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벗이여 아직도 우리 우정은 영원해"

신종플루로 시들뻔한 11년째 동창회, 주왕산에서 우정을 기(氣)르다

등록 2009.12.01 15:54수정 2009.12.0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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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어느날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서 청송을 찾은 정직한 벗들 ⓒ 심명남


"친구들아, 이번 동창회는 청송에서 한번 하자."


한 해가 깊어가는 11월 어느날. 동창회 회장을 맡은 친구 녀석이 뜬금없이 청송에서 동창회를 하잰다. 신종플루의 악령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경계하라 한다. 그래서 웬만한 약속은 신종 플루를 핑계 삼아 대충 넘겨도 별 무리가 없는 암울한(?) 시대 상황이다. 신종 플루 풍속도가 일상을 바꾸는 가운데 신종 플루의 무풍지대 속 약속을 남발하고 핑계만 일삼는 핑계족들에겐 어쩌면 신종은 절호의 호기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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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없는 동창회장은 이날 그의 아내와 함께 참석했다. ⓒ 심명남


신종이 시대를 덮쳐도 '우정(友情)'은 영원하다

전국을 떠돌며 매년 1년에 한번씩 가졌던 동창회 모임이 어느덧 11년째다. 이런 가운데 신종 때문인지 신비감이 점점 떨어져가는 이유인지 갈수록 동창회에 대한 흥은 점점 떨어진다. 더군다나 청송은 여수에서 차를 타고 너덧 시간은 족히 넘는 서울과 맞먹는 거리가 아닌가? 이런 마음이 더할 즈음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신종플루의 두려움을 각인시키며 친구를 설득시켜 동창회를 무산 시켜야겠다는 일념으로…….

하지만 친구에게 들려온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신종이 시대를 덮쳐도 우리 동창회는 넘을 수 없다. 너 안 오면 처랑 둘만 오붓하게 보내고 올 테니 그리 알아. 그리고 장소 예약 끝났고 환불 절대 안 된데."


이쯤 하면 강심장이 아니고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우리 동창생들의 모임은 좀 각별하다. 시골에서 1회로 중학교를 마치고 성인이 된 후 친구들이 지은 동창회 이름은'늘 푸른 벗'이다. 흔히 가정에서 장남 장녀에게 거는 기대가 크듯 지금 와서 생각해도 선생님들께서는 제자들을 참으로 헌신적으로 가르치셨다. 그래서였을까 두 번째 모임 때 우리들은 늘 푸른 벗의 영원한 은사님이신 김형곤 선생님을 모시고 무주에서 동창회를 가졌던 기억은 지금도 풋풋하다. 이렇듯 우리들의 모임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건 1회라는 숫자가 주는 자부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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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에 참석한 벗이 준비해온 사시미. 이날 싱싱한 사시미에 밤새도록 술이 익었다. ⓒ 심명남


누구에게나 여행은 항상 설렘을 준다. 특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친구들과 밤을 지새우며 옛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활력이다. 이날 서울, 평택, 여수 등지에서 친구들이 모였다. 60여명의 친구 중 평소 30여명이 모였던 동창회는 신종으로 인해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 함께 동참하지 못하자 겨우 몇 명의 최정예 멤버만이 참석해 아주 오붓한 모임을 가졌다. 신종이 우릴 이렇게 갈라 놓을 줄이야…….

멀리 여수에서 친구가 준비해온 싱싱한 횟감에 주거니 받거니 밤이 새는지 모르게 옛 추억에 빠졌다. 이날 밤 우린 타임머신을 타고 26년 전으로 되돌아가 중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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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년 전에 준공 된 물이 마르지 않는 주산지에 150년생 능수버들과 왕버들이 자리하고 있다. ⓒ 심명남


신선의 세계에 빠지다 "주산지 그리고 주왕산 체험"

청송의 명물은 단연 주왕산과 주산지가 으뜸이다. 날이 밝자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들며 주산지의 새벽안개를 보기 위해 잰 걸음을 재촉했다. 작은 호수를 연상시키는 주산지는 270년 전에 준공 된 것으로 길이 100m, 넓이 50m, 수심은 7~8m 로 그다지 큰 저수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다 한다. 또한 저수지 속에 자생하는 약 150년생 능수버들과 왕버들, 특히 이곳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 덕분에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와 유명한 여행지로 알려졌다.

울창한 숲과 호수가 자리한 주산지의 풍경은 마치 신선의 세계에 여행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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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으로 끊인 삶은 호박속에 든 영양만점 오뎅이 손님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 심명남


주산지를 구경 후 다시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예정된 주왕산 산행에 나섰다. 주왕과 장군의 전설이 곳곳에 배어있는 주왕산(722m)은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있는 국립공원이다.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거대한 암벽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 때문에 주왕산은 예부터 석병산, 대둔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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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에서 바라본 산세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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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정상에 오른 평택 초자연 산악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심명남


대전사를 거쳐 제3폭포로 내려오는 길에 4㎞의 주방천 주변은 폭포와 솟아오른 암봉 및 기암괴석, 여기에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절경을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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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과 백학 한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는 안개가 낀 가운데 마치 백학이 금방이라도 퍼드득 하며 날아 오를 듯 하다 ⓒ 심명남


이중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절벽 위에 청학과 백학 한쌍이 둥지(巢)를 짓고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는 마치 백학이 금방이라도 퍼드득 하며 날아 오를 듯하다. 학소대의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오고 있다.

또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이 숨어있다가 숨졌다는 주왕암, 만개한 연꽃 모양 같다는 연화봉, 그리고 제 1, 2, 3폭포 등 여러 가지 명소가 즐비한 주왕산은 볼수록 그 심오한 깊이에 탄성이 연발했다.

이렇듯 주왕산은 관음봉, 촛대봉 외에도 주왕굴, 주산폭포, 구룡소 등 아침 햇살이 바위에 비치면 마치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는 병풍바위도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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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사고로 유명한 주왕산을 오르는 대전사 앞에는 사과로 만든 동동주가 이색적이다. ⓒ 심명남


절망을 딪고 희망을 안은 청송 꿀 사과를 맛보다

특히 사과로 유명한 청송은 가는 곳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있어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청송에 사과가 유명한 것은 사과나무가 살기 좋은 토양과 기후 조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마도 선비들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아니었을까? 조정에서 쫒겨 정치에서 유배된 선비들은 후세들에게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위해 척박한 산천에 사과나무를 심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테면 서양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바로 이런 구절처럼 말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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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없었던 올해 사과나무에 사과가 풍년이 둘었다. 사과나무 밑에 깔린 은박지는 빛의 반사를 통해 사과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 쓰인다. ⓒ 심명남


동창회를 마치고 우린 저마다 청송에서 한 움큼씩의 희망 사과를 직접 샀다. 산지에서 바로 나온 꿀사과는 값도 싸고 맛도 좋다. 마지막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동창회를 챙겨준 동창회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주산지 #주왕산 #동창회 #늘푸른벗 #신종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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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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