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늘 모종을 심기 위해 지불한 대가

시랑헌에서 부르는 나와 집사람의 노래_32

등록 2009.11.30 15:48수정 2009.12.0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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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의 산마늘 재배지 시랑헌은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산마늘 재배지는 딋 능선 마루금 가까이 있어 경작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접근할 수 있는 도로가 필요하다. ⓒ 정부흥


산마늘 모종을 심기 위해 지불한 대가


젊은 시절 산을 좋아했고 산에 관한 책도 꽤 읽었다. 히말라야 등반기도 포함되었다. 지금 그 출처를 정확히 기억할 수 없으나 어느 등산가가 최초 등정이 될 에베레스트 정상보다 300m 낮은 곳까지  진출했지만 기상악화 때문에 되돌아섰다는 내용을 읽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기어서라도 전진하여 정상에 섰었어야 됐다고 생각했다. 그 때 나는 8500m 고도까지 올랐던 과정을 허사로 돌린 등산가를 비난했었다.

시랑헌의 고도는 200m 이고 산마늘 경작지 베이스켐프인 수행터 고도는 500m 이다. 에베레스트 등반가가 최후에 극복하지 못했던 고도차이다. 지금까지 시랑헌에서 수행터까지 새벽에 올라가는 산책은 낭만이고 건강을 위한 운동이었다. 산마늘 경작지를 만들고 종묘를 심기 위한 작업을 하는 다섯 사람의 뒷바라지를 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 차례 시랑헌에서 수행터까지 오르내려야 한다. 300m 고도차이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됬다. 

"여보 빨리 내려와!" 급한 전화다. 일하고 있는 나를 이렇게 호출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시랑헌을 향해 직선으로 뛰었다. 찔리고, 넘어지고, 다치고는 그 다음 문제이다. 시랑헌에 도착했으나 집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전화했더니 도로에 있다는 것이다. 집사람은 경사가 심한 커브길에서 낭떠러지로 미끄러지다가 고로쇠 나무에 걸린 자동차에 갇혀있었다.

집사람을 탈출시키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을 수 없다. 내가 내려와서 가지고 올라갈 새참을 싣고 위험한 길을 올라오다 변을 당했다. 시랑헌으로 부축하여 내려와 안정시켰으나 하얗게 가신 핏기가 돌아오지 않는다. 집사람은 시랑헌을 지으면서 전기대패에 새끼손가락의 끝 마디가 으깨지는 상처를 당했다. 여자들에게 신체의 결함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깊은 자존심의 상처다.

농기계는 안전보다 성능에 비중을 둔 장비들인데다 안전수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안전모, 안전복을 착용하고 일을 한다. 경사진 비탈을 오르내리며 일하다 보면 지치고 땀이 난다. 나도 모르게 무겁고 걸리적거리는 안전장구를 벗어 던지기 십상이다. 안전사고는 이 틈을 이용하여 찾아온다


같이 일하는 젊은 두 사람 다 예초기는 익숙하지만 엔진톱은 사용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내가 다루게 됐다. 진입로 계단을 만들기 위한 재목을 90 cm 길이로 자르는 일이다. 벌목으로 널 부러진 굵은 목재를 찾아 옮겨 다니면서 엔진톱을 사용해야 했고 장소 또한 평지가 아니다.

큰 재목을 자르고 다음 자를 곳을 고정하기 위해 톱을 내려놓았다. 톱날이 멈춘 것을 확인했다고 생각했지만 톱날이 돌고 있었던 모양이다. 호박벌에 쏘인 것 같은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 바지가 톱날에 찢어져나갔고 상처에서는 피가 낭자하다. 다리를 움직여보니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닌듯하다.

상처를 당했다는 말을 하지 않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서 일을 계속했다. 점심시간에 슬며시 내려와 집사람에게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집사람의 설움이 한꺼번에 터진 듯하다. 나에 대한 원망과 대성통곡을 들어야 했다.

상처를 본 의사는 정말로 엔진톱에 다쳤는냐고 물으면서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엔진톱에 다치면 절단하던지 20~30 cm 찢어지거나 떨어져나가는 것이 예사란다. 6바늘 꿰매고 병원문을 나서는 심정은 참으로 착잡했다.

자연은 항상 새롭다. 항상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우리가 미리 알고 대처하는 것만이 자연과 상생하는 것이다. 자연은 속임수를 쓰거나 배반하지 않는다. 낮추고 겸손한 자만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오만한 자는 자연의 경고를 듣지 못해 화를 당한다.  오만이 몸에 밴 우리들은 자연의 가혹한 시련에 의해 낮아지고 정화된다. 그래서 자연은 수행터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안전복을 벗어 던진 지 30분도 못 되어 화를 당했고, 집사람이 화를 당한 곳은 수행터를 오가면서 항상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보수를 뒤로 미루던 곳이다.    


산마늘 재배지를 만드는 과정

오늘은 11일이고 휴가는 17일까지 이다. 17일 이전에 사업을 끝내야 한다. 해야 할 일을 다시 정리해보고 계획을 세운다. 도로보수 및 배수로 개설, 진입로 개설, 벌목 및 벌초, 잔가지 처리, 작업로 개설, 재배지 정리, 모종심기, 낙엽덮기 등의 작업이다. 퇴비는 준비해 놨다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싹이 트는 1월 중순이나 말 경에 시비할 것이다.

가장 급한 일이 도로를 보수하는 일이다. 수행터까지 길은 있지만 자동차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굴착기로 며칠 걸릴지 모르지만 어떤 일보다 먼저해야 할 일이다. 오늘 겪은 집사람의 위기는 사고로 비화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결과가 다행이지 실재로는 감당하기 힘든 큰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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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로 산마늘 재배지를 관통하는 진입로 ⓒ 정부흥


수행터까지 자동차도로를 보수하고 수행터부터는 진입로인 계단을 설치하여 사용할 것이다. 진입로는 재배지를 곧바로 올라가는 계단길이고 작업로는 진입로에서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옆으로 낸 평탄하고 작은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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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로 진입로를 통해 작업장까지 최단거리로 접근하고 난 다음 옆으로 난 작은 작업로를 따라 오가면서 작업 한다 ⓒ 정부흥


이 작업로를 따라 위아래로 산마늘을 심을 계획이다. 작업로는 6개이며 각각 50여 m 정도 되니 총 연장거리가 300 m 정도 될 것이다. 진입로 계단 끝에 있는 100여 평의 평지는 바로 산마늘 모종을 심을 생각이다.

작업의 순서와 절차를 정했지만 7일 동안에 사업을 끝내려니 7명이 각자 맡을 일을 동시에 하면서 때때로 서로 돕고 협조하는 형식으로 일이 진척되었다.

굴착기 기사는 길을 보수하고 돌을 쌓을 곳이나 배수관을 묻을 곳에는 나와 젊은이 중 임**이가 지원했다. 젊은이들은 배수로, 진입로, 작업로 등을 설치하는 등 힘들고 험한 일을 담당했다. 동네 이웃인 나이 드신 내외분은 재배지 정리, 모종심기, 낙엽 덮기 등 일을 하셨고 집사람은 지원을 맡았다. 나는 진도 점검과 진입로 계단을 만들 침목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엔진톱에 또 다치지 않도록 극히 조심했다.

젊은이들은 일군들 답게 열심이고 바로 일의 성과가 눈에 띈다. 둘 다 42살 동갑내기이다. 산동초등학교 동창이다. 친구 사이이며 둘 다 베트남으로 장가든 후에는 더욱 친해졌다.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각자 임신한 아내를 보고 오는 모양이다. 둘 다 내년 5월이면 아빠가 된단다.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집안일을 얘기하면서 일을 한다. 항상 아내가 주인공이다. 나에게도 "내년 산마늘 새싹으로 쌈밥을 먹을 때 즈음에는 우리동네에서도 어린 아기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고 머지않아 태어날 자식자랑이다.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지가 꽤 오래 됐단다. 삶의 의욕에 찬 표정이며 행복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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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늘 모종 심기 사업 완료 전입로를 따라 계단 끝에 오르면 평지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작업로 개설없이 산마늘 모종을 심었다. ⓒ 정부흥


아슬아슬하고, 힘들고, 두려웠던 산마늘 모종심기 사업이 날이 지나자 완공되었다. 모종은 7년생이다. 내년에는 소량이겠지만 초벌 생산이 가능하고 가을에는 씨앗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 해에 받은 씨를 바로 파종하면 다음 해에 싹이 튼단다.

산마늘, 곰취, 어수리, 곤드레 산나물과 각종 과일나무, 무공해 채소가 자라는 시랑헌을 상상하며 여유를 가져본다. 보람차고 즐거운 일이다. 어서 봄이 되어 눈 녹은 낙옆 사이에서 산마늘 싹이 트는 생명의 경이로운 현상을 보는 증인이 되고 싶다.

그 때까지 수행터에 정자을 겸한 흙집을 하나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지금 형편으로는 무리일 것 같다. 흙집짓기학교는 내년 3월이나 지나야 개강할 것이고 나는 학교의 교육과정을 이수 한 뒤 흙집짓기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맨발로 작업로를 오가면서 무공해 지리산 산마늘을 채취하여 먹는 재미에 빠져보고 싶다. 오늘의 어려움을 떠올리며 명이나물을 나눌 수 있는 그 날을 그려본다. 고달픈 삶일지라도 희망과 꿈이 있으면 견딜만하다. 아기를 기다리는 젊은이들도 그럴 것이다.
#시랑헌 #산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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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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