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냄새, 넌 누구냐

태어나서 처음 내 주관으로 메주 빚던 날

등록 2009.12.08 21:04수정 2010.01.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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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 내 주관으로 메주를 만들어 보았다. 된장을 돈 주고 살 때마다 나도 직접 만들어야겠다, 만들어야겠다, 하면서도 못하고 매년 뭐가 그렇게도 바쁜지 시기를 놓치곤 했었다. 금년에는 어머니가 계신 덕택으로 함부로 어디 '끼데나가'지도 못하고 아주 간단하게 하자, 하는 생각 한 번으로 그냥 실행할 수 있었다. '끼데나간다'는 말은 어머니가 아들 어렸을 때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썩을늠이, 뭣 좀 시킬라 했더니 그새 또 끼데나가 버렸구만 잉."

 

가만히 생각해보니 금년 들어 처음 해본 것들이 참 많다. 개가 새끼를 낳아서 산후조리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 것도 처음이고, 대통령 두 분을 정서적으로 거의 같은 시간대에 잃어버린 탓이었겠지만 어쨌든 삶과 죽음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붙잡고 제법 심각하게 들여다본 것도 처음이며, 맨손으로 똥을 건져내본 것도 처음이다.

 

더구나 이 똥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똥인 줄 알았던 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손으로 집어냈을 뿐만 아니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고, 그래도 그 정체를 모르겠어서 입에 넣고 몇 번이나 씹어보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똥 된장 구분을 못하고 허둥거린 한 해였던 셈이다.

 

기왕 똥 얘기가 나왔으니 마무리를 짓자면 그날 맛을 보고서야 나는 똥이 똥인 이유를, 사람은 똥을 먹을 수 없게 구조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 또한 어머니의 덕이라 할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변을 보신 뒤에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 것인지 가끔 그것을 바가지로 떠서 목욕통 안에 넣어두곤 하시는데 뭔가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직 관찰과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중인 까닭에 지금은 뭐라고 말을 못하겠고, 하여튼 다사다난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한 해였다.

 

지금이야 농사철이 따로 없이 한겨울에도 오이가 나오고 애호박이 나오지만, 사계절이 뚜렷해서 호박 심는 시기와 콩 심는 시기가 엄격하게 지켜지던 시절에 농촌에서는 메주를 쑤기 시작하면 바깥일은 거의 끝났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방 안에서 가마니도 짜고 새끼도 꼬고 지붕도 이어야 하고 나락 공판도 내야하고 할 일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어쨌든 큰일은 대충 끝났다고 한숨을 돌리는 때가 바로 이 메주를 쑤는 시기인 것이다.
 
농번기 끝난 요즘은 메주를 쑬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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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제각각이어서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재미있는 구성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 김수복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재미있는 구성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 김수복

농번기 내내 땀을 흘렸던 아빠들의 가슴에 살짝 바람이 드는 것도 이 계절이고, 여기저기서 가벼운 부부싸움 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 계절이다. 새끼를 꼰다고, 가마니를 짠다고 잔뜩 챙겨놓고도 아직은 일손이 안 잡히는 까닭에 어디 멀리서 누구 지나가는 그림자만 보여도 쫓아나가서 "어이, 어디 가는가?" 친절을 보이기 일쑤인 아빠들.

 

그들은 메주를 쑨다고 콩에 돌을 고르고 있는 엄마의 눈치를 슬슬 살피다가 어느 순간 "그려? 알았네. 쬐까만 기둘려 금방 나갈게" 하고 마치 정말로 누군가 부르기라도 한 듯 큰 소리로 일단 엄마에게 보고를 하고, 그리고는 걸음아 어서 가자, 재빠르게 고샅으로 빠져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집을 탈출한 아빠들은 일단 주막으로 들어간다. 살얼음이 내려앉은 생두부에 김장김치를 안주로 막걸리 두세 잔을 걸치고 나면 이윽고 귀에 쏙쏙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주막집 저 안쪽 방에서 은밀하게 두런거리는, 은밀하지만 그러나 들었으면 어서 오라는 뜻이 분명하게 담겨 있는 딱, 딱 소리도 경쾌하게 들려오는 꽃그림 맞추기의 유혹 속으로 아빠는 빨려 들어간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 해가 설핏해지고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집집에서 아이들이 하나씩 나와 주막으로 들어간다. 잔돈푼이나마 소득을 올린 아빠는 진지 잡수게 얼른 가시자는 아들이나 혹은 딸을 핑계로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만, 소득은커녕 잔뜩 잃어버린 아빠들은 패자부활전이라도 하듯이 꼼짝 않고 계속 그림 맞추기에 몰두하고 앉았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달려온 아내들의 바가지 깨는 소리를 듣고서야 입맛을 쩍쩍 다시며 일어선다.

 

"아 거, 여편네가 그새를 못 참고 뭔 난리가 났다고 쫓아나오고 난리여?"

"사돈 남 말 허고 있네. 그새를 못 참고 먼 짓이여? 논 팔아먹을 겨?"

"아 그래봐야 며칠이여, 며칠. 내가 무슨 노름꾼인가."

 

사실로 그렇다. 정말로 며칠일 뿐이다. 대개의 아빠들은 겨울이 깊어지면 집에 앉아서 가마니를 짜고 멍석을 엮느라 겨울이 언제 가 버린지도 모르게 봄을 맞는다. 그러니까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얘기이다.

 

집집마다에서 메주가 곰팡내 팍팍 풍기며 익어가는 시기, 동지를 즈음해서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멀리 타관으로 머슴살이를 나갔던 남자들이다. 그들은 당시로는 거금이라 할 수 있는 일 년치 새경을 갖고 들어오는데 이 돈을 노리는 눈들이 처처에 맹수처럼 깔려 있어서 금방 놀음판이 벌어지곤 한다.

 

이 죽일 놈의 냄새, 메주를 왜 방에 두냐고요

 

어른들의 세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들의 세계에서 메주를 쑤는 계절은 이중으로 고통스럽다. 우선 활동 공간이 대폭 줄어서 불편하고, 다음으로는 코를 찌르는 냄새에 날마다 얼굴을 찡그리고 살아야만 한다. 처음 메주를 쑬 때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삶은 콩을 얻어먹는 재미가 있고, 메주에서 곰팡이가 피기 직전까지는 엄마 몰래 야금야금 쏙쏙 뜯어먹는 재미가 또 있지만, 곰팡이가 피기 시작하면 저놈의 메주를 왜 방에 두어야만 하는지 불만이 하늘을 찌르게 되는 것이다.

 

농촌의 집이라는 것이 대체로 방이 두 개 아니면 세 개에 부엌 하나 광 하나로 구성되어 있어서, 겨울이면 으레 방 하나는 가마니를 짜는 공방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에 큰방에서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큰방도 말이 좋아서 큰방이지 평수로 치자면 네 평이 조금 넘을 정도나 될 것이다. 정문에서 맞은편 봉창이 있는 쪽에는 언제나 베틀이 놓여 있어서 방의 사분의 일 정도를 이미 차지해 버렸고, 윗목에는 또 앞다지라 불리는 농이 있어서 그만큼의 자리를 차지하니 네 평짜리 방은 이미 세 평 정도로 줄어 있다.

 

여기에 늦가을이면 앞다지 옆으로 수수깡을 엮어서 만든 울타리 안에 고구마가 잔뜩 쌓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메주가 만들어지는 시기가 당도하면, 방은 아예 절반으로 줄어 버린다. 잘 차려놓은 제사상처럼, 도열한 병사들처럼 윗목을 완전히 차지한 채로 냄새를 풍기는 메주, 메주, 메주들. 그뿐인가. 아랫목에서는 부엌문을 중심으로 왼쪽에서는 청국장이 익어가고 오른쪽에서는 콩나물시루나 혹은 누룩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는 술동이가 겨우 내내 교대로 자리를 차지한 채 떠날 줄을 모른다.

 

특히나 청국장은 아이들에게 있어 가히 살인적인 악취(?)를 풍기는 것으로 유명한데, 무를 숭숭 썰어 넣고 끓이면 제법 맛이 그럴 듯한데도, 끓이기 전의 냄새는 어찌 그리도 지독하게만 여겨졌던 것인지. 아, 쓰디쓴 씀바귀 맛을 알면 세상을 그나마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신호라고 했던가. 청국장도, 메주도 그러하다.

 

"아따 우리 오빠, 으찌케 그렇게도 메주를 잘도 만드시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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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고, 열심히 절구질을 하지만, 그러나 어머니에게 절구질은 이제 무리인 듯. ⓒ 김수복

재미있다고, 열심히 절구질을 하지만, 그러나 어머니에게 절구질은 이제 무리인 듯. ⓒ 김수복

그렇게도 밉살스럽던 메주와 청국장이, 언제부터 그렇게도 내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는지 지금은 더듬어 기억해낼 수도 없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계실 때 오지게 한 번 만들어보자 하고 메주콩을 구해다 놓고 어머니의 자문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자문위원의 자문이 영 수상스럽다.

 

"믓을 어떻게 해. 콩을 그냥 삶어."

"아니, 콩을 물에다 불렸다가 삶아야 하잖아. 얼마나 불려야 하는 거냐고."

"그냥 물 붓고 삶으랑게."

"에? 아이고, 앓느니 그냥 죽는 것이 낫겠네."

 

어머니의 자문을 받다가는 메주를 망치겠다 싶어 더 이상 묻지 않고 메주콩 한 말을 커다란 통에 넣고 물을 부었다. 물을 붓자마자 쩍쩍 껍질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콩알이 부풀기 시작하는데 십 분도 채 안 되어 통을 훌쩍 넘어서 버린다. 이럴 수가. 놀라서 허둥지둥 다른 통에 갈라놓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또 그것도 훌쩍 넘겨 버린다. 쌀이 밥이 되었을 때의 크기만 생각했지 콩알이 부풀었을 때의 크기는 쌀과는 달리 세네 배에 이른다는 생각을 못해본 탓이었다.

 

그 바람에 한나절이면 되리라 여겼던 메주 쑤기는 밤을 꼬박 새고서야 끝이 났다. 물론 아들이 혼자서 주도적으로 했다면 하루에 다 마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집에 커다란 절구통도 있고 절구공이도 있으니까 한 번에 두세 바가지씩 넣고 찧으면 금방 끝났을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어머니를 부려먹고자 작은 고무통에 한 바가지씩 담아놓고 "엄마가 이거 다 찧어야 해"했더니 어머니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연방 싱글벙글이다.

 

그러나 역시 어머니에게 절구질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나 보다. 콩알이 낱낱이 흩어진 상태에서는 절구공이가 쏙쏙 잘도 들어가지만 하나둘씩 으깨지고 뭉쳐지면서부터 절구공이는 일단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르고 끙끙 힘을 쓰게 한다. 그리하여 결국 처음은 어머니가 찧고 나중은 아들이 찧고, 다 찧어진 것을 아들이 네모난 메주로 만드는 동안 어머니는 또 처음을 찧는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문득문득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또 기막히다.

 

"아따 우리 오빠 재주도 참 좋으시네에. 으찌케 그렇게도 이쁘게 메주를 잘도 만드시까아."

"에이, 또 오빠라고 하시네 거."

"음마, 오빠를 오빠라고 안 하믄, 글믄 뭐라고 한다요?"

"그러면 그럽시다. 나는 엄마를 엄마라고 할 테니께, 엄마는 아들을 오빠라고 하시든 뭐라고 하시든, 알아서 하시는데 그 대신 아빠라고는 혹시라도 하지 마시요 잉? 만약에 그러면 난 그냥 칵 죽어버릴 거니까."

 

애써 웃으며 떠들며 철퍽철퍽 소리도 요란하게 메주 모양을 만들어내고는 있지만, 가끔은 목구멍에서 애달픈 어떤 것이 올라오기도 한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왜 이렇게 되고 만 거야, 에이 씨이.

 

그렇게 저렇게, 감상에 흠뻑 젖은 채로 메주를 만들다 보니 청국장 생각은 까맣게 잊어 버렸다. 삶은 콩을 모두 으깨어 메주 형태를 만들어놓은 뒤에서야 아아 참, 청국장, 청국장을 잊어 버렸네,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온다.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또 콩을 구하러 나가야 하나 어쩌나.

2009.12.08 21:04 ⓒ 2010 OhmyNews
#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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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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