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가 되어버린 미래형교육과정

[2009개정교육과정 1차시안분석①] 미래형교육과정에서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등록 2009.11.04 12:18수정 2009.11.0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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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7일 서울교대 첫 번째 토론회에서 "글로벌 창의인재 육성을 위해 교육과정의 새 판을 짜겠다"고 했던 미래형교육과정. 9월 29일 1차 시안 공청회를 마치고 게시판까지 따로 만들어 의견을 수렴하겠다더니 10월의 2차 시안은 발표하지 않고 벌써 홍보자료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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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개정이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교과부는 벌써 홍보자료를 만들었습니다. 2009개정교유과정 게시판에 올려진 자료입니다. ⓒ 신은희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이름을 바꾼 1차 시안 공청회에서는 학교급별 편제표를 가지고 학교 단위의 수업시수 20% 감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발표하다보니 내용도 부실하고 교육과정도 아니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교육정책 수준이거나 겨우 운영방안에 관한 것을 가지고 왜 교육과정개정까지 가느냐는 반발도 많습니다. 이부영 기자는 "2009개정교육과정이 교육과정이 아닌 이유"에 대한 연속기사를 4편이나 내보냈습니다. (관련기사 : 2009개정교육과정 공청회장에 가다) 정말로 그럴까요?

미래형교육과정 어떻게 흘러왔나?

미래형교육과정은 MB정부의 공약으로 발표되었고, 핵심내용은 이주호 교과부차관의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라는 책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은 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가 몇 번의 국민토론회에서 관련 내용을 흘리고, 정식으로는 2월부터 시작된 토론회를 통해 모습을 조금씩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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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교육과정 연구 진행 일정입니다. 9월 29일 2009 개정교육과정으로 이름을 바꿨고 12월에 고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 신은희


토론회마다 주제를 걸고 자문회의와 교육과정특위에서 비밀리에 의논한 내용을 발표하였습니다. 교육과정특위위원도 비공개로 조직하고, 토론회에 나오는 토론자도 어떻게 선정되었는지 모릅니다. 교육관련 단체에서 토론에 참여하고 싶다고 몇 번을 요청해도 안 된다더니 그 중에는 2번이나 나온 토론자도 있고, 학부모단체는 거의 1곳만 계속 나왔습니다.

자문회의에서 나온 최종 내용은 7월 24일에 미래형교육과정 구상(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뒤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교과부로 넘긴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 교과부에서 교육과정 특위 TF팀 교수에게 8월 11일부터 9월 12일까지 2009개정교육과정시안연구를 시킨 뒤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 넘긴 내용이 9월 29일 발표된 1차 시안입니다.

이 과정에 교과부 내의 이견이 겉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미래형교육과정 내용이 알려질수록 내용도 방식도 과거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집중이수제가 전인교육에 어긋나고 입시교육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9월 10일 교과부장관이 내용을 재검토하겠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다음날인 9월 11일에는 교과부차관이 미래형교육과정을 원안대로 추진한다는 기자간담회를 하였습니다. 일정을 보니 아직 연구진의 시안 연구가 끝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1차 토론회 때부터 나온 내용과 9월 공청회 시간을 비교해 보면 남아 있는 내용이 있고 사라진 것도 있습니다. 1차 토론회에서는 글로벌 창의인재의 뜻과 상, 역량중심 교육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이번만은 7차와 2007개정교육과정에서 못 다한 것을 해결하고 교육내용을 창의력 개발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2차 토론회에서는 "미래형 교육과정의 구조와 실효화 방안"을 주제로 1차의 문제의식을 더욱 살려서 교과교육과정을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 발표하였습니다. 7차교육과정이 교육내용 30%를 줄이면서도 실제 내용에는 별로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총론에 교과교육과정 개발 기준을 제시하는데, 교과를 대표하는 핵심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개발하고 교과내용 조직도 창의적 사고와 고차원의 사고기술을 교차시켜서 창의적 사고 수업이 가능하도록 개발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교과교육과정을 포함하여 전면개편을 하려는 생각이 있었나 봅니다. 그동안처럼 교육과정 개정이 5년 이상을 바라보는 장기계획으로 진행되었다면 가능했겠지요.

교육과정이 아니라 교육정책?

3차 토론회에 가서는 글로벌 창의인재를 기르기 위해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10년에서 9년으로 줄여 고등학교를 모두 선택형 교육과정으로 바꾼다. 학생 학습부담을 줄이기 위해 초중학교에서는 2~3년의 학년군으로 하고 국민공통기본 10개 교과를 7개 교과군으로 줄여 학생들의 학기당 이수교과목 부담을 줄이겠다. 국가 수준의 교과시수편제를 없애 단위학교에서 교과군 범위내의 교과 시수를 자율적으로 정하고, 6, 9학년 학업성취도평가로 질관리를 하겠다(3차 토론회 내용)"로 정리가 됩니다. 초등학교에서 돌봄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1학년부터 6교시를 하겠다는 것도 이 때 나왔습니다.

7월에는 3차 토론회 안에다가 수능개편안도 나오고, 9월 학기제나 고교학력인정제 같은 정책제안도 있었는데, 9월 1차 시안에 가면 이런 내용도 다 빠지고 거의 학교교육과정운영방안 정도로 축소가 됩니다. 더 이상 교과교육과정 개편 같은 것은 하지 않고 교과서도 그대로 쓰겠다고 선언합니다. 올해 연구하고 다듬어 고시까지 해서 정권이 끝나기 전에 실행하려니 이런 무리수가 생긴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보니 굳이 교육과정 개정이라기보다는 교육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핵심역량 연구는 빠져

미래형교육과정이라고 할 때에는 글로벌 창의인재와 핵심 역량 교육, 수능제도 개편 등 교육목표, 교과교육과정, 교육 평가와 선발 체제 등 공교육 체제 전반에 걸쳐 개선하려는 의지가 조금은 보였습니다. 특히 핵심 역량 교육은 지나치게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교과교육체계와 입시준비에 매몰된 학교교육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였습니다.

그런데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가면서 이 내용이 완전히 사라지고 전에도 하던 고등학교 선택교육과정을 통해 역량을 기르겠다고 합니다. 그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 년간 초중학교 학생부터 평생교육 연령대까지 길러야 할 핵심역량에 대한 기초연구는 해왔습니다. 한편에서는 경제계에서 처음 나온 역량 개념을 교육에 맞게 못바꿔냈다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연구가 계속 된다면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진 셈입니다.

교과교육과정 개편도 물건너가

교과교육과정 개편도 중요합니다. 총론이 바뀌면 이런 취지를 교과마다 어떻게 반영하고 재구조화하느냐에 따라 총론의 성공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창의적인 수업이 가능하도록 교과교육과정 조직 자체를 바꾸는 노력도 있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많은 영역에 연관성을 알기 어렵게 나열된 내용의 단순 나열도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도 못하고 끝나버려 결국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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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개정교육과정의 교과별로 나오는 내용 영역입니다. 이 영역마다 하위요소로 2개에서 20개의 내용이 나옵니다. 초중등 구분도 거의 없고 내용간의 연관성도 알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교육과정 개정이란 교과교육과정을 얼마나 의미있게 조직하느냐에 달려있는데 2009개정교육과정은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은 셈입니다. ⓒ 신은희


학교자율화 = 학급교육과정 타율화

집중이수제를 통해 학생의 학습부담을 줄이고 학년군, 교과군제로 학교에 자율성을 주는 것은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실상은 교사들이 학급과 학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집중이수제는 교과내용이나 학교의 상황, 시범학교 적용에 따라 단위 학교 교사들이 학기초 논의를 통해 할 수도 있고, 특히 교과간 연계 내용을 프로젝트식으로 수업하는 것은 이미 시도되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교사들의 공동연구가 늘어나야 하는데, 학교 단위로 일률적으로 모든 교과 수업을 4시간 이상으로 하라는 건 행정편의주의입니다. 학교자율화가 결국은 교육과정을 더 타율적으로 만드는 셈입니다.

전학을 가는 학생들의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고, 방학 때 보충한다는 것은 이미 수업의 의미를 상실한 것입니다. 정부는 이 걸로 할 것은 다 했다고 책임회피하겠지만, 학생들의 학습권은 이미 침해된 것입니다.

집중이수제가 그나마 학생들의 피해를 줄이는 것은 결국 교과교육과정 연구와 같이 갈 때나 의미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과서가 학생들의 발달 수준을 고려해 만들었는데 3학년 것을 1학년에 배우고, 1학년 것을 3학년에 배우는 것은 무리가 생깁니다.

초등학교는 계절과 절기에 맞춰 구성한 것이 많은데 이것도 현실과 맞지 않게 되겠지요. 특히 학년군제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교육과정을 학년별로 되어 있는 것을 무조건 합쳐서 쓰라니 현장에서 당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건도 안 되는데 가장 중요한 초등 1, 2학년 교육과정은 졸속으로 뜯어고치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이왕 교과교육과정을 고치지 않을 것이라면 초등 1, 2학년도 장기계획 속에서 연구를 통해 기초를 다져나가야 할 것입니다.

글로벌 창의인재 - 굳이 외래어로?

그나마 살아 있는 글로벌 창의인재론도 여전히 선언에 그칠 뿐 이에 대한 철학적 뒷받침이 부족하고, 모든 교과교육과정, 학교교육과정을 통해 글로벌 창의인재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는 모호해집니다. 교육목표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모든 교육활동의 나침반이 되는 것이어야 하는데, 1차 시안 때까지 연구내용도 나오지 않고 급별교육목표도 안 나온 것은 함량미달이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글로벌 창의인재란 뜻도 그렇고, 교육목표인지 추구하는 인간상인지도 여부도 여전히 모호합니다. 워낙 이론적 바탕이 깔리지 않다 보니 글로별=영어, 창의-수학, 과학으로 해석될 정도입니다.

삼성에서 추구하는 기업이론을 공교육에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즉 한 사람의 인재가 수 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잘못된 전제 아래 소수에만 집중하는 교육을 정당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아무리 발전해 간다 하여도 어떤 인재와 어떤 인간상을 기를 것인가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혹 여기에 동의한다고 해도 글로벌이란 말을 그대로 쓰는 것도 문제입니다. global은 한국말로 "세계적"으로 고치면 됩니다. 한 나라의 교육목표에 굳이 외래어를 넣어서 추구하는 목표까지 국적불명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시행하자

자문회의가 초기에 교육과정을 바꾸려고 했던 것은 더 이상 학생들의 장시간 노동과 쥐어짜기식 교육, 공교육보다 커진 사교육시장, 입시교육 외에 무엇도 발붙이기 어려운 교육체제로는 더 이상 공교육이나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그 때문에 여러 사람이 교육과정개혁이 모든 교육개혁의 종착점이라고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졸속 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우리 교육이 심각한 병을 앓고 있고, 그래서 더욱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바꿔나가야 할 것에는 동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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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에서 교사들에게 보낸 학교교육과정 자율화 문서입니다. 교육과정은 고시도 안되었는데 전국의 모든 학교에 11-12월까지 내년도 학교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짜라고 이미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내용을 보면 미래형교육과정의 핵심운영방침이 다 들어있습니다. 시도교육청이 교과부의 권한을 침해한 셈이지만, 2009개정교육과정이 학교운영방안 정도로 되어버렸으니 이제 별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 신은희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이런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정작 손볼 것은 손보지 않고 학교교육과정만 가지고 요리조리 주물럭거리는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교육과정 개정이 아니라 교과부의 운영지침 변경으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교과부는 교육과정 고시도 하기 전에 학교자율화 지침을 내려보내 당장 내년부터 교육과정 자율화를 실행한다고 합니다.

정권이 바뀌면 교육과정도 바꾼다?

결국 미래형교육과정 논쟁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교육과정을 이제는 정권따라 바꾼다는 선례만 남겨놓은 것 같습니다. 사회 양극화가 교육을 통해 재생산된다는데, 학교자율화를 통해 입시교육 전횡, 학생인권 침해, 전인교육 와해와 뒤엉켜 공교육의 근본 자체를 뒤흔들 것이란 우려도 더욱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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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가 만든 2009개정홍보자료집 일부분입니다. 학교교육과정이 입시교육으로 가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학부모의 선의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국가교육과정의 질을 관리해야 할 교과부의 책임은 없어지는 것일까요? ⓒ 신은희


10개월이 넘는 교육과정 논쟁을 보면 찬성하는 측은 뚜렷한 논리 없이 "그래도 미래형교육과정이 대안이다"라고 하고 반대하는 측은 점점 늘어만 갑니다. 미래형교육과정이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가면서 빠진 내용이 많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교육 지형 자체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서 교육대운하란 비판도 빠지지 않습니다.

대운하 추진 과정에서는 관련 학자들이 적극 나서서 국민들에게 알리고 여론을 이끌었는데 교육학계에서는 이런 논쟁도 거의 없습니다. 교사들에겐 통합을 요구하면서 정작 연구자들은 문제가 많다고 느끼면서도 자기 전공 아니면 기고문 하나 제대로 쓰지 않는 분과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지켜봐야 하는 교사들은 참 많이 답답하고 미안합니다.

덧붙이는 글 | 2009개정교육과정 작업은 여전히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학교에 실행할 때도 아는 사람만 시행하라고 할까요? 연구단계부터 공개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정신이 아쉽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9개정교육과정 작업은 여전히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학교에 실행할 때도 아는 사람만 시행하라고 할까요? 연구단계부터 공개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정신이 아쉽습니다.
#2009개정교육과정 #미래형교육과정 #학교자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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