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내 뒤 피해자의 요구대로 병원이 아닌 집으로 데려다 주고 다음날 보험회사에 사고신고까지 했다면, 비록 연락처를 주지 않았더라도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뺑소니)'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L(46)씨는 지난해 10월 25일 오후 8시께 경기 안산 단원구 원곡동의 한 도로에서 승합차를 운전해 가던 중 전방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러시아 여성 S(51)씨의 자전거 뒷바퀴 부분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당시 L씨는 차에서 내려 S씨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으나, S씨가 "집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집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 집으로 데려다 줬다.
L씨는 또 "저녁에 아프면 병원에 가라"면서 S씨에게 10만 원을 건넨 뒤, 다음날 오전 S씨의 집에서 만나 병원에 가기로 약속했다.
다음날 보험회사에 사고신고를 한 L씨는 상담원으로부터 "10만 원 지급으로 합의한 게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듣고 합의한 것으로 생각해 A씨를 찾아가지 않았다.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은 S씨는 연락처와 인적사항을 적어 주지 않은 L씨는 뺑소니 혐의로 고소됐고,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1단독 김호춘 판사는 지난 6월 L씨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이에 L씨는 "피해자의 요구대로 집까지 데려다 주는 등 사고 후 조치를 다 했으므로, 뺑소니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위법하고, 형량도 무거워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인 수원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문준필 부장판사)는 지난 8월 L씨의 항소를 받아들였고, 대법원 제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혐의로 기소된 L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공소기각 결정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집으로 데려다 준 경위 및 다음날 보험회사에 전화해 사고신고를 하자 상담원으로부터 '이미 합의된 게 아니냐'는 말을 듣고 그 취지를 잘못 판단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피고인에게 도주의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의 조치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