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중국산 사탕 받으려고 밤에 남의 집을?

[해외리포트] 할로윈데이가 부담스런 캐나다 어른들

등록 2009.11.02 15:07수정 2009.11.0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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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의 유래와 배경이 설명된 캐나다 웹사이트. ⓒ 화면캡처

성인의 날 하루 전인 10월 31일 밤 캐나다 밴쿠버 시내. 거리마다 섬뜩하고 기이한 복장의 사람들이 고성을 지르며 하나둘 등장했다. 매년 그렇듯 할로윈데이 의식이 시작된 것이다.

아일랜드와 영국 북부 켈트족들의 종교적 페스티벌에서 유래한 할로윈데이는 이제 전 세계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이날 유령이나 마녀가 나온다고 믿고, 유령들을 놀려주기 위해 괴물이나 귀식, 악마 등의 복장을 한 채 축제를 즐긴다.

아이들은 동네를 돌며 "트릭 오어 트릿"(사탕 주면 안 잡아먹지)를 외치고, 집집마다 방문해 사탕을 받는다. 이날 확보한 사탕은 1년 내내 아이들에게 간식거리가 된다.
                     
싸구려 사탕에 밤길 안전사고까지... 부담스런 할로윈데이

반대로 부모들이나 지역 경찰들에게 할로윈데이는 요주의 날이다. 올해 할로윈데이를 앞두고 캐나다 경찰과 지역사회가 보인 모습은 '철통경계' 수준이었다.

부모들은 무엇보다 자녀들이 기이하고 무서운 귀신복장을 하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불안해했다. 특히 올해는 신종플루의 확산으로 남의 집 방문을 더 꺼렸다.

써리시에 거주하는 교민 오수정씨는 올해는 아예 아이들에게 꿈도 꾸지 말라고 몇 주 전부터 단속을 해왔다며 "짓궂은 사람들은 사탕이 없다면서 아이들에게 정크 푸드 등을 대신 주기도 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밴쿠버 버나비시 메트로타운 주택가, 아이들이 바구니를 들고 문 앞에서 사탕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 유정임


안전사고 발생이 잦다는 것도 어른들이 할로윈데이를 꺼리는 이유다. 캐나다 토론토 CNW 보도에 따르면, 해마다 2천 명에 가까운 어린 아이들이 보행 중 사고를 당하는데 특히 할로윈데이에 사고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밴쿠버 연방경찰은 아이들이 보행 중에 넘어지는 사고, 방문한 집에 있던 개에게 물리는 사고, 어두운 할로윈복장으로 인한 교통사고, 불꽃놀이 사고 등이 종종 발생한다며 '할로윈 안전수칙'을 배포하기도 했다. 공공기관인 "세이프 키드 캐나다"에서도 할로윈 안전 팁을 제공했다.

연방경찰과 세이프 키드 캐나다의 팁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다

1. 9살 이하의 어린이는 무조건 보호자가 동행해 주의를 살펴야 한다.
2. 아이들에게 반드시 "멈춰, 왼쪽과 오른쪽을 잘 봐, 항상 눈과 귀를 열어놔"라고 가르쳐라. 
3. 무조건 안전한 길로만 걷게 하라. 뛰지 말고, 어둡기 때문에 다칠 수 있으니 공원이나 잔디밭은 피해라.
4. 할로윈 의상은 부모와 함께 준비하라. 운전자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할로윈 의상에는 반드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형광봉이나 안전등을 소지하라.
5. 모든 운전자들은 반드시 속도를 늦춰라.
6. 불이 꺼진 집은 들어가지 마라. 보호자 없이 갈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7. 애완동물은 절대 만지지 말고 할로윈 장식물들을 손대지 말아야 한다.
8. 부모는 아이들이 사탕을 먹기 전 반드시 어디 제품인지 확인을 해라.(작년에 발생한 멜라민 파동 즉, 중국의 오염된 밀크 사건 이후로 캐나다 부모들은 중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거의 없다)
9. 불꽃놀이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해라.
10.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호신용 호루라기나 전화기 등을 소지하라. 경찰은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전부 모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연락이 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사에서는 신종플루 확산에 따른 할로윈데이 안전수칙을 발표했다. 캐나다 건강보건기구의 데이비드 박사는 <밴쿠버선> 10월 31일자에서 "할로윈 축제 준비 전에 부모들은 반드시 아이들에게 백신주사를 접종시켜야 하며, 집을 나서기 전에 마스크를 준비해 가라"고 권고했다.

밴쿠버 버나비시 커뮤니티 센터에서 할로윈 축제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 ⓒ 유정임


손소독제 들고 동네 한바퀴... 그래도 놀긴 놀아야지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캐나다 도심의 성인들은 할로윈데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거나, 대처법을 서로 주고받기도 한다.

올해 할로윈데이 저녁, 캐나다 도심 곳곳은 저녁 6시부터 9시 사이에 불이 꺼진 집이 많았다. 분명 사람들이 있는데도 "귀찮다"면서 불을 일부러 꺼놓았다고. 또 방송인인 다니엘(34)은 "내 동생은 아이들이 셋인데, 작년에 잘못 먹은 사탕 때문에 병원을 여러 번 다녀와야 했다"며 할로윈데이 거부반응을 보였다.

밴쿠버 웨스트에 거주하는 교민 김모씨는 할로윈데이에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200명까지 어린이들이 방문한다면서 "문 앞에 '노 모어 캔디'(사탕 없음)이라고 종이를 붙여놓으면 아이들이 그냥 돌아간다"고 나름의 대처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할로윈데이에도 축제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신종 플루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보호자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어떤 부모는 자녀들이 사탕을 받으러 들어갔다 나오면 손소독제로 아이들의 손을 닦아주기도 했다.

밴쿠버 다운타운 그랜빌 스트리트의 한국인 유학생과 할로윈 의상을 입은 캐나다 사람들. ⓒ 유정임.


밴쿠버 버나비시에 사는 이미정씨는 "가지 말라고 했지만 기어코 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왔어요"라며 "10여 군데 집을 돌아다녔는데 혹시나 해서 손소독제를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온 가족이 나온 경우도 많았다. 버나비시에 사는 케린은 "작년에는 아이들끼리 다녀왔는데 올해는 따라 나왔다"면서 일주일간 남편이 할로윈 의상과 분장 준비를 도맡았다고 전했다.

밴쿠버 다운타운도 축제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젊은이들로 가득한 그랜빌 스트리트 주변은 수영복 차림의 남성 여성들, 치마를 입은 남성의 모습, 기모노를 입은 캐네디언, 기이한 복장의 사람들로 장관을 이뤘다.

할로윈 안전수칙 덕인지 몰라도, 올해 캐나다의 할로윈데이는 별 사고 없이 잘 지나갔다. 단, 이들의 올해 사진첩에는 유난히 마스크를 착용한 사진이 많이 보일 것 같다.
#할로윈데이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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