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자율화, 부실교육 아니면 편식교육

교육과정 개편없는 학교자율화는 학생피해만 불러와

등록 2009.10.22 09:52수정 2009.10.2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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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들어 학교는 신종플루 발열검사와 예방으로 분주합니다. 찬바람이 불어 밖에서 열을 재는 것이 아이들에게 오히려 감기를 불러오는 것 같은데도, 정부는 그저 손 닦기, 마스크 쓰기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신종플루 환자는 계속 늘어나고, 임신한 교사가 열을 재다 오히려 신종플루에 노출되는 일도 생기고 있습니다.

좁은 교실에 30-40명씩 밀어넣고 일제고사 준비라며 야간자율학습을 합니다. 학원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으니 당연히 신종플루가 확산되지 않겠느냐는 선생님도 계십니다. 그나마 2학기를 송두리째 흔드는 각종 전시행사(학예회와 각종 전시회를 비롯하여)가 대폭 줄어들어 수업하기는 그럭저럭 나은 편입니다.

정책 홍수에 내용도 모를 정도

한편으로 교육당국은 계속 설익은 정책을 쏟아내어 교사와 학생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올해만 해도 학교자율화, 교사전문성 제고(결국 교원삼중평가), 수능점수공개, 미래형교육과정(2009개정교육과정), 일제고사, 사교육없는 학교, 자율학교, 입학사정관제 등 하나만 해도 학교현장을 뒤흔드는 정책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집니다. 무엇이 무엇인지 채 알기도 어렵습니다.

이 중 학교자율화 방안은 6월에 교과부가 자체 확정하여 내년부터 모든 학교교육과정을 자율화하라고 합니다. 교육과정시범학교를 하거나 작년도 일제고사 점수가 낮아 학력향상중점학교로 지정된 학교들은 또 무조건 자율학교 신청서를 내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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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15학교자율화 조치가 발표되자 학교가 학원으로 변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급기야 학생들이 먼저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며 촛불집회의 주역으로 나서기에 이르렀습니다. "자율"이란 포장지로 학교현실이 가려지지는 않습니다. 올해 나온 학교자율화 조치도 결국 학교를 학원으로 만들고 입시교육만 강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높습니다. ⓒ 최대현


학교자율화 조치 따르면 법을 어기는 것

그런데 학교자율화 정책은 2007개정교육과정 적용시기도 무시하고 미래형교육과정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 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학교자율화의 핵심은 학교별로 다양한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 교과별 수업시수를 20% 증감하라는 것입니다. 교원인사에 관한 것은 결국 교육과정 편제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지역교육청이 고시도 안 된 교육과정을 적용하라고 하는 것은 초중등교육법(23조 2항)을 어긴 것으로, 교과부가 시정이나 변경 명령을 내릴 수 있고(법 63조) 심하면 학교를 폐쇄해야 합니다(법 235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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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는 6월에 자체확정한 학교자율화의 교육과정자율화 항목을 학교에 내년부터 시행하라고 합니다. ③④⑥항은 미래형교육과정내용인데 추가로 자율권을 주는 것이고, ①②⑤항은 2007개정교육과정 시행시기를 일률적으로 조기시행한다고 합니다. ⓒ 신은희


현행 교육과정(7차 교육과정, 2007개정교육과정)은 교과편제에 나온 것이 최소시수라며 꼭 지키라고 합니다. 교육목표에 따라 교과교육과정을 만들고 이에 적합한 교과서를 만들었므로 양질의 수업을 위해서는 시수확보가 전제조건입니다. 헌데 교과부는 교육과정이 바뀌지도 않았는데 학교장 마음대로 교과별 시수를 20% 증감하라고 탈법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어차피 미래형교육과정에서 이걸 규정하고 있으니 미리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내후년부터 시행되니 내년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혹시 학생 학습부담을 줄이고 학교 다양성을 살리자는데 법 좀 어기면 어떠냐고 할 분은 안계시겠지요? 이런 규정이 있는 것은 학교교육과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정치적 중립성이나 학생 교육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특히 교과교육과정 개편이 없이 운영방안만 바꾸면 학생들이 제대로 된 수업을 못듣고 학습부담만 커질 수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시행되는 집중이수제는 당장 전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3, 4학년은 개정교육과정 내용도 몰라 학생 피해 우려

학교자율화는 교과별로 비슷한 내용을 통합하고 조정하여 수업시수 20%를 증감운영하여 학교특색을 살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초등학교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내년에는 초등학교 3, 4 학년에 2007개정교육과정이 도입됩니다. 교육과정 운영방식이나 교과 내용이 모두 바뀌기 때문에 3, 4학년 선생님들은 내년 1년 내내 바뀐 내용 파악하고 아이들 생활 지도하기에도 벅찰 것입니다. 영어가 1시간씩 늘어나 학생들의 수업부담도 큽니다. 올해 하는 걸 보니 교과부에서 개정교육과정에 대한 지원도 하나도 안해줄 것 같습니다.

또 초등학교는 2월 말이나 3월 초가 되어야 몇 학년을 맡는지 알고 교과서와 지도서도 이 때야 받아봅니다. 받아보았자 학기초 각종 행정업무에 정작 아이들 얼굴 볼 시간이나 교재연구 시간이 부족해 하루하루 수업 진행하기에 벅찹니다. 이런데 마음대로 수업시간을 증감 운영하라구요? 게다가 실험본 교과서도 못 본 상태에서 올해 어떻게 교육과정을 멋대로 짜라는 걸까요? 시도교육청들도 이런 상황을 모른 채 내년도 시도교육청 교육과정 편성운영지침이나 자료를 만들고 있을 것입니다.

혹 교과부에서 미리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를 다 모아보고 거기에서 모형을 짜고 있을까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교과부에 초등학교 교과내용이 어떻게 되는지 훑어보고 점검하는 부서도 없고, 인력도 부족하고 그런 계획도 없을 것입니다.

개정교육과정 연수 과정에서 알게 될 가능성은 있을까요? 100% 없습니다. 교육과정 연수에 가면 대부분의 강사들이 "저도 모르는 내용이니 절대 질문은 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해서 당황스럽습니다. 연수자료라는 것이 교육과정 홍보자료에 있는 것을 그대로 하고 그 분들도 연구학교이거나 교과서 집필진이 아니면 내용을 본 적도 없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솔직히 초등학교 내용은 아무도 모릅니다. 교사도 닥쳐야 알게 되니 개정교육과정이나 학교자율화조치로 생기는 문제점은 학생들이 고스란히 지는 겁니다.

5, 6학년 내용은 너무 어려워 실효성 없어

5, 6학년은 내년에도 7차교육과정이니까 교사들이 교과내용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문제는 교과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7차 교육과정이 원래 학생학습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육내용을 30% 줄였다고 선전하였는데, 실제 내용을 보니 더 어렵고 힘들어졌습니다. 이건 연구결과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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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초등교사들에게 7차교육과정 교과학습의 양과 수준을 조사한 것을 5, 6학년 중심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 신은희


이 결과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2년도에 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교육내용의 양과 수준에 대해 조사한 것입니다. 학습양이 많다(매우 많음 포함)고 보는 비율이 국어, 도덕, 사회, 실과, 영어 교과에서 과반수를 넘고, 미술 교과를 뺀 다른 교과도 40% 정도 됩니다. 학습내용 수준을 보면 5학년이 6학년보다 높다고 나오고, 도덕, 체육, 미술만 30% 내외 교사들만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비율이 중소도시로 갈수록 높아진다고 하니 지역아동들이 느끼는 학습부담은 더 큽니다.

학생부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

여기에 월 2회 주 5일제를 적용하느라고 수업시간은 더 줄어들어 고학년은 정말 숨이 턱에 닿도록 수업을 해야 겨우 학생들이 교육내용을 제대로 배울 수 있습니다. 1시간 분량을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하려면 2-3시간도 부족한 내용이 많습니다.

교육과정 학자들은 교과서를 전체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라고 하지만, 교과 교육과정 자체가 단편지식이 압축되고 그냥 나열된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일제고사까지 있어 이제 이런 재구성은 간 큰 교사나 하게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수업시수 20%를 증감하라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지교과는 교과내용도 어렵고 일제고사도 있으니 이걸 줄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늘려서 가르쳐야 할 상황이지요.

그럼 예체능이나 실과, 도덕을 집중이수나 감축해야 할까요? 이렇게 하면 전인교육을 추구하는 초등교육의 목표와 맞지 않게 되겠지요. 이것도 아니면 그냥 수업시수를 늘리면 될까요? 지금도 학생들이나 교사들의 수업시수가 적지 않은데 무작정 늘리는 건 수업의 질을 떨어뜨릴 뿐입니다.

교육과정 개편 없이는 부실교육 아니면 편식교육

이런 상황에서 솔직히 학교자율화의 모습이 그려지지가 않습니다. 대부분 학교에서 이런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만약 과감하게 수업시수를 줄이면 학생들은 원래 배당된 시간 다 배워도 어렵거나 이해가 안 되는 내용들을 제대로 못배우니 부실교육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부담을 피하고 학부모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려면 주지교과 수업시수를 늘릴 수도 있습니다. 2009개정교육과정 토론회에 나온 학부모 대표는 수업시수를 당연히 늘려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이야기하더군요.

교과부에서는 일제고사 점수가 나쁜 학교에는 아예 이런 모형을 자율학교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인교육 취지에 어긋나니 편식교육을 하는 셈입니다. 학력이 주지교과 수업으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교과교육 전반에서 통합적으로 추구되어야 하는데, 시험점수가 낮다고 편식교육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이건 전인교육을 받아야 할 아동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잠재적인 가능성마저 무시하는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육정책은 감이나 정치적 요구로만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성장과정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교육 이론이 전제가 되고 사회적 상황과 학생들에게 갈 피해를 최소화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합니다. 교과부는 학교자율화 선전에 앞서 교과교육과정의 문제부터 세밀하게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학교자율화 #미래형교육과정 #2009개정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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