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 출세 거부'했던 은초 정명수의 서예궤적은?

'은초 정명수'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행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려

등록 2009.12.11 10:36수정 2009.12.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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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인 출세를 거부하고, 아니 얽매이지 않고 은자의 길을 걸었던 그의 예술궤적과 성취의 정점은 지금에 와서 오히려 동시대 어느 작가에게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 '고갱이'에서 놀았다고 하겠다."

'진주 명인' 은초 정명수(隱樵 鄭命壽, 1909~2001)에 대해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 이동국씨가 한 말이다. 이씨는 10일 오후 창원 소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은초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행사"에서 "정명수의 서예 성격과 특질 연구"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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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초 정명수 작.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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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타계한 서예가 은초 정명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10일 오후 창원 소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렸는데, 김수업 진주문화연수소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윤성효


학술행사는 진주문화연구소(이사장 김수업)와 (주)서경방송(대표 원종록), 은초탄신100주년기념사업회(회장 리영달)가 마련한 '은초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여렸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는 이날부터 내년 2월 21일까지 은초가 남긴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은초는 진주에서 태어나 성파 하동주(1869~1944)한테 '추사체'를 사사받았다. 그는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으며, 1970년부터 진주 비봉산 기슭에 있는 '비봉루'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서예에 전념했다. 1969년 전국 처음으로 조직된 '진주차인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1991년 스승 <성파 하동주 유묵집>을 발간했고, 진주시문화상과 경상남도문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개천예술제 제전위원장(2000년)을 지내기도 했다.

은초의 작품은 곳곳에 남아 있다. 진주성 '진남루'(북장대의 옛 이름), 해인사 해탈문 주련, 진주성 '남장대' 등의 현판이 그의 작품이며, 창원지법 진주지원(만민대로)과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형정민안)에도 그의 휘호가 있다.

김수업 이사장은 "서양말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는데, 예술은 길더라도 가꾸고 북돋우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서부경남에는 뛰어난 예술가가 많은데 우리가 가꾸어서 세상에 알려야 한다. 은초 선생도 그런 예술가이셨다"고 말했다.


리영달 회장은 "세월이 흐를수록 은초 선생의 서예가 더 주목을 받는 것 같다"면서 "그 분의 서예 속에는 '선비정신'과 '진주정신'이 담겨 있다. 글씨로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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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타계한 서예가 은초 정명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10일 오후 창원 소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렸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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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타계한 서예가 은초 정명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10일 오후 창원 소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렸는데, 100여명이 참석해 학술행사를 지켜보았다. ⓒ 윤성효


"결석이 잦은 회원한테 회비를 돌려 주기도"

학술행사에서는 은초의 서예세계와 함께 삶도 조명되었다. 김종원 경남서예협회 회장은 "은초의 서미(書美)의식은 시작과 결과가 그 자리이다. 특히 표현적 입장에서 그 기법의 '단순' '우직' '둔중'은 인간의 세속적 다양다기한 삶의 결과가 허무로 종착될 수밖에 없는 이치를 절대적으로 투영하고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9년부터 은초를 곁에서 모셨던 서양중 경상대 교수는 "새벽마다 붓글씨를 쓰고 학교 강의를 마치고 오후에 시간이 나면 비봉루에 다시 올라가 다른 회원들 글 쓰는 것도 보며, 또 다른 회원이 체본을 받는 장면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였다"고 술회했다.

"특별히 글을 받는 회원이 있으면 점심도 한 턱 내어 여러모로 재미있는 일들이 그득한 비봉루였다. 정말 사람 사는 향이 느껴졌다. 삼천포 할아버지, 장애가 있는 아가씨, 비구니 스님 등 다양한 인사들이 드나들었다. 언제나 말없이 오는 이들을 다 품어주는 그곳이 비봉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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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타계한 서예가 은초 정명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10일 오후 창원 소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렸는데, 리영달 '은초탄신100주년기념사업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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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타계한 서예가 은초 정명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10일 오후 창원 소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렸는데, 김종원 경남서예협회장이 "은초 정명수의 서미학과 그 전개"에 대해 발표했다. ⓒ 윤성효


서양중 교수는 비봉루 안팎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의과대학 학생(지금은 정형외과 전문의)은 1년치 회비를 한꺼번에 냈는데 결석이 잦아 회비를 돌려주었고, 화선지 1장만 달랑 들고 와서 글을 써달라는 사람도 있었으며, 남성문화재단 김장하 이사장이 어느 여름날 점심에 초대하여 민물장어를 대접하셨는데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 약간의 용채를 봉투에 넣어 드리려고 했다는 것.

이동국씨는 "은초의 서예궤적은 19세기 말 조선은 물론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세계서예를 평정한 추사 김정희에 닿아 있다"며 "물론 그 중간 연결고리는 성파 하동주다. 은초가 성파를 사사한 것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31세(1939년) 때다"고 소개했다.

'비봉루' 현판작품에 대해, 이동국씨는 "은초가 안진경체류를 획득했음을 알 수 있는 이 작품은 30대 초반 작품이지만, 현판의 미덕과 현판 글씨의 미학을 그래도 담아내고 있다"며 "멀리서 봐도 한 눈에 들어오는 중후한 필획, 소소밀밀한 간가결구, 웅장한 짜임새가 그대로 낮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은초 서예궤적은 성파 사사 이래 자기세계를 펼쳐가는 93세 말년까지 서체의 급격한 반전은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여느 작가와는 달리 완만한 변화를 가져가는 것이 은초 서예의 또 다른 특징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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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타계한 서예가 은초 정명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10일 오후 창원 소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렸는데, 다도 시범이 펼쳐졌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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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소재 경남도립미술관에서는 2001년에 타계한 서예가 은초 정명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서예전이 내년 2월 21일까지 열린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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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소재 경남도립미술관에서는 2001년에 타계한 서예가 은초 정명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서예전이 내년 2월 21일까지 열린다. ⓒ 윤성효


#은초 정명수 #서예가 #진주문화연구소 #경남도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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