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서관 104호실 젊은 직원은 진정 프로였다

등록 2009.11.21 10:56수정 2009.11.21 10:5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6일엔 국회도서관에 갔다. 사이버로 사회복지 법제라는 과목을 듣고 있는데 그 과목의 리포트를 제출하기 위함이었다. 내겐 그 리포트를 참조할만한 책도 없고 그렇다고 지역도서관에도 그 책은 없던 터라 시간을 내 그곳까지 찾아 간 것이다. 마천동에서 여의도 국회도서관까지는 시간상으로 재보지는 않았지만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듯 했다.

 

처음 그곳을 이용하는 처지라 입구에 있는 안내원 두 분 중 한 분에게 문의를 했다. 그 분은 뒤편에 있는 컴퓨터에 몇 가지 조회를 거친 뒤 ID와 비밀번호를 부여받도록 알려주었다.  그 절차를 마친 뒤 안내원은 내게 출입증을 건네주었다. 물론 다음번에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컴퓨터를 통해 직접 그 절차를 진행토록 당부하기도 했다.

 

내가 읽고 리포트를 써야 할 책은 윤찬영의 <사회복지 법제>였다. 출입증으로 출입허가를 받은 뒤, 저 멀리 안쪽에서 안내하고 있는 또 다른 안내원 한 분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그 분도 뒤편에 있는 컴퓨터로 책을 신청하도록 알려줬다. 그 절차를 통해 나는 두 권의 책을 빌렸고,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그 책이 준비돼 있다고 전광판에 쓰여 있었다.

 

"혹시 이 책을 읽고 컴퓨터로 작업을 할 만한 곳이 있나요?"

"예, 위 층 104호실에 가면 할 수 있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그로부터 1시간 동안 그곳 104호실 최신 자료실에서 리포트의 핵심이 될 만한 내용들을 간추려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컴퓨터로 옮겨 저장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던 나는 그 자료실 안 안내 맡은 젊은 남자분에게 그 요청을 했고, 그랬더니 뒤편 컴퓨터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로부터 30분 만에 작업을 끝마친 나는 그때서야 그곳 컴퓨터가 책 검색 기능과 한글 편집 작업만 할 수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저기서 작업한 것을 혹시 인터넷으로 옮길 방법이 없을까요?"

"예. 이 디스켓으로 저장하시고, 저쪽 106호실에서 인터넷으로 보내세요."

"너무 감사합니다."

 

그 분이 준 플로피 디스켓으로 내용은 손쉽게 저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독도자료실이라고 안내판이 쓰여 있는 106호실에서는 그 디스켓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해도 되지 않자, 다시금 104호실의 그 분에게 다른 방법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디지털입법자료센터로 가 보도록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읽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왜 이 좋은 국회도서관의 컴퓨터들이 플로피 디스켓 하나 읽지 못한단 말인가? 이게 2005년판 한글이라 그럴까? 그렇지만 다른 곳들도 모두 2005년판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 결국 USB를 가지고 와야 하는 사실조차 모른 내가 잘못이라 여기고, 화를 꾹꾹 눌러 앉힌 채, 다시금 그 분에게 요청을 했다.

 

"제가 드린 디스켓이 문제였네요. 죄송합니다. 이것으로 한 번 해 볼까요?"

 

결국 그 분이 다른 디스켓으로 직접 입력해 준 결과, 드디어 106호실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내친 김에 나는 그곳에서 10분가량 작업을 더 한 후에 인터넷으로 리포트를 제출하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다시금 마천동으로 되돌아오는 전철 안 내 머리속에는 좀 전의 104호실 그 젊은 직원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두 세 번씩 요청을 하는 내게 한 번도 얼굴을 붉히지 않았고, 말씨조차 흔들리지 않고 한결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을 처리해 주었으니, 그 분이야말로 그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였던 것이다.

 

교회를 맡고 있는 나는 그에게서 귀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만약 나 같은 교인이 내게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거나 귀찮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라도 나는 한결같이 맞아줄 수 있을까? 새벽 한 밤중에 누군가 시간을 다투는 일로 찾아와 달라고 요청한다면 나는 흔쾌한 마음으로 찾아 나설 수 있을까? 정말로 얄미운 교인이 계속 나를 괴롭힐 정도로 상담을 요구한다면 그 때에도 흐트러짐 없이 그 분의 대화에 응할 수 있을까?

 

분명 쉽지 않는 일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게 아낌없는 대우를 해 주었던 그 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 역시도 내게 요구하는 누군가의 고민과 고충을 일흔 번에 일곱 번 씩이라도 마음껏 받아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프로크리스천이자, 프로목회자로 거듭나는 길이지 않을까 싶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독정론지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2009.11.21 10:56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독정론지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프로크리스천 #프로목회자 #국회도서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윤 대통령, 류희림 해촉하고 영수회담 때 언론탄압 사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