 교육부는 "손병두로 바꿔라"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이 낙점한 차기 이사장은 손병두 이사라는 게 삼성장학재단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다. 

지난 9월 28일 교육부 고위관계자는 삼성장학재단 관계자를 만나 "손병두 이사를 이사장으로 만장일치 통과시켜주기를 바란다"고 공공연히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삼성장학재단측이 "장관의 뜻이냐"고 묻자 그는 "어떻게 장관 개인만의 뜻이겠느냐"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 윗선, 즉 청와대가 개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과 이주호 차관이 이사장 및 이사진 교체를 통한 삼성장학재단 장악 시도를 모르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지난 6일 교과부 국정감사에서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 두 사람은 위증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특히 12일에는 '신임 이사장 선임의 건'을 안건으로 상정한 삼성장학재단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손병두 이사장'이 결정된다면, 그동안 제기된 청와대의 '삼성장학재단 장악' 의혹은 신빙성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a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이주호 1차관이 6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한국장학재단 #신인령 #이주호 #손병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3. 3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4. 4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5. 5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