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 십자포화 날릴 때 아니다

화살은 다시 국회로...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에 '책임' 물어야

등록 2009.10.30 09:57수정 2009.11.1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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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9일) 신문법 등 언론관련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민주당 등 야권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또 헌법재판소에 대한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진보언론의 비판의 칼날은 날카롭기만 하다. 지난 달 24일 헌법재판소가 야간집회금지규정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을 때 헌법재판소에 보냈던 시선과는 사뭇 다르다.

한편에서는 헌법재판소 존폐마저도 이야기한다. 당장 민주당 한 의원은 헌재 결정을 비난하며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은 "29일은 대한민국 헌치일"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분을 삭히지 못하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법률안 통과 절차가 위헌, 위법인데 어떻게 결과는 유효하다고 판단 내릴 수 있느냐"며 헌재 결정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의 지적도 비슷하다. 반면, 언론보도에 따르면 헌재 결정을 접한 한나라당 의원 총회는 안도의 웃음이 가득한 모양이다.

이렇듯 미디어법 관련 결정이 난 후 헌법재판소는 비난의 십자포화를 받고 있고, 한나라당은 뒷짐지고 웃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과 진보언론 등의 헌법재판소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과 같은 태도가 올바른 걸까. 되짚어 보고자 한다.

비난의 십자포화 받는 헌법재판소, 뒷짐지고 웃는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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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29일 국회의 미디어법 개정안 처리가 유효하다는 취지의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직후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동료의원들과 인사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남소연


29일 미디어법 관련 헌재의 결정 내용을 읽어보았다. 헌법을 전공하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 언론과 민주당 등 야당이 이번 결정 내용에 울분을 토할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한나라당이 웃고 있을 내용도 아니고, 오히려 김형오 국회의장이 불안해 할 결정 내용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을 통해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우려와 달리 해당 미디어법 등이 유효하다고 결코 판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회에서의 입법절차 하자와 관련하여 질의 토론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점, 표결절차에서의 공정성의 결여,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된 점을 들어 국회의원인 민주당 의원 등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권한쟁의심판의 경우 재판관의 과반수 찬성 즉, 재판관 9인 중 5인 이상의 찬성으로 인용결정을 한다. 헌재는 미디어법 처리과정에서 국회의원인 민주당 의원 등의 법률안 심의 표결권이 침해되었다고 다수의견으로 밝히고 있다(신문법의 경우 7:2 의견, 방송법의 경우 6:3의견).

또한 신문법안과 방송법안 가결선포행위의 무효확인 청구에 관하여 재판관 조대현, 송두환은 무효를 인용하였다. 또 신문법안 가결선포행위의 무효확인 청구에 관하여 재판관 김희옥도 무효를 인용하였다.

재판관 이강국, 이공현, 김종대 3인은 신문법안 가결선포행위의 무효확인 청구에 관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하지만 그 기각사유가 신문법안 가결선포 행위가 유효해서가 아니다. 단지 민주당 국회의원 등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위헌위법 상황에 대해 피청구인인 국회의장에 그 시정을 맡기는 것이 기능적 권력분립과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즉 위헌위법 상황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위헌 위법임을 밝힌 이상 국회는 그 위헌위법 상태의 시정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재판관 조대현, 송두환, 김희옥은 "법률안에 대한 국회의 의결이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 권한을 침해한 경우, 그러한 권한침해행위를 제거하기 위하여는 권한침해행위들이 집약된 결과로 이루어진 가결선포행위의 무효를 확인하거나 취소하여야 한다"면서, "가결선포행위의 심의표결권한 침해를 확인하면서, 그 위헌성, 위법성을 시정하는 문제를 국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모든 국가작용이 헌법질서에 맞추어 행사되도록 통제하여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조대현, 송두환, 김희옥의 무효확인 인용의견과 재판관 이강국, 김종대, 이공현의 '국회의장이 스스로 위헌 위법 상황을 시정하라'는 결정의 취지를 종합해 볼 때, 재판관 6인 이상이 국회에서 미디어법의 재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재판관 6인 이상의 '미디어법 재처리 요구'에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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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 유성호


개인적으로는 재판관 조대현, 송두환, 김희옥과 같이 판단하는 것이 더 일관된 결정,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판관 이강국, 김종대, 이공현의 판단도 귀담아 둘 필요가 있다. (우리 국회 수준의 현주소는 별개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자율권 존중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실 국회에서의 미디어법 등 가결행위에서 나타난 위헌위법 상황은 헌법재판소로 가져갈 사안이 아니라 국회 스스로 해결했어야 할 사안이었다. 국회에서 질의토론과정이 무시되고 표결절차에서 나타난 위법상황, 그리고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된 점은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의원들조차도 이미 스스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야당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다고 절대다수의견으로 지적하고, 국회 스스로 이를 시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을 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해당 미디어법 가결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은 다름아닌 '민주당 등 야당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 침해여부'였다. 이점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절대다수의견으로 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제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이 나서야 한다. 그것이 헌법재판소가 베푸는 국민이 직접 뽑아준 국회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라는 것을 김형오 의장은 잊지 말아야 한다.

야당과 국민들 입장에서 이번 헌재 결정이 아쉬울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이 야당과 진보언론들의 분노를 십분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설령 심판이 반칙하는 선수를 눈감아 주었다고 심판을 상대로 폭행을 해서야 되겠는가. 지금 꼭 그런 형국이다. 지금은 심판에 대한 비난을 할 때가 아니다. 정작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와 행간의 뜻을 못 본채 헌재 재판관들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사이 책임져야 할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의 책임은 간데 없다.

이번 미디어법 관련 헌재의 결정을 보다 침착하게 파악해 보고 미디어법 등의 재투표와 멀리는 미디어법 등의 개정 반대논의를 가열차게 할 시기를 놓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지금이라도 민주당 등 야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울분을 토하기보다는 헌재 다수의견이 지적한 바와 같이 민주당 의원 등의 심의 표결권이 침해된 위헌적 상황의 제거를 위하여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을 설득하고 압박하길 바란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의 중심취지를 국민들에게도 알려서 미디어법 등의 저지를 위해서 국민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헌재 결정의 취지, 행간을 다시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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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전국언론노동합, 미디어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언론관련법'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이 내려지자 기자회견을 열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규탄하며 언론악법 원천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민주당 등 야당은 지금과 같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식의  대응은 자제하기 바란다.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29일 헌재결정은 자세히 보면 헌재가 민주당 등 야당에 준 선물이다.

물론 "헌재 재판관들의 생각처럼 김형오 국회의장이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위헌위법 상황을 스스로 바로잡으려 하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에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했던 김형오 국회의장의 대국민 약속도 유효하다. 헌법재판소도 김형오 국회의장의 대국민 약속을 모를 리 없다.

헌재는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다고 절대다수의 의견으로 김형오 국회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장을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

이번 미디어법 등의 국회에서의 재처리야말로 우리 국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기회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결단도 촉구해 본다. 이제부터라도 민주당과 언론들도 이번 헌재 결정의 취지도 다시 살펴보았으면 한다.

지금 야권과 진보언론들은 헌재를 향한 비난에 열을 올리며 헌재 결정의 유리한 점을 놓친 체 미디어법 등 통과에 자포자기하는 듯한 모습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 반성해 보았으면 한다.

이번 미디어법 등 결정에서 우리 헌법재판소에서는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의원들에게 할 말은 다했다. 아쉬운 것은 우리 헌재가 너무 세련되게(?) 위법위헌상황을 지적하다보니 다소 혼선이 있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고민도 이해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미디어법 #국회심의표결권 #사법소극주의 #절차적 민주주의 #사법적극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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