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우리 딸이 숙녀가 다 됐네

딸아이의 첫 달거리 파티를 해주었습니다

등록 2009.12.16 09:22수정 2009.12.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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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란 건 두려움이다. 그리고 설렘이기도 한다고 한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그 처음이란 게 많다. 아이를 가지는 것도 그렇고 아이를 낳는 것도 그렇다. 그렇지만 소녀에서 숙녀로 바뀌어 가는 첫 경험은 설렘보단 부끄러움이나 약간의 두려움 같은 것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 싶다. 내 딸 아이에게도 그 처음이 찾아 왔다. 지난 일요일이다.

 

"엄마! 나 이상해."

"응, 뭐가?"

"나 그거 하나 봐."

"정말? 우리 딸 축하해."

 

잠결에 들은 이야기다. 아직 침대 속에서 비몽사몽 상태에 있는데 아침밥을 하는 엄마에게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의 첫 달거리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소리가 내 귀를 세우고, 엄마가 축하의 말을 건네는 정황이 잠결의 내 귓속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딸아이는 그걸 비밀로 하고 싶었는지 엄마한테 다시 속삭인다.

 

"엄마, 아빠하고 한울이한테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왜? 좋은 일인데?"

"싫어. 암튼 말하면 안 돼."

"알았어."

 

그런데 딸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조금은 푼수 아빠는 벌떡 일어나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다가가 딸에게 큰소리로 축하인사를 하고 말았다.

 

"야, 우리 딸이 숙녀가 됐네. 축하해, 우리 딸!"

 

일부러 큰소리로 축하를 하며 자신을 안아주는 아빠에게 딸아이는 황급히 손바닥을 내 입에 갔다댔다. 그러면서도 아빠의 축하의 말이 싫지 않은지 배시시 웃는다.

 

"에이, 아빠. 조용히 해. 한울이 듣는단 말야."

"알았다, 알았어. 근데 아빤 쪼매 섭섭해지려고 하는데. 왜 엄마한테만 말하고 아빠한테 숨기려고 그랬어?"

"아빤? 그걸 몰라서 물어?"

"너희 아빠가 원래 그래. 근데 당신은 말로만 축하할 거예요?"

"당근 아니지. 근사하게 파티를 해줘야지. 누구 딸인데. 오늘 당장 할까?"

"으이구, 저 정신봐요. 낼부터 셤인데 시험 끝나고 해요."

 

사실 아내와 난 가끔 딸아이의 처음에 대해 이야길 나눈곤 했다. 키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제 나이로선 작은 키는 아니지만 첫 달거리의 시작과 함께 성장이 멈추거나 둔화된다는 이야길 들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한 달 전에 아이가 다니는 태권도장에서 성장판 검사를 한 적이 있다. 그 검사애서 딸아이의 성장판이 반절 정도 닫혔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런 염려와 함께 엄마가 가지고 있는 생리통을 혹 물려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늦게 시작하길 원한 이유였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현상이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딸아이의 시험이 끝나는 날 아내와 난 간단한 장을 보았다. 케이크를 사고 과자와 과일 몇 가지를 샀다. 주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준비를 했다. 아내와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꽃집이 눈에 들어왔다.

 

"꽃집에 잠깐 들르자."

"꽃집엔 왜?"

"왜긴. 우리 딸 축하해주는 날인데 꽃이 있어야지."

"참나. 못 말리는 아빠네. 남들 다하는 거 유별나게 케이크에 꽃까지. 나 할 땐 아무도 신경 안 썼는데."

"질투할 걸 질투해라. 딸네미 축하해준다는데 질투나 하구."

 

딸과 친구 같이 지내는 아내가 질투할 일은 없다. 다만 말만 그렇게 할 뿐이다. 꽃을 사들고 집으로 오는 길 웬 꽃이냐 했던 아내가 오히려 좋아한다. 꽃을 들고 가니 자신이 선물을 받은 느낌인가 보았다.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알쏭달쏭한 축하 노래를 부르고 아들 녀석은 무슨 파티인지도 모르고 먹는 거에 그저 좋아한다. 딸은 자신의 그 처음을 엄마 아빠의 축하를 받곤 쑥스러움 대신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학교에서 교육을 받긴 하지만 요즘 남녀 공학인 중학교에서 여성만의 성교육을 제대로 받긴 힘들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첫 달거리를 시작하는 여자 아이들은 당황하고 부끄러워 숨기기에 급급할 수 있다. 그러나 드러내고 열어놓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는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 평상시 엄마와 딸의 관계가 허물없이 터놓고 지낼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그 처음이란 건 하나의 바람처럼 맞이하고 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2009.12.16 09:22 ⓒ 2009 OhmyNews
#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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