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 산마늘이 있다

[시랑헌에서 부르는 나와 집사람의 노래-31]

등록 2009.11.27 11:04수정 2009.11.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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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로 600 m 고지에 산마늘 경작지를 만드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다. 수행터부터는 산길을 올라가야한다. 경작지 부근까지 접근하는 진입로를 만들고 진입로에서는 산마늘을 심고 수확할 수있는 작업로를 만들었다. ⓒ 정부흥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의 산마늘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 산마늘이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그렇다!'. 퇴직 후 내가 먹을 농작물은 것은 내가 재배하겠다는 아마추어에서 소득이 목적인 산마늘 재배사업에 뛰어들어 산채작물을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프로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산동면 사무소 산업계장입니다. 이번 2009년 하반기 주민지원사업 신청서를 보내드릴 테니 원하시면 신청서를 작성하여 보내주십시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산마늘 지원사업의 신청여부가 나와 집사람의 논쟁거리가 됐다.

집사람은 지원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사업 목적이 산마늘을 전문적으로 재배하여 농가의 소득원으로 개발하는 것이므로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은 사업을 한다고 해도 실패하여 소중한 국고만 낭비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농산물을 상품화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지금까지 시행착오로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반대다.

실제로 우리가 경험한 농촌의 실정은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주변의 농가에서는 산림을 망가트리는 우거진 칡넝쿨과 싸우기 위해서 제초제를 살포하고, 농작물에는 점점 더 많은 화학비료와 더 강한 독성의 농약을 사용한다. 나이든 사람들의 부족한 노동력으로 그나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친환경, 무농약 농사는 병원균과 해충의 집중공격을 의미한다. 내가 먹기 위한 농작물을 생산한다는 것도 절대로 만만한 것이 아니다. 다행히 요즈음 행정기관에서 친환경 농사를 선택한 농가에 직불금 형태로 생산량이 감소하고 눈에 보이는 품질의 저하에 대한 보상을 한다고 하지만 이것 만으론 부족하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해서라도 질을 높이고 생산량을 증가 시키려는 농부들은 그것이 옳고 좋아서 하겠는가?


화학비료와 농약을 배제한 채 3년 동안 배추를 심고 가꿨지만 김장용 배추로 사용하질 못했다. 남들 다하는 콩 농사를 하였지만 한 톨도 수확하지 못했다. 의욕만 앞서고 수선만 떨었지 얻은 것이 별로 없다. 밤과 고로쇠을 비롯하여 참깨, 호박, 오이, 들깨, 참마, 오미자 등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비료와 농약을 안 해도 되는 상추, 토마토, 고구마 등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고 땅콩, 부추, 케일, 곰취 등도 아마추어 수준이다. 블루베리 비롯한 각종 과일나무도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절대로 프로가 될 수 없으니 사업을 신청하지 말고 자신들의 건강에나 신경쓰자는 집사람의 주문이다.

이번 지원사업의 목적은 농산물 수입개방에 따라 신선한 국산 산채나물이나 채소들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는 추세에 대비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마련하는 것이다. 도시의 소비자들이 직접 재배농가를 방문하여 하여 산채나물의 재배상황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채취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거나 농가에서 채취한다고 하더라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수입원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아직 초기단계이므로 산동면에 산마늘 재배의 전문농가가 없을 뿐 아니라 아직 산마늘 농사를 망칠 밤벌레와 같이 지역에 만연한 병충해가 없다. 또한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삶의 목적과도 부합된다. 나와 집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산야초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의 기(氣)를 통해 기초체력을 강화하여 건강을 회복하는 사례를 만들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다.

지금까지는 주말의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주로 거주환경을 만드는 일에 치중하고 농사일에는 깊은 관심을 줄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앞으로 시랑헌에 살면서 매일 경작하는 농작물을 돌본다면 지금까지의 상황과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이 산마늘을 비롯한 산야초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망설일 필요 없이 이번 기회에 아마추어와 프로 구분을 훗날로 미루고 산마늘 재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한 치 양보도 없는 논쟁을 벌였지만 사업 신청서 제출 여부는 결정내지 못했다. 시랑헌 터의 소유자가 집사람이니 집사람이 반대하면 사업을 추진할 방법이 없다. 사업신청서 제출여부를 보류하고 일단 면사무소에 가서 담당자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총 사업비는 1200만 원이며 50% 군비지원, 50% 자비부담 조건이라는 것이다. 사업추진 방식은 농가의 자율에 맡기나 모든 경비는 세금계산서에 의해 정산해야 한다. 구례군에는  산마늘 재배농가가 있지만 산동면에는 아직 없다. 산마늘은 생육 특성상 600m 이상의 높은 지역에서 자라며 이런 조건의 산마늘 경작지를 만들 수 있는 농가도 많지 않아 권해드리니 너무 부담을 느끼지 말고 한번 신청서를 제출해보라는 것이다.

신청자 모두 사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신청자가 많을 경우 엄격한 심사를 통해 한 두 농가만 선별하여 지원한단다. 그러므로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고 우선 신청서를 제출하고 선택되어 재배농가가 된다면 최선을 다해 산마늘 재배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좋을 거라며 산마늘에 대한 전망과 약리작용의 설명까지 덧붙인다.

면사무소를 다녀온 집사람은 말은 않지만 은근히 우리가 산마늘 재배농가가 되길 바라는 눈치다. 신청서를 제출하고 3~4일이 지났다. '탈락했구나'느낌이 들었지만 확인 차 면사무소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담당자는 전주 금요일에 군으로부터 통보 받고 바로 연락하려고 했으나 우리가 전화를 받지 않았단다. 나와 집사람은 막걸리, 돼지고기, 두부, 김치로 조촐한 자축파티를 했다. 

우리에게 생소한 산마늘

산마늘은 울릉도 고유 특산식물이다. 최근에 강원도 산간지역 일부에 전파되어 재배되고 있으나 아직 우리에겐 낯선 산나물이다. 고종 19년에 울릉도를 개척하기 위하여 본토에서 이주한 100여 명이 겨울을 지나면서 식량이 떨어져 아사지경에 이르렀을 때 눈 속에서 싹이 나오는 산마늘을 발견하고, 캐다가 삶아먹고 생명을 이었다고 해서 명이나물이라는 별칭을 얻었단다.

산림청 임업연구원 천연물화학연구실과 서울대 수의대 독성학연구실은 산마늘이 콜레스테롤 생합성과정에 작용하는 효소 활성율을 70% 이상 저지해 콜레스테롤 생성을 억제하는 작용을 규명하였다. 강원도농촌진흥원 평창산채시험장에서는 산마늘이 다른 산채에 비해 강한 항균기능을 갖고 있는 사실을 밝혔다. 또 암세포의 활동력을 떨어뜨리는 데 유효하며, 특히 방광 암세포의 기능을 56%까지 저하시킨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산마늘은 여러해살이 풀로써 마늘 부추 달래처럼 독특한 냄새와 매운맛을 낸다. 섬유질이 많아 장의 운동을 자극해서 장안에 있는 독성을 배출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어 각종 성인병 예방에 좋은 효과가 있는 식품이다.

새싹은 1월 말경에 눈 속에서 싹을 보호하기 위하여 섬유질로 된 보호막을 쓰고 흰색으로 올라오며 싹이 튼 후에는 연녹색으로 변한다. 줄기와 뿌리는 파 같이 생겼으며 잎은 4~7cm 정도의 넓고 큰 타원형으로 양끝이 좁으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부드럽다. 우산모양의 작은 꽃은 40~70cm 길이의 꽃대 끝에 백색 또는 황색으로 5~7월에 핀다. 열매는 흙색으로 9월에 익는다.

그렇게 완강했던 집사람의 아마추어 불가론은 면사무소를 다녀와서 약간 흔들리더니, 산나물이 우리나라 성인의 대표적인 사망원인인 심장마비, 관상동맥질환, 뇌졸중 등을 일으키는 콜레스테롤을 크게 낮춰주는 효능이 있다는 사실을 학인하고 나서는 나의 등뒤로 돌아가 숨는다.

울릉도, 강원도가 어딘데, 그 먼 곳에서 시랑헌으로 시집올 산마늘에게서 벌써 깊은 인연을 느낀다. 약간 호들갑스럽기도 하지만 산마늘과 생활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작업로를 따라 맨발로 오가면서 산마늘 새싹과 얘기를 나누면서 살아갈 것이다. '배고프다'면 발효퇴비를 듬뿍 줄것이고 '목이 마르다'면 물을 주고 '춥다' 면 낙엽을 덮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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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생 산마늘 모종 산마늘은 장뇌삼 같이 성장이 느린 산채나물이다. 파종 후 2년이 되어야 발아하며 적어도 4~5년 지나야 수확이 가능하다. ⓒ 정부흥


산마늘 종묘를 찾아서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산마늘 종묘 쇼핑몰을 선택하여 전화통화로 대략적인 종묘구입에 관한 내용을 합의하였다. 쇼핑몰에서는 구입대금을 송금하면 택배로 보내겠다고 하였다. 집사람은 종묘 상태도 현장에서 점검해야 하고 농장을 살펴보고 재배를 위한 비법도 전수받아야 한다며 강원도 태백시까지 다녀오는 계획을 세웠다.

산마늘 종묘의 이식 적기는 9월 하순부터 10월까지다. 오늘이 11월 9일이니 약간 늦은 감이 있는데다, 강원도 날씨는 한 번 폭설이라도 내리면 오랜 기간 교통이 두절되는 경우가 많으니 서두르라는 종묘상 김 사장님의 권고다. 일리 있는 말이다. 종묘를 먼저 확보해놓고 경작지를 만들기로 했다.

지도를 보고 태백시 목적지까지 몇 차례 코스점검을 마친 후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산마늘 모종 7500주가 우리 시랑헌으로 시집오는 날이다.

새벽 5시에 강원도 태백시를 향해 출발하였다. 손오공은 삼장법사를 모시고 천축국으로 제민을 구원하기 위한 불경을 구하는 구도의 길을 떠났지만, 나는 집사람을 곁에 태우고 우리와 같이 살아갈 산마늘 종묘를 모시러 왕복 900km가 넘는 길을 당일에 다녀오겠다는 당찬 계획으로 길을 나섰다.

흐리고 안개 낀 날씨이다. 일기예보를 수시로 들어보지만 비가 올 것 이라는 소식은 없다. 1톤 덤프트럭에 설치된 운전자를 위한 배려는 라디오와 테이프가 전부이다. 졸음에 대비하여 20여 년 전에 구입한 가요테이프 전집에서 무작위로 골라온 1940~1950년대 가요 테이프를 듣다 보니 테이프 긁히는 소리가 기록된 노래 소리보다 더 크다.

과거의 추억은 대부분 그립고 아쉬운 것이다. 특히 가요는 당시 세상 물정을 담고 있는지라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사연이 많다. 집사람에게 동의를 구했더니 우리 나이의 남성들은 이제 여성 호르몬 분비가 많아져 더욱 감성적이 된단다. 흥이 깨지고 현실로 돌아온다. 차는 대구를 지나 중앙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휴게소에 들러 집사람에게 운전대를 넘기고 눈을 감는다. 

영주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28번 도로로 접어들자 진눈깨비가 오기 시작하고 기온이 달라진다. 도로사정이 달라져 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다시 집사람으로부터 운전대를 돌려받았다. 11시가 넘어 태백시에 도착했다. 농장까지 찾아가기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김 사장께 전화를 했더니 곧바로 마중나와 우리를 농장 창고로 안내했다.

강원도 태백시는 높은 지형에 위치하는 산골 도시이다. 집이며 거리가 7~8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우리의 과거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곧 지금보다 훨씬 순수한 인간성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있는 세상이라는 의미였다. 김 사장님 가족이 그랬다.

추워진 날씨에 비가 오니 돌아갈 일이 걱정이다. 모든 것을 서둘렀다. 농장 방문과 비법 전수는 뒤로 미루고 종묘를 인수하고 대금을 지불했다. 사람 좋은 김 사장님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삼겹살에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을 대접하고 내 손에 25만 원을 쥐어 주면서 먼 길을 멀다 않고 달려온 우리들의 성의에 대한 답례란다.

우리는 태백시에서 김 사장을 만났고 집하장 창고에서 마을 분들과 곰취 모종을 선별하다가 어수리나물 모종 한 웅큼 챙겨주던 인상 좋은 부인과 커피와 대봉 홍시를 접대하시고도 더 내 놀 것이 없어 미안해 하시던 장모님을 만났다.

김 사장 가족을 닮았을 것 같은 산마늘 모종을 싣고 시랑헌으로 되돌아 오는 기분은 따뜻한 정에 둘러 쌓인 아늑함이었다. 한 번으로 끝날지도 모른 인연이지만 될 수만 있다면 다음으로 연장하고 싶어진다.

(힘든 산마늘 경작지를 만드는 얘기로 이어집니다.)
#시랑헌 #지리산 #산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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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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