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연쇄살인]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차이점은?

김갑수 통일추리소설 BK연쇄살인사건 (39회) 단상(斷想)

등록 2009.11.19 09:35수정 2009.11.19 09:47
0
원고료로 응원
아브라함과 조수경을 태운 차는 옥류관으로 향했다. 아브라함의 차는 제복을 입은 북한 보안원들의 오토바이 경호를 받고 있었다.

"남쪽보다 더 대우를 받으시는군요?"
"나는 이곳에서 러시아 사회사업가로 알려져 있답니다."
"실제 국적은 어디입니까?"
"나야 한국인이지만 서류상 국적은 미국과 러시아입니다."

옥류관 마당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북한 주민들은 먼저 식권을 구입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한 별실로 안내되었다.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소나무 그림이 붙어 있는 방이었다. 창밖으로는 화사한 꽃밭이 있었다.

"미스 조, 해방정국의 테러리스트 염동진을 알지요?"
"부끄럽습니다만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이번 수사에서는, 북한에도 염동진 부류의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을 상정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우익이 아니라 좌익이겠군요?"
"그냥 좌익이 아니고 극좌겠지요. 다만 폭력적인 점에서는 염동진과 같을 거고요."

조수경은 아브라함의 추정이 비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상식적인 것일 따름인데 자기로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남에서는 극우가, 북에서는 극좌가 이번 사건을 저지르고 다닌다고 보시는 겁니까?"
"두 부류가 공동 이익을 위해 야합했다고 볼 수도 있고요..."

조수경은 '야합형 북풍'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래도 이번 사건들은 두 부류를 조종하는 초월적 세력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가능한 추정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손을 넓게 벌리더니 냉면 그릇을 보듬어 안듯이 잡았다.

"나는 이렇게 육수를 먼저 마신답니다."
"잘 먹겠습니다."
"미스 조, 신용카드는 뭘 씁니까?"
"카드요? S 카드입니다."
"그걸로 냉면 값 결재가 됩니다. 기념으로 한 번 사용해 보세요."

조수경은 젓가락으로 면발을 저어 보았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했다.

"평양냉면은 메밀에 녹말을 섞지 않으므로 면발이 약합니다."
"질긴 것은 함흥냉면이라고 들었습니다."

조수경은 함경도로 출발한 김인철을 잠깐 생각했다.

"그렇습니다. 6·15 정상회담 때 남한 기자들이 이곳에서 냉면을 먹는데 가위로 잘라달라고 했다가 여종업원에게 핀잔을 듣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냉면은 그냥 먹어야 제격이고 특히 평양냉면은 잘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물론 음식을 어떻게 먹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니까 딱히 어느 것 하나만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요."

조수경은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남한의 기자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알고 틀리는 것과 모르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미스 조,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경박하지 않다면 저널리스트가 되지 말라.'"
"북한에서 수사하니 취재진이 붙지 않아 편합니다."
"하지만 남한 기자들은 역이용하면 오히려 큰일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조수경은 함경도 이상준의 사택에 김인철을 보냈다는 말을 했다.

"그 북한학을 전공한다는 젊은 수사관 말이지요? 미스 조가 수사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겁니다. 북한에서는 범행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6월 15일로 예고한 날짜를 맞춰야 하는 범인으로서 무리를 안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이런저런 곳에 흔적을 남길 수도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네. 저로서는 기대가 큽니다."

"그는 미스 조에게 최적의 파트너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프로파일링은 안 했지요?"
"서울에서 분석 결과가 오면 착수할 예정입니다."
"꼭 북한의 테러 역사를 공부한 다음에 하세요."

김인철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상준의 집무실에서 족적과 모발이 채취된 것이다. 물론 족적과 모발은 여러 사람의 것이었다. 검사 결과 여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족적과 모발이 있었다. 그리고 독극물이 보관되어 있었음 직한 서랍에서는 두 사람의 지문이 채취되었다. 그런데 그 중 하나는 이상준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이상준을 독살한 범인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었다. 지문의 크기로 보아 그것은 남자 어린이든지 여자의 것이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이상준에게 잡혀 단천 수용소에 들어갔다는 응원단원이었다.

김인철은 A4 용지에 프린트 된 사진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미모의 북한 처녀 세 명의 사진이 있었다.

"남한 네이버 사이트에 올라 있는 북한 응원단 처녀 사진입니다. 왼쪽에서 한껏 교태부리는 미소를 짓고 있는 처녀가 바로 그녀입니다."
"대단한 미인이네."
"그때 남한 신문에서 '자연미인'이란 용어를 써 가며 사진과 함께 대서특필했잖습니까?"
"맞아. 부산 아시안게임 때였어."

"그런데 이 응원단 처녀가 북한에 돌아온 다음, 이상준에게 조사 받은 후 수용소에 갇혔다고 했잖습니까?"
"수사 기록에 그렇게 되어 있었어."
"수용소에서 나온 후 이상준과 오히려 친해졌답니다. 그래서 이상준의 집무실을 무시로 드나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처녀가 이상준이 독살된 직후 실종된 겁니다. 서류상으로는 중국으로 탈출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주 유력한 용의자군. 그렇다면 이 여자가 범인의 지시로 이상준을 독살한 후 시체를 배후 범인에게 인도했다고 보아야겠네?"
"그렇습니다. 이 여자는 사건 해결의 관건입니다. 배후 범인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배후 범인은 그 사체를 가져다가 글씨를 쓰고 대동강에 띄운 것이고?"

그러나 사건 해결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 땅을 탈출했다는 여자를 당장 찾아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서울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날아 왔다. 인민배우의 몸에 남아 있던 정액에서 유전자가 분석되었고 카드섹션 책임자였던 40대 여자의 발톱에서도 혈흔과 지문이 채취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40대 여자 발톱에 있는 혈흔으로 유전자를 분석했는데, 그 유전자가 20대 인민배우의 몸에서 채취된 정액의 유전자와 일치했다. 물론 어떤 경위로 범인이 40대 여인의 발톱에 자신의 피를 묻혔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한도 여자 둘을 죽인 것은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확증이 되는 것이었다.

조수경은 북한 전과자들의 증거 자료 보관 실태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지문이나 유전자의 데이터베이스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유천일에게 물었다.

"데이터베이스라고요?"

옆에 있던 김인철이 거들었다.

"선배님 이곳에서는 데이터베이스를 '자료기지'라고 한답니다."
#평양냉면 #옥류관 #데이터베이스 #극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특검하면, 반나절 만에 다 까발려질 것"
  2. 2 오스트리아 현지인 집에 갔는데... 엄청난 걸 봤습니다
  3. 3 '아디다스 신발 2700원'?... 이거 사기입니다
  4. 4 거대한 퇴행,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5. 5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