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에게 충성하는 국가

등록 2009.10.12 11:55수정 2009.10.1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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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성은 침해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기구의 의무다."

 

1966년 개정된 독일연방 헌법 1장 1조다. 인민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보다 나라가 인민을 위해 무엇을 먼저 할 것인지 선언한 독일연방 헌법 1장 1조는,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면서 인민의 의무를 먼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생소하다.

 

'인민에게 충성하는 국가'는 또 있다. <한겨레21> 제779호에 실린 기사 일부분이다.  

 

1996년 제정된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의 1장 1조는 이렇다. "하나의, 주권을 가진, 민주적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다음의 가치에 기초해 있다. 인간의 존엄, 평등의 성취, 인간의 권리와 자유의 신장, 반인종주의 및 반성차별주의. (후략)"남아공 헌법에도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조항이 있다. "정부와 국가의 모든 기관은 (중략) 공화국 인민의 좋은 삶(well-being)을 공고히 하며, 헌법과 공화국과 그 인민에게 충성한다."(한겨레21 <헌법이여, '국가의 의무'를 담아라>-2009.09.25 제779호)

 

헌법 1조가 국가는 인민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명시한 남아공 헌법은 정말 가슴떨리게 한다. 대한민국 권력기관과 기득권 세력이 보면 통탄할 일이고, 나라를 말아먹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사실 우리 헌법에 '국민'이라는 용어부터 문제다. 국민은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때 '황국신문'의 줄임말이다. 왕에게 충성하는 사람, 통치자의 사람, 그것이 아직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단어가 국민이라는 단어이다.  인민이 북한이 쓰는 단어라는 이유로 색깔론으로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국민보다 인민은 분명 인간 존엄성을 높이는 단어임은 분명하다.

 

국가가 아직도 사람을 지배하고 통치하고 다스리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십 년 전 개인의 집회시위 참여 기록까지 국가가 관리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인민에게 충성하는 국가라고 헌법 1조가 강조한 남아공과 시위 참가자 30년 전 시위 전력까지 샅샅이 뒤지는 대한민국, 과연 어느 나라가 품격 있는 나라일까. 나라 품격을 높이는 것은 국제대회를 몇 개 개최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존엄성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켜줄 때 가능하다.

 

한겨레는 12일 김유정 민주당 의원이 11일 경찰청에서 받은 '범죄정보관리 시스템'(CIMS·심스) 운영 현황 자료를 보면, 경찰이 피의자 2492만명과 피해자 1812만명, 참고인 1126만명 등 모두 4417만명의 수사기록 등 개인정보를 심스 안에 저장해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4417만명이라면 우리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경찰의 '심스'에 의해 관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빅브라더'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국가에게 심스는 불법이 아니면서 사람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법으로는 편리하고,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피의자나 피해자 혹은 참고인으로 단 한 차례라도 수사를 받았다는 이유로 관리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는 끔찍한 일이다. 한 번 이름이 올랐다는 이유로 언제든지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면 그 범죄하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수상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상상해보라. 죄를 짓지도 않고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모, 형제, 남편 공안기록까지 조회하는 국가 권력을 보면서 두렵고, 떨리는 일들이 2009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인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고, 의무를 다하라고 강요하는 국가가 아닌 존엄한 존재인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켜줄 것인지를 노력하는 국가, 과연 대한민국은 그런 국가가 될 수 없는가.

 

대한민국 헌법이 개정되는 그날,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인민에게 충성을 다할 의무를 다한다"는 문구가 들어가기를 기대한다.

2009.10.12 11:55 ⓒ 2009 OhmyNews
#인민 #국가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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