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자구요?

[분석] 교과부가 의뢰한 박부권 교수팀 연구보고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록 2009.11.27 12:01수정 2009.11.2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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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폐지 및 개혁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을 파행으로 이끄는 입시 체제, 사교육 없이 진학할 수 없는 입시 요강, 가난한 학생들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학교, 일부 사립대학교의 노골적인 외고생 우대 등 그동안 외고가 촉발시켰던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이제 더 이상 외고를 방치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시민사회, 야당은 물론 여당에게도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부는 12월 안으로 외고 관련 대안을 제시하겠다면서 연구보고서를 동국대 박부권 교수팀에게 의뢰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교과부의 외고 개혁 의지를 거의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부보다는 입법부가 외고 개혁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외고 개혁 및 폐지에 관한 문제 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은 이 시점에서 어느 정도 교과부의 진전된 안을  내심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교과부에서 제시한 외고 및 일반고교 체제 개편안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연구보고서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연구 보고서 형식에 관한 논평

 

급조된 연구

 

급조된 연구로 평가됩니다. 외고에 관해서 다루어야 할 쟁점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왜 외고가 문제가 되고 있는가에 관한 내용은 역사적 접근은 물론 정확한 실태 조사를 요구합니다. 입시 체제 분석, 교육과정 분석, 운영 실태, 사교육 유발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연구보고서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외고의 문제점을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 국민들이 체감하는 문제의식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짧은 연구 기간이었음을 감안할 때, 연구진이 자체적으로 자료를 수집 및 생성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외고 관련 선행연구 분석이라도 제대로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외고에 관한 수많은 논의와 연구자료에 대한 기본적인 정리도 안되어 있습니다.

 

외고에 관한 부족한 문제의식과 빈약한 자료

 

이러한 부실한 선행연구 검토 속에서 연구팀의 외고에 관한 문제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외고에 관한 문제를 나름대로 해부했고, 외고 출현의 역사적 배경을 추적한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외고 문제를 충분히 다루기에 너무나도 빈약한 수준입니다. 더욱이, 보고서의 상당 부분을 일반고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외고 문제를 너무나도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외고에 관한 빈약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연구주제는 빈약한 정책적 제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교과부가 의뢰해 발표한 박부권 교수팀 연구보고서의 문제점과 대안 ⓒ 김성천

교과부가 의뢰해 발표한 박부권 교수팀 연구보고서의 문제점과 대안 ⓒ 김성천

2. 박부권 교수팀이 제시한 1안의 평가

 

연구자의 진단과 해법의 불일치

 

무엇보다 연구자의 진단과 해법이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부권 교수팀은 어학 영재 양성이 학문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개념이라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충분히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외고를 특목고로 존치시키고 있습니다. 박부권 교수팀은 어학 영재가 아닌 "외국어 능력 우수자"를 근거로 외고의 특목고 존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연구자가 앞서 제시한 논리라면, 마땅히 외고는 특목고가 아닌 특성화고로서 그 성격을 전환해야 하는 것입니다. 외국어가 모든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보편적 필수 소양으로 본다면 외국어고등학교는 특수 목적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즉, 언어는 보편 교육의 범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편적 필수 소양 교육을 하는 학교가 특수목적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외고에게 특목고 지위를 부여하면서 외고가 특권을 누리며 불공정게임을 할 수 있도록 용인하고 있습니다.

 

외고를 존속시키면서 국제고 등 선택지를 주고 있음

 

연구자가 제시한 대안 중 1안(외고를 존속, 혹은 타학교 유형으로 전환)은 외고에 관한 쟁점이 무엇이고, 왜 외고를 개혁해야 하는가에 대한 세간의 문제의식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합니다. 대안을 보면, 외고를 존속하면서도 외고의 희망에 따라서 자율형사립고, 자율형공립고, 국제고, 일반계고로 갈 수 있도록 선택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외고는 당연히 현행 외고 체제를 고수할 가능성이 100%입니다. 교과부는 과학고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그것이 갖는 법률적 의미가 아직 정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결국, 외고는 국제고를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외고 폐지를 전제한 다음에 외고의 선택지를 일부 주는 것이 타당한 논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외고를 존속시키면서도 자율형사립고, 자율형공립고, 국제고, 일반고로 가라고 하면, 문제만 복잡해집니다.

 

1안은 현행 외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욱 개악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현행 외고 체제가 더 좋은데, 과연 무엇 때문에 다른 학교를 선택한단 말입니까? 재정적 여건이 좋은 외고 재단은 학생수를 줄여서라도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수가 줄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겠지요. 이에 따른 사교육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학생수가 적어도 생존할 수 있는 공립외고의 가치만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저는 많은 외고가 국제고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교육과정이 유사하고, 몰입교육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것은 외고에 관한 문제를 국제고로 그대로 옮기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른바 풍선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외고의 학생 선발권 인정 

 

1안의 문제점은 여전히 외고의 선발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외고가 외고로 존속할 것인가 아니면 기타 학교로의 전환할 것인가의 경우, 외고의 자율에 맡길 때, 외고가 학생 선발권이 없는 일반계고, 자율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로 전환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결국 외고는 외고로 존속하거나 국제고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까지 외고가 문제가 되었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앞서 박부권 교수가 지적한 대로 학생선발권입니다. 학생선발권의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학급수와 학생수가 과학고와 같은 수준이 되면 과연 외고가 정상화 될 수 있을까요?

 

3. 박부권 교수팀이 제시한 2안 평가

 

국제고는 외고 폐지의 대안이 될 수 없음, 일반고 전환은 긍정적

 

연구자가 제시한 2안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대안일 수 있습니다. 2안의 핵심은 외고를 폐지하고, 국제고, 자율형사립고, 일반계고로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이 경우, "어떤 외고가 어떤 요건에 의해서 다른 학교로 전환할 수 있는것인가"가 연구보고서에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외고가 자율의지로 선택하는 경우라면, 이 안은 외고의 국제고 전환을 의미합니다. 일반고나 자율형사립고의 경우, 비평준화지역을 제외하고는 자체 선발권이 거의 없습니다. 이 경우, 외고는 국제고 전환을 모색할 것입니다. 더욱이, 국제고는 주지하다시피 학교 자체적으로 선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심국제고의 경우, 전국단위 선발이며(국제고가 없는 지역 학생 지원 가능), 내신은 물론 영어 면접과 심층 면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국제고는 영어몰입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고보다 더욱 매력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부권 교수팀안은 사실상 외고의 국제고로의 전환을 허용한 한으로 해석해야할 것입니다.

 

  박부권 교수팀의 안에는 일반고에도 외국어를 보다 집중하여 가르칠 수 있는 트랙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일반고를 선택할 학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단위학교 선발권을 가지고 있는 국제고를 외고는 결국 선호하고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외고는 국제고라는 외피만 바꿀 뿐, 실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반복될 것입니다. 다만, 2안이 의미있는 대안이 되려면, 외고를 폐지하되, 국제고를 제외시키고, 일반고나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는 것은 검토해볼만 합니다. 대안에서 국제고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교에서 선지원 후추첨 방식을 도입한다면 외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입학사정관에 관한 장밋빛 환상

 

  박부권 교수팀의 1안과 2안은 공통적으로 입학사정관제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교육과정에서 영어를 제외한 다른 외국어를 배우지 않습니다.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외국어에 대한 적성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결국 학과별로 선발한다는 것은 외국에 살다오거나 별도의 공인인증자격시험 등에 응시한 학생에게만 기회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계층의 분화 또는 외국어공인인증시험과 관련된 사교육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입학사정관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학교 교육과정 속에서 다루어지는 어학관련 교과는 국어와 영어 뿐입니다. 여기에서 학생들의 어떤 잠재능력을 볼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대학에서조차도 수년의 연구를 통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입학사정관제를 외고에서 아무런 연구와 준비없이 도입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무엇보다 입학사정관제도라는 허울을 쓰고 오히려 성적우수자를 선발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입학사정관제도가 도입되면 교과 뿐 아니라 비교과 영역이 강조되면서 고액 사교육을 확대할 가능성도 큽니다. 이미 대학에서의 입학사정관제도 도입과 관련한 고액 사교육이 존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입학사정관제는 아직 대입에서도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은 방식입니다. 무리한 입시 전형으로 사회적 악영향을 미쳤던 외고의 평가철학과 평가관은 입학사정관제의 왜곡을 가져올 가능성이 큽니다. 입학사정관이 갖는 평가의 자율성을 활용해서 수학과 과학을 잘하는 학생을 선발하거나, 명문대학에 보낼 가능성이 높은 학생을 선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각 외고는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나름대로 영어에 흥미를 가진 학생을 거의 선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입학사정관을 통해서 사교육을 잡고 외고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연구팀은 사교육 수요를 줄이는 방법을 강구한다고 했는데, 우수학생 선발집단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살아있는 한, 국제고로 학교 형태를 바꾸어서 내신이나 입학사정관제를 강화한다고 해도 사교육 수요는 여전히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해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외고 폐지를 전제로, 특성화고나 자율학교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학생선발 방식은 희망학생을 대상으로 선지원, 후추첨 방식을 적용해야 합니다. 교과부는 이 보고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1안(외고 축소안)은 외고 유지론자나 비판론자들에게 어차피 수용되기 힘든 안입니다.  2안으로 가는 경우, 국제고를 당연히 제외하고, 외고를 일반고나 자율형 학교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둘째, 외고 문제의 본질은 학생선발권입니다. 일반계고나 자율형사립고가 선발권을 통제하고 있는 반면에, 국제고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 선발권을 통제하고, 희망학생을 대상으로 추첨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합니다. 입학경쟁에 열을 올리는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교육과정과 철학, 수업, 교육 프로그램의 차별화로 학교를 다양화하려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따로 모아 놓는 것을 수월성 교육으로 오인해서는 안됩니다.  

 

셋째,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것은 안됩니다. 국제고는 학교 자체 선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고의 외피만 바뀔 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외고의 국제고로의 전환은 기만전술에 불과합니다.

 

넷째, 고교 입학 단계에서 입학사정관제 도입은 사교육비 유발 등 더 많은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외고가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면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다섯째, 교과부에 더 이상 외고 개혁을 맡겨두어서는 안됩니다. 국회에서 외고 폐지 관련 법안을 조속히 발의하여 통과시켜야 합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안이 이미 발의가 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민주당과 민노당에서도 외고 폐지 관련 법안을 내거나, 정두언 안을 중심으로 서둘러서 논의를 진행해야 합니다.    

2009.11.27 12:01 ⓒ 2009 OhmyNews
#외고 #교과부 #외고폐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두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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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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