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협곡을 뛰어넘어 이상향 샹그릴라로 가다

[3일간의 중국 도시기행 15] 리장·샹그릴라 둘째날 오후·저녁: 후타오샤, 샹그릴라

등록 2009.10.21 18:00수정 2009.10.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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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짠 전통 방석을 팔려 나온 나시족 할머니들. 자오칭시장은 주말마다 열리는 재래식 장터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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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텃밭에서 길러 수확한 콩을 팔러 나온 중년 여인. 자오칭에서는 먼저 나온 사람이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 모종혁


투쟁을 끝낸 주민들, 농기구 장만을 위해 장터를 열다

재래시장은 도시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현지인의 원초적인 삶과 생활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윈난(雲南)성 리장(麗江)시에서 가봐야 할 시장은 단연 자오칭(昭慶)이다. 자오칭은 다옌전(大硏鎭) 고성 남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신화촌(新華村)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려 찾아갈 수 있다.

자오칭시장이 처음 열리게 된 것은 물자교역회 '방방후이'(棒棒會)에서 비롯됐다. 리장을 다스렸던 지방 영주인 무(木)씨는 초기 통치기간 중 높은 세금 부과와 토지 수탈을 일삼았다. 그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리장고성의 도시 구조를 만들었지만, 백성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이었다.

15세기 폭정을 견디다 못한 나시(納西)족 주민들은 몽둥이(棒棒)를 들고 대규모 투쟁에 나섰다. 민중 봉기에 놀란 무씨 영주는 잘못을 인정하고 착취를 없앨 것을 약속했다.

주민들은 투쟁을 끝내고 다시 농토로 돌아가야 했기에, 서로 간의 농기구 장만을 위한 장터가 열렸다. 투쟁의 도구로 쓰이던 크고 작은 몽둥이는 곡괭이, 낫, 호미, 도끼 등 농기구로 변모했다.

주민 간의 물자가 교역했던 그 날을 기념하여 해마다 방방후이가 열리게 됐다. 방방후이가 열린 자오칭은 주말 장터로 바뀌었지만, 첫 장터가 열린 날을 기념해 매년 정월대보름마다 방방후이가 5일간 개최된다.


방방후이가 열리면 리장뿐만 아니라 다리(大理), 샹그릴라뿐만 아니라 멀리 쿤밍(昆明), 판즈화(攀枝花), 라싸 등지에서 상인이 몰려온다. 나시족을 위시해 한족, 바이(白)족, 이(彛)족, 티베트인 등 다양한 민족들로 시장은 붐빈다.

자오칭시장의 특징은 주말에만 열리는 비상설 장터라는 점이다. 주말 장터이기에 물건을 파는 상인은 따로 정해진 장사 터가 없다. 먼저 나오는 사람이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전통 재래시장답게 집에서 만든 물건을 내다 파는 상인이 적지 않다. 손으로 꿔서 만든 방한복과 방석이나 곡괭이, 낫, 호미 등 농기구, 텃밭에서 기른 채소나 화초 등 다양한 상품이 거래된다. 나시족 삶의 향취가 진하게 남아 있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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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오샤는 골짜기가 좁고 험준하여 물살이 거세게 용솟음친다. 위룽설산과 하바설산 기슭 사이의 물길 너비는 15~60m에 불과하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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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오샤는 세계 3대 자연 트레킹으로 각광 받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트레킹 마니아는 놓치지 말아야 할 코스다. ⓒ 모종혁


후타오스, 호랑이가 뛰어넘었다는 전설 전해지는 골짜기

리장을 떠나 샹그릴라로 발길을 옮긴다. 시간의 여유가 없어 찾질 못하지만, 리장과 샹그릴라 중간에는 신이 쪼개 판 협곡 후타오샤(虎跳峽)가 있다.

후타오샤는 양쯔강(長江) 상류인 진샤(金沙)강이 굽어 치는 대협곡이다. 진샤강은 후타오샤에 이르러 물줄기를 갑자기 북쪽으로 틀어 내려간다. 이 때문에 후타오샤를 '양쯔강에서 가장 으뜸가는 물굽이'라 부른다.

후타오샤 양쪽에는 깎아 지르는 듯이 솟아 있는 위룽(玉龍)설산과 하바(哈巴)설산이 있다. 모두 티베트고원의 한 일부로, 각각 해발 5596m, 5396m에 달한다. 후타오샤는 두 설산 사이로 흐르는데 길이가 20km나 된다. 두 설산 기슭 사이에 있는 물길 너비는 15~60m에 불과하다.

후타오샤 상류는 해발 1800m, 하류는 1600m에 있다. 두 설산에 늘어선 봉우리와 수면의 고도 차이는 2500~3000m로, 골짜기 언덕은 험준하고 기세가 가팔라서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협곡의 강은 하류로 흘러내리면서 일곱 개의 험난한 비탈을 지난다. 가장 큰 물의 낙차는 170m에 달하는데, 물살이 거세게 용솟음치면서 솟아오른다. 뿜어 나오는 소리도 웅장하여 수km 밖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다.

특히 강의 폭이 가장 좁은 상류에는 후타오스(虎跳石)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호랑이가 이 돌을 딛고 건너편으로 강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후타오샤는 호랑이가 뛰어 건넌 골짜기라는 뜻으로, 이 전설에서 유래됐다. 강폭이 정말 건너뛸 수 있을 것처럼 가깝다.

후타오샤는 무엇보다 협곡 트레킹으로 유명하다.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 트레킹, 페루 마추피추로 향하는 잉카 트레킹과 더불어 세계 3대 자연 트레킹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나처럼 인간과 문화, 역사를 더 좋아하는 여행객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트레킹 마니아는 놓치지 말아야 할 장소다.

트레킹은 하바설산의 허리를 걸으면서 진샤강과 위룽설산을 바라볼 수 있다. 설산의 만년설과 강물의 용솟음이 형언할 수 없는 조화를 이루는 곳이 바로 후타오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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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 도심 뒷산에 있는 라마불교식 백탑 쵸르텐.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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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는 티베트인의 거주지다. 샹그릴라 내 크고 작은 건축물은 티베트 양식으로 지어졌다. ⓒ 모종혁


90세 청순한 미인, 무병장수가 이뤄진 곳 샹그릴라

후타오샤를 지나 2시간 뒤 샹그릴라에 도착한다. 샹그릴라는 1933년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서 비롯됐다. 역사상 유례없는 세계 대공황으로 심신이 찌든 서양인들에게 소설 속에 묘사된 샹그릴라는 꿈에 그리던 지상낙원이었다. 소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30년대 초 인도 바스쿨에서 영국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가 일어난다. 현지 주재 영국 영사 콘웨이, 부영사 멜린슨, 천주교 전도사 브링클로 등은 비행기를 타고 탈출한다. 일행은 원하는 목적지에 가지 못하고 비행기 안에 숨어있던 한 티베트 청년에 납치된다.

비행기는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험준한 '푸른 달 계곡'에 불시착한다. 불시착의 충격으로 티베트 청년은 "샹그릴라(Shangrila)!"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죽는다. 콘웨이 일행이 도착한 '푸른 달 계곡'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설산 안에 널푸른 초원, 아름다운 호수, 비옥한 토지, 선량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콘웨이 일행은 한 노인에 이끌려 라마사원으로 안내된다. 여기서 자신들과 같은 이방인인 천주교 수도사 페로와 멸망한 청나라 공주 로센을 만난다.

놀랍게도 80대 노인으로 보인 페로는 실제 나이가 300세에 가깝고 18세 청순한 미인인 로센은 90세가 넘었다. 샹그릴라는 온갖 종교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갈등과 탐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민은 무병장수까지 하는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콘웨이 일행은 샹그릴라에서 꿈에 그리던 유토피아를 만끽하지만 멜린슨만은 예외였다. 멜린슨은 로센 공주와 사랑에 빠졌지만, 답답함을 견딜 수 없어 한다. 멜린슨의 끈질긴 간청으로 콘웨이는 일행을 이끌고 샹그릴라를 떠난다.

세상 밖으로 나온 그들은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다. 샹그릴라에서 벗어난 뒤 로센은 본래의 90세 노인으로 변해 숨지고 멜린슨 또한 병으로 앓아눕는다. 콘웨이는 다시 샹그릴라로 되돌아가려 하지만 영원히 찾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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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채취한 천연 송이버섯을 시장에서 도매상에게 팔려는 티베트 부녀자들. '샹거리라'로 되기 전 중뎬은 중국 최대 송이버섯의 산지로 유명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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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은 샹그릴라 교외와 산골 주민들에게 가장 큰 수입원이다. 매년 8월은 송이버섯의 최대 수확철이다. ⓒ 모종혁


샹그릴라 신드롬, 정신세계에 몰두하고 젊게 살려는 움직임 등장

<잃어버린 지평선>은 출판된 뒤 베스트셀러가 되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자본주의의 틀에 박히고 물질문명에 중독된 삶을 벗어나 정신세계에 몰입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났다. 중장년층 사이에 단조롭고 무색무취한 생활에게 탈피하여 젊고 활력 있게 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른바 '샹그릴라 신드롬'이 불어 닥친 것이다.

1937년 소설은 미국 컬럼비아영화사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됐다. 소설과 영화를 통해 샹그릴라를 접한 사람들은 한 줄기 구원의 빛을 찾아 샹그릴라로 떠났다. 그 가운데는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있었다.

히틀러는 샹그릴라를 '순수 아리안 혈통의 진원지'로 규정하고 자신의 친위부대로 탐험대를 구성해 7차례나 파견했다. 탐험대 일원이었던 하인리히 하러와 페터 아우프슈나이터는 네팔 주둔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티베트로 탈출했다.

두 사람이 티베트에서의 생활과 체험을 쓴 논픽션은 훗날 영화로 만들어졌다. 바로 장 자끄 아노 감독이 연출한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이다. 이 영화는 중국이 티베트를 어떻게 강압적으로 점령했는지 잘 묘사하고 있다.

오랫동안 서양인들에게 유토피아로 손꼽힌 샹그릴라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1997년 9월이다. 중국 윈난(雲南)성 정부는 대규모 회견을 통해 "티베트 전설로 내려져 온 샹그릴라의 실체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윈난성은 "본 성내 디칭(迪慶)티베트자치주 중뎬(中甸)현이 전설 속의 샹그릴라와 똑같다"고 주장했다.

윈난성의 준비는 철저했다. 1년여 동안 역사·지리·민속·언어·종교 등 각 분야 50여명 전문가들로 조사단을 구성해 성내 티베트 거주지에 대한 탐험과 다양한 연구를 벌였다. 이를 토대로 중뎬이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샹그릴라와 일치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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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의 한 인도에서 티베트식 전통모자를 사고 파는 티베트인.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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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안에서 각종 생활용품을 직접 만드는 티베트 장인. 샹그릴라에서는 생활도구는 대부분 수공제품을 쓰고 있다. ⓒ 모종혁


중국이 샹그릴라라 이름붙인 중뎬현, 200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중국이 샹그릴라로 중뎬을 꼽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중뎬은 소설이 묘사한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찾는 이를 매혹시키는 아름다운 자연, 설산을 배경으로 한 드넓은 초원, 불심이 깊은 라마승이 사는 라마사원 등이 그것이다.

둘째, 디칭 토속어로 샹그릴라는 '내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이는 샴발라의 방언 격인 샹그릴라의 어원과 정확히 일치한다. 셋째, 중뎬 티베트인은 다른 동부 티베트 캄(Kham) 사람들과 달리 이민족에게 우호적이고 손님을 극진히 모셨다. 중뎬 티베트인은 경작할 땅이 넉넉하고 물품이 풍부하여 먼 길을 온 타인을 환대했다.

2001년 12월 윈난성은 중뎬을 샹그릴라로 만들기 위해 이름을 '샹거리라'(香格里拉)로 고쳤다. 새로이 포장도로를 개통하고 공항을 열었다. 중뎬 내 관광지도 깨끗이 단장했다. 200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까지 시켰다. '샹그릴라 만들기 공정'의 완결판이었다.

본래 샹그릴라의 후보지는 여러 곳이었다. 티베트 본토, 인도, 네팔, 부탄, 중국 쓰촨(四川)성 등 히말라야산맥 일대 여러 마을이 신경전을 벌였다. 여기에 중국이 선수를 쳤다. 중국은 저돌적이고 치밀한 준비와 작업을 통해 중뎬을 샹그릴라로 만들었다.

윈난이 샹그릴라를 독점한 위력은 컸다. 2008년 현재 샹그릴라를 찾은 관광객 수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외지인이 뿌린 돈도 10억 위안(한화 약 1700억원)에 달한다. 1995년 한해 찾는 이가 7만 명에 불과했던 해발 3280m의 작은 티베트인 도시가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내가 샹그릴라를 처음 찾은 것은 1998년이었다. 당시 중뎬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티베트인들의 작은 도시였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묘사한 것처럼 그림과 같은 설산, 드넓은 초원, 여러 갈래의 작은 강, 울창한 원시산림과 검푸른 호수, 다양한 동식물 등 축복받은 자연 환경을 지녔다.

하지만 지금 샹그릴라는 중국의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 없어졌다. 이상향은 간데없고 식당, 술집, 카페, 상점 등 유흥지대로 탈바꿈했다. 여행자의 근심을 아는 듯 오늘도 샹그릴라의 밤은 깊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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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 고성 내 한 골목에 있는 식당과 게스트 하우스. 샹그릴라 만들기 공정 후 중뎬은 작은 티베트인 고산 도시에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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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가옥을 개조한 한 게스트 하우스의 내부 모습. ⓒ 모종혁


# 여행Tip 1

후타오샤로 가려면 리장시외버스터미널(麗江客運站)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후타오샤에 가는 트레킹족은 보통 샹그릴라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후타오샤 입구 격인 차오터우전(橋頭鎭)에서 내린다. 후타오샤의 입장료는 50위안(약 8500원)이다.

후타오샤 트레킹은 차오터우전에서 시작하여 리장의 다쥐(大具)에서 끝난다. 이 기간의 낙차는 약 200m에 달한다. 후타오샤는 크게 상·중·하 세 단계로 나뉘는데, 18곳의 위험한 코스가 있다. 산세가 험하고 가팔라서 체력 안배를 잘 해서 트레킹에 나서야 한다.

# 여행Tip 2

리장에서 샹그릴라로 가는 버스는 리장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다. 버스는 아침 8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있는데, 버스비는 45위안(약 7700원)이다. 차표 구입시 주의할 점은 '보험은 사지 않겠다'고 매표원에게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2위안의 보험료가 포함된다.

리장에서 샹그릴라까지는 3시간50여분이 소요된다. 포장된 도로지만, 산길인데다 해발이 높아 쉽지 않은 이동 구간이다. 중간에 한 차례 쉬고 가는데, 간간히 승객이 타고 내리기 때문에 쉴 시간은 자주 생긴다.

해발 3000m 이상 올라가는 순간 잠시 귀가 멍멍하고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 것이다. 고산병에 걸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 때부터는 잠을 자질 말고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 좋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중국 #윈난 #운남 #호도협 #샹그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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