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했던 시간과 공간, 크로아티아

[서평] 김랑의 <크로아티아 블루>

등록 2009.10.16 16:25수정 2009.10.1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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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블루 김랑 지음. 나무수 ⓒ 윤석관

▲ 크로아티아 블루 김랑 지음. 나무수 ⓒ 윤석관

"얘들아, 올해 가을 소풍은 니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일산해수욕장이니까 내일 9시까지 해수욕장 입구로 도착해라 알겠지?"

 

"아~~. 선생님 또 거기로 가요? 지겨워 죽겠어요!!!!!!"

 

소풍을 떠날 장소가 결정되고 난 뒤에 우리는 그 날 수업 내내 인상을 찌푸린다. 또 거기라서 이제는 지겹다고 한숨을 푹푹 내쉰다. 그치만 다음 날 도착지의 아이들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언제 짜증을 부렸나는 듯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응시한다.

 

눈빛만이 아니다. 매년 놀러오는 이곳에서 작년과 같겠지만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재미를 만끽할 기대감에 마음껏 자태(남자들이 득시글한 남고임에도 불구하고)를 뽐내면서 해수욕장 정문에 속속 나타난다.

 

아마도 소풍을 떠나기 전날 밤, 각자의 머릿속에는 지난해 들렀던 해수욕장 산책로 곳곳에 숨겨져있던 여러 오락거리들과 평소에 맛볼 수 없는 번데기나 솜사탕. 그리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푸르스름해 보이는 바닷물과 깊숙이 들어서면 나타나는 대왕암의 바윗길까지 한꺼번에 떠올라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경험했고 게다가 절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추억을 가진 곳은 쉽게 질리지 않는다. 질리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안 잘 지내고 있었는지 궁금하면서도 이미 적응된 그곳의 풍경에 어떻게 하면 더욱 잘 녹아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한껏 고양된다. 거기다가 같이 소풍 온 여고생들이 있으면 금상첨화일 테고 말이다.

 

<연꽃도시>의 한한이 그랬던가? 시간과 공간을 설정하는 것은 째깍째깍 귀찮게 구는 초침소리나 우리의 눈과 손이 뻗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 각자의 머릿속에서 얼마나 강렬한 기억이었는지 또한 얼마나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지가 그 사람의 시간과 공간을 결정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강렬했던 시간과 공간,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라는 곳은 분명히 우리가 매년 소풍을 떠나는 가깝고 친숙한 곳은 아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있어서 크로아티아라는 곳은 축구경기를 통해서만 그리고 '루카 모드리치'라는 축구 선수를 통해서만 어렴풋이 알 정도로 극히 멀리 위치해 있지만 <크로아티아 블루>의 저자 김랑에게 있어서 이 <크로아티아 블루>는 한한이 이야기하는 그 시간과 공간을 눈앞에 끌어들일 정도로 강렬한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다.

 

만약 이 책이 단순히 크로아티아의 푸른 바다 풍경에 대한 의미 없는 충성심을 바치는 것에 그쳤다면 나는 매우 실망했겠지만 <크로아티아의 블루> 속에서는 그를 어스름이 짙게 깔린 풍경속의 달빛 같은 남자라고 불러주던 햇살 같은 그녀의 눈빛 목소리와 몸짓들을 크로아티아라는 새로운 공감대로 하여금 같이 느껴볼 수 있게 하는 놀라운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안타깝게도 그녀와 함께 했던 당시,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제약으로 인해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그와 그녀. 두 사람은 누가 먼저 작별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리 없이 멀어져버렸다. 그래서 그는 늦은 후회를 반성하혀 한다. 지나간 그 시간을 추억으로 남기려 한다. 

 

햇살 같은 그녀를 기억 속 아주 먼 곳으로 보내기 위한 작업으로 크로아티아를 또 다시 선택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의 블루> 속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바깥 풍경이 이야기하는 밝음과 저자의 내면 속에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한 어두움이 공존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책 속의 많은 그림들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너무나 설레어서 그의 어두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버릴지도 모르겠다. 개그콘서트에 등장하는 박영진님의 유행어처럼 말이다.

 

"그건~~~ 니 사정이고~~~"

 

그의 어두움을 무시한다면 이 책은 너무나도 밋밋하다. 그가 나열해놓은 글을 통해 구성된 기억들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그가 다시는 느끼지 않도록 마지막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글로 풀어내는 자연경관은 너무나 생생해서 오히려 과거에 더 빠져들지 않을지 걱정이 될 지경이다. 크로아티아와 지은이가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지켜보는 것은 이처럼 근심스럽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롭다.

 

기억과 공간의 추억을 새로이 써내려가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다시 만난 <크로아티아의 블루> 속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나간다. 책 속에서 인용되는 톨스토이의 명언처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이 순간이고,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하는 좋을 일이라는 말처럼.

 

그는 어두움을 반으로 접어버릴 요량으로 찾아온 이곳에서 여러 친구들을 새롭게 발견한다. 푸른 바다와 폭포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건축물. 종루 위에서 드러나는 골목길의 새로운 발견. 이런 '친구'들 덕분에 <크로아티아 블루>라고 이름 지은 치유의 작업을 완료한다.

 

그는 혼자였고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곁에 있던 모든 이들과 물질과 감정을 나누고 함께 한다. 그렇게 길 위에서 함께 한 인연들은 모조리 '친구'가 되어 그의 여정, 그 한 페이지가 된다. 비로소 이곳은 과거와 같은 크로아티아지만 친구들이 있는 이곳은 새로운 공간이 된다. 또한 그 친구 중의 한 사람이었던 미미코와의 다음은 어떻게 발전하게 되는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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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하늘에 뜬 하트 김랑 지음. 나무수 ⓒ 윤석관

▲ 크로아티아 하늘에 뜬 하트 김랑 지음. 나무수 ⓒ 윤석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10.16 16:25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크로아티아 블루 -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김랑 글.사진,
나무수, 2011


#크로아티아 블루 #김랑 #나무수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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