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보는 일이 고역이 된 이유

[책갈피]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등록 2009.11.02 11:53수정 2009.11.0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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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적인 기업 광고와 정치적 선전은, 우리에게, 우리가 필요로 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것을 사도록 강요할 뿐만 아니라 온전한 정신이라면 원하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을 정치 대표자를 선택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최면술적인 방법에 의한 선전 때문에 온전한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한다'. 이 끊임없이 증가하는 위험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치가들뿐만 아니라 상품들을 위한 광고와 선전에 있어서 모든 형태의 최면술적인 광고 형태의 사용을 금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요즘은 TV 보는 일도 고역이 되어 버렸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각종 캠페인과 공익광고들이 내뿜는 광고소음이 불쾌감을 넘어 현기증마저 불러 일으키는 탓에 "우리의 사생활은 공공연한 광고소음에 찌들어 있다"던 폴 발레리의 철 지난 푸념이 생생한 증언으로 되살아나 귓전을 울린다.


다소 과장스럽게 말하면 TV 광고편성표가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공익광고와 그와 궤적을 같이 하는 대기업 광고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 느낌이다. 그로 인해 요즘 TV CF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단어는 다름아닌 '대한민국, 코리아, 자랑스러운 한국인, 녹색혁명, 서민' 같은 것들이 되었다.

이들 단어들을 통해 정부와 대기업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는 동반자 관계이며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대규모 토건사업을 '녹색혁명'으로 포장하는가 하면 '대한민국, 코리아, 자랑스러운 한국인' 같은 단어들을 과도하게 사용하며 애국주의, 국가주의를 부추긴다. 그 배경에 정부와 국가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도록 만들고 정부와 대기업이 하는 일이 국가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저의가 깔려 있음은 불문가지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예전엔 단순한 눈요깃거리에 불과하던 TV가 이젠 부담스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광고가 나올 때면 아예 TV를 끄거나 일부러 무음 상태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17세기 염세주의자들이 도시를 벗어나 무인지경으로 도피했던 것처럼 잠시나마 광고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기업 광고와 정치 선전은 "우리가 필요로 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것을 사도록 강요할 뿐만 아니라 온전한 정신이라면 원하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을 정치 대표자를 선택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마약보다 더 위험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와 같은 광고와 선전이 반복 학습과 집단 암시로 대중을 세뇌한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딜 가든 광고와 선전의 공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우리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분위기, 반쯤 믿고 반쯤 믿지 않는 분위기, 현실 감각을 잃는 분위기에 젖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광고사회학>의 저자 제라르 라노 역시 광고란 광고주, 광고 제작자, 매체(광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TV, 신문 등) 소유자의 전략에 따른 과시적 산물이며 그 (공격) 목표는 대중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대중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광고와 선전의 유해성을 지적하고 있다.


굳이 이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IMF와 같은 국가적 재난과 수많은 국가적 사업ㆍ행사 등을 통해 광고와 선전이 집단주의를 창출하는 데 유용한 도구임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와 같은 메커니즘은 때론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지배권력에 의해 악용되어 왜곡된 여론을 조성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범람하는 각종 캠페인, 공익광고들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기업이 주체가 되는 상업 광고마저 캠페인, 공익광고의 색채가 짙어 가히 캠페인, 공익광고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광고를 수용하는 대중도 피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선별해서  광고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어차피 최종 선택권은 수용자의 몫이니까.
2009.11.02 11:53 ⓒ 2009 OhmyNews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지음, 차경아 옮김,
까치, 1996


#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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