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그 여자의 기억력

기억의 공유

등록 2009.11.04 15:53수정 2009.11.0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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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1년 가까이 잊고 있었다가 최근에 알게 된 일입니다. 피붙이, 겨레붙이, 인연지기 등 40여 명에게 보낸 지난해 9월 30일의 '가족 메일'을 일년 후 같은 날에 읽어보고 다시 알게 된 일이지요.

 

 우선 2008년 9월 30일 전송한 '가족 메일'의 해당 부분, 즉 9월 24일에 있었던 일 한가지를 소개해 봅니다.

 

'천주교계 월간지 <0000> 편집부에서 일하는 000 자매로부터 며칠 전에 전화를 받았네. 모처럼 만의 전화였는데, 그렇게 오랜만에 전화를 한 이유는 내게 '긴급청탁/구조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네. 11월호에 들어갈 글 하나를 펑크낸 사람이 있어서 그 자리에 들어갈 13매 분량의 콩트를 요청하는 것이었네. 그날(24일) 저녁에 써서 다음날 아침까지 보내달라는 SOS이었네. 어이가 없더군. 그래도 써주겠다고 했네. 그리고 저녁에 대충 생각해 놓았다가 다음날(25일) 새벽에 정확히 13매로 콩트 작업을 해서 오전에 전송을 해주었네. 그런데 원고를 받아본 000씨 왈, "그렇게 벼락치기로 쓰신 글인데도, 글이 어쩌면 그리 좋대요. 감탄했어요.'

 

 그런데 내 콩트는 그 잡지 11월호에 게재되지 않았습니다. 게재되지 않았는데도 고료 10만 원이 내 통장에 입금되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내게 원고 청탁을 한 잡지 관계자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내 글은 12월호에도 게재되지 않았습니다. 궁금했지만 나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짐작되는 바가 있었습니다. 글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의 이름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는….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습니다.

 

 내게 글을 청탁한 쪽에서는 계속 아무 말이 없는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그 일을 잊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1년 후에 다시 알게 되었는데, 그 잡지의 올해 11월호에도 내 글은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지면에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버려 두기는 아깝고 해서….

 

 긴급하게 청탁을 받고 쓴 글인데도, 내게 청탁을 한 잡지사 관계자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또 10만 원의 고료를 받았는데도 그 글은 일년이 넘도록 그 잡지에 게재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정말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있을 것도 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듯싶습니다. 이런저런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이 시대의 일면일 수도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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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정든 애마 내년이면 10년이 되는 프레지오 12인승 승합차. 지난해 내게 재미있는 콩트도 하나 선물해 주었다. ⓒ 지요하

▲ 우리 가족의 정든 애마 내년이면 10년이 되는 프레지오 12인승 승합차. 지난해 내게 재미있는 콩트도 하나 선물해 주었다. ⓒ 지요하

                                     [콩트] 그 여자의 기억력

 

 "인간의 위대성은 바로 기억력이 기초야. 기억이 인간의 대표적인 특징이라는 얘기지. 하느님을 모실 수 있는 내적 힘, 역사를 관통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건 인간만이 지닌, 하느님이 주신 가장 큰 은총의 힘이야. 더불어 기억은 구약과 신약 등 모든 성서의 핵심 주제이며, 우리 교회공동체의 보편적 전례 기도인 미사성제도 바로 이 '기억'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지."

 

 나는 최근에 들은 함세웅 신부님의 '기억'에 관한 말씀을 아내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그것과 관련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던 끝에 기억에 관한 부분을 소개했는데, 우리는 어느새 청양읍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는 네거리의 붉은 신호등 앞에서 차를 멈추었다.

 

 "공교롭군. 기억에 관한 얘기를 하자마자 또 이 지점에서 차를 멈추게 되네. 당신도 기억나지? 이 지점에서 우습게 삼만 원이 날아갔던 일…. 그때가 벌써 3년 전인가?"

 "그럴 거예요.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니까, 햇수로 3년 전이에요."

 "별 거 아닌 일인데도, 이 지점을 통과할 때는 꼭 그때 그 일이 생각난단 말야."

 

 청양 읍내 외곽도로 사거리였다. 공주, 보령, 부여, 홍성 등 네 갈래로 길이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우리는 3년 전의 그때와 마찬가지로 홍성 쪽에서 와서 부여 쪽으로 갈 참이었다.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 부부는 자연발생적으로 3년 전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자연적인 기억의 재생이었다.

 

 지금은 내 승합차가 붉은 신호등 앞에 홀로 서 있는 상태지만, 그때는 먼저 신호를 받고 있는 한 대 승용차의 뒤에 서게 되었다. 승용차는 고급 중형차가 아닌 평범한 흰색 승용차였다. 나는 핸드브레이크를 올리지 않고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좌석 뒤를 돌아보며 먹을 것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브레이크를 밟은 발이 조금 올려진 상태가 되었고, 약간 경사진 길이라서 내 차가 움직이게 되었다.

 

 나는 차의 움직임을 느끼고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 끝이 앞 승용차의 꽁무니에 닿고 말았다. 약간의 충격이었지만, 승용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 우리처럼 그쪽도 부부였다. 나는 약간 후진을 했고, 우리 부부도 곧 차에서 내렸다.

 

 승용차의 꽁무니를 살펴보니 찌그러진 데는 없었다. 뒤 범퍼 중간에 눈곱만한 흔적이 있었다. 워낙 경미한 충격이어서 살짝 닿았던 부분의 칠만 눈에 보일 듯 말 듯 벗겨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운전자 사내는 인상이 곱지 않았다. 나는 지체 없이 지갑에서 3만 원을 꺼내어 사내에게 내밀었다.

 

 사내는 말없이 돈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들 부부는 차에 올라 푸른색으로 바뀐 신호등 밑을 지나갔다. 우리 부부도 곧 차에 올랐으나 승용차 뒤를 따라가지 않았다. 신호를 한번 더 받은 다음 나는 차를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삼만 원 한번 우습게 나가네. 운전 경력 이십 년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군."

 "삼만 원을 너무 아까워하지 말고 얼른 잊어요. 그 정도로 끝난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동안 말없이 차를 몰다가 아내에게 물었다.

 

 "만약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나도 돈을 받았을까?"

 "당신은 우리 차 꽁무니의 눈곱만한 흔적보다도, 상대방의 삼만 원 손실을 더 중하게 여겼을 거예요. 돈을 요구하지도 않고, 상대방이 당신처럼 지체 없이 돈을 내밀어도 받지 않았을 테고…."

 "고마워요. 당신이 날 그렇게 인정해주니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삼만 원을 벌충한 것 같은 기분이군."

 

 결국은 즐거운 기억이었다. 그 네거리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그 날의 사고(?)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결국에는 즐거움으로 귀결될 수 있는 기억을 우리 부부는 공유하고 있는 셈이었다.

 

 우리 부부가 그렇게 청양 읍내 외곽도로 네거리의 붉은 신호등 앞에서 잠시 동안 기억의 재생을 공유하고 있을 때였다. 내 승합차 꽁무니에서 약간의 충격음이 났다. 아주 경미한 충격임을 감지하면서도 나는 차에서 내렸다.

 

 흰색 승용차 한 대가 약간 후진을 한 다음, 차에서 여성 운전자가 내렸다.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안경을 쓴 여성이었다. 우리는 함께 내 승합차 꽁무니를 살펴보았다. 범퍼 한 부분이 살짝 찌그러진 상태였다. 나는 승용차의 앞 범퍼도 살펴보았다. 역시 한 곳이 약간 찌그러진 상태였다.

 

 승용차의 앞 범퍼도 살펴보는 내게 승용차 여성 운전자가 돈을 내밀었다. 10만 원 수표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 정도로 경미한 사고인 것을 서로 다행으로 여기고, 함께 축하합시다."

 

 그리고 나는 지체 없이 차에 올랐다. 어느새 푸른색으로 바뀐 신호등이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아내도 나를 재촉했다.

 

 그런데 신호등 밑을 통과하고 속도를 올릴 때였다. 바짝 따라온 흰색 승용차가 비상등을 켠 채로 경적을 울리면서 내 차를 추월하더니 앞에서 멈추어 섰다.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승용차 뒤에 멈추어 선 다음 유리창을 내렸다. 승용차에서 내린 여성 운전자가 내게로 와서 다소 빠른 말씨로 말했다.

 

 "아까 바로 그 지점에서 삼 년 전에 똑같은 사고가 있었지요? 그때 선생님에게서 삼만 원을 받은 사람의 아내예요. 그때 전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요. 너무 미안하고 부당하게 느껴져서, 그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그때 그 생각이 나곤 했어요. 그때의 그 불유쾌한 기억을 오늘 좋은 기억으로 바꿀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에요."

 

 그러더니 그 여성 운전자는 손에 쥔 수표 한 장을 빠르게 내 차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돌아가 차에 오르더니 잽싸게 출발을 해버렸다. 너무도 빠른 동작이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이내 차를 움직일 수도 없었다.

2009.11.04 15:53 ⓒ 2009 OhmyNews
#인간의 기억 #접촉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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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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