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제 월급이 반장님보다 5만 원 많네요"

벌어도 벌어도 빚잔치 신세!

등록 2009.11.23 15:43수정 2009.11.23 15:4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930260은 내 사원번호다. 1993년도에 260번째로 회사에 들어왔다는 말이다. 입사한 1993년 11월, 그때부터 지금까지 급여지급 명세서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고 있다. 며칠 전 서랍안에 모아둔 명세서를 진짜 오랜만에 다 꺼내 보았다. 처음에 받은 급여명세서를 보니 1만1500원, 이게 내 일급이었다.


16년째 일하고 있는 지금 일급은 4만2874원이다. 가장 최근에 받은 급여를 보면 연장근무와 휴일 특근이 없을 경우에 수당 포함해서 137만1220원. 여기에 세금,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노조회비 제하고 나면 실제 받는 돈은 117만4200원이다.

여기다가 상여금이 두 달에 한 번꼴로 매년 650%가 나온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생활이 될 만한 돈이고,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그나마 낫지만 딸린 가족이 있는 사람은 진짜 그달 그달 버티며 산다.  

해마다 임금 인상을 하고 있지만 일급 오르는 것보다 물가는 더 오르고 세금은 더 많이 내야 하는 게 누구나 다 아는 현실이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형님은 근속년수가 35년이 넘지만 세금 공제하고 실 수령액을 보면 진짜 백오십만 원이 안 된다.

형님은 애들 대학 가르치고 네 식구 밥 먹고 살기 어렵다고 늘 이야기하지만 마땅히 다른 대안이 없다. 이러니 연장근무라도 한 번 더 하려 하고 주말에 특근이라도 있으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그것도 일거리가 있을 때 이야기다.

"내가 반장님보다 5만 원 더 나왔네요"


엊그제 월급날, 작년에 고등학교에서 취업 나와 아직 1년이 안 된 스무 살 주원이가 급여 명세서를 보고 나한테 오더니 "장 반장님! 나 월급 많이 나왔어요"하면서 내 명세서를 보더니 "어? 내가 반장님보다 5만 원 더 나왔네요. 야아아!" 좋아서 손을 흔들며 나한테 자랑한다. 주원이는 일급 3만1500원인데 지난달에 2주간 야간근무를 하고 119만0000원을 받았다. 그 돈 벌려고 밤새 열두 시간 동안 잠 안 자고 일한 걸 보면 주원이가 좀 짠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주원이가 야간을 했고 나는 잔업을 안 했다고 해도 이제 1년도 안 된 애가 나보다 월급이 더 많다는 것은 참 씁쓸한 일이다.

벌어도 계속 늘어가는 빚. 어제도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보니 현금서비스가 삼백만 원인데 이자가 십만 원이나 된다. 방송에서 현금 서비스를 받으면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 신협에서 추가 대출을 받아 갚기로 했다.

이것도 카드 서비스보다 이자는 싸지만 두 명의 보증인이 필요하다. 요즘 같은 때에 누구한테 보증 서달라고 부탁하기도 어렵고 또 잘 서주지도 않는다. 올해 봄에 오백만 원을 대출받았는데 또 추가로 대출을 하는 걸 보면 도대체 일하면서 돈은 버는데 왜 빚만 늘어나는지 어디다가 뻘짓거리 하는 것도 아닌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모를 일은 아니지, 당연히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턱없이 많으니까 그런 거지. 집에 들어가는 돈 말고 애 보육료, 통신비, 교통비, 먹고사는 거 다 빼고 나도 어디어디 단체 후원 회비부터 현장 부서 모임, 친구 모임 등등 진짜 통장에 돈 들어오면 언제 돈 있었는지 모르게 한순간에 쑥 빠져 나간다.

하루 이틀, 한두 해 된 일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큰 기대하지 않고 받는 월급에 맞춰 살아간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하는 말도 있고 '절 싫다고 떠나지 말고 때려 고치자 절간'이라는 말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더구나 요즘 같은 때에 잘리지 않고 날마다 나와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게 어딘가 하면서 이나마 다행이라 여기고 다닌다.

우리 회사는 1998년도부터 주5일 근무를 시행해 왔다. 토요일에 일을 안 해도 임금은 나오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일을 더 하고 싶어 한다. 회사에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그동안 주말에 쉬지 않고 일해온 시간이 몸에 배어서 오히려 어떻게 쉴지, 쉬는 게 더 피곤하다고 하는 분들도 많다. 쉬는 거는 돈 안 드나?

"형일아! 나 간다"

오늘 점심 먹고 나서 22미리 스패너로 너트를 풀어 기계를 손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형일아! 나 간다"해서 돌아보니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형이 그만둔다고 인사하러 왔다. 며칠 전에 그만둔다고 그 부서에서 송별식 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냥 소문이 아니라 진짜 그만두는 것이다.

나이 사십이 되어 올해로 14년째 일하고 있는 형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 애 둘에다가 형수는 몸이 좋지 않아서 같이 맞벌이 할 처지가 아니라 혼자 벌어야 하는데 몇 년째 계속 잔업, 특근이 없으니 기본급 받아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한다.

형은 회사를 다니며 혼자 공부해서 전기기사 자격증도 따고, 회사 안에서는 기계가 고장났을 때 가장 잘 고치는 사람이다. 회사나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가 봐서도 꼭 있어야 할 사람인데 우리가 사장이 아닌 이상 월급을 더 준다고 잡을 수도 없는 일이다.

형이 현장에 인사하러 돌아다니면서 사람들한테 많이 들었던 말이 "어디 좋은 데 있냐? 있으면 나도 좀 데려가 주라"는 거란다.

물론 농담반 진담반이지만 사람들 마음이 하나같이 다 똑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동안 회사 그만두고 나가서 잘됐다는 사람은 별로 못 봤지만 기술 있고 경험 있는 형은 좋은 대우받고 더 나은 직장 생활을 할 거라 기대해 본다.

요즘 같은 상황에 나가라고 해도 끝까지 버티는 마당에 오죽하면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을까. 그것도 14년이나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진짜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다.

장갑 벗고 손을 잡으면서 형한테 한 마디 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힘없이 돌아가는 형의 뒷모습을 보면서 큰 소리로 한마디 더 했다. "형! 건강해야 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노동세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노동세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준규직노동자 #일자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타이어 교체하다, 대한민국의 장래가 걱정됐다
  2. 2 "김건희 여사 접견 대기자들, 명품백 들고 서 있었다"
  3. 3 유시춘 탈탈 턴 고양지청의 경악할 특활비 오남용 실체
  4. 4 제대로 수사하면 대통령직 위험... 채 상병 사건 10가지 의문
  5. 5 윤 대통령이 자화자찬 한 외교, 실상은 이렇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