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그 펄떡이는 삶

[서평]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고

등록 2009.12.22 17:34수정 2009.12.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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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한비야의 값비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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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 책 표지

전자제품, 자동차, 가구와 같은 공산품 같이 이제는 식물과 동물 같은 생명체들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시대인 것 같다.


돼지, 소 그리고 닭들은 축사에서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대규모로 사육되어 생명이 아닌 '고기'로 생산되고 있다. 생선도 마찬가지다. 바다와 강에서 지느러미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헤엄쳐야 할 물고기들은 대규모 양식장에 갇힌 채 생명체 대접은 받지 못하고 '횟감'으로 생산되어 트럭에 실려 전국의 횟집들로 팔려나간다.

그렇게 우리는 모든 것들을 공장에서 생산해내고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축들이 축사에 갇혀서 살을 찌워가고, 물고기들이 '가두리' 양식장에 갇혀 살아가는 것을 이상해 하기는 커녕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 사람들은 다를까? 내가 볼 때 사람들도 점점 그렇게 생산되고 양식되어가는 것 같다. 예식장에서는 수많은 짝들이 똑같은 모양으로 공장의 틀에서 똑같은 그릇을 찍어내듯이 부부로 생산된다. 똑같은 교육, 성공이라고 정의된 단 하나의 길인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과 높은 연봉을 향해 학교와 학원에서 생산된다.

그리고 아무도 그런 양식장에 갇힌 삶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양식장에서 벗어나 자신의 지느러미와 꼬리로 헤엄쳐 보겠다고 시도하는 사람은 철이 없거나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취급받는다. 정해진 양식 프로그램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은 세상에서 탈락하겠다는 선언으로 치부되며 그런 생각할 시간에 책이라도 한자, 영어 단어라도 하나 더 외우는 것이 현명한 세상이 됐다.

모두들 양식장에서 아둥바둥 더 좋은 값을 받아 팔려가길 고대하는 우리들에게 양식장을 벗어나 '지도밖으로 행군하며' 살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니 더 잘 살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 바로 한비야다.


식당과 마트에 양식된 생선, 농약친 과일이 넘쳐날 수록 자연산과 유기농의 값은 올라간다. 양식장에서 가장 높은 값을 받아 팔려가는 것이 최고이자 최선의 삶이 된 세상에서 한비야의 자연산 삶은, 때론 홀로 헤엄쳐야 하는 바다에서 힘에 부칠 때는 있겠지만 매우 값비싼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한비야가 최근 그의 삶을 담아 펴낸 '그건 사랑이었네'는 질과 가격이 다른  육질좋고 쫄깃쫄깃한 '자연산'의 세계다.

'삶'이라는 든든한 증거가 받쳐주는 '긍정의 힘'이라는 메시지


책은 오지여행, 세계일주, 구호요원, 새로운 공부로의 무모한 도전, 질러놓고 보는 배짱, 바닥나지 않는 열정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라고 우리를 격려한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펄떡이는 삶의 원천은 바로 '사랑'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도전에의 실패와 멀어져가는 꿈에 힘들어하는 영혼들에게 그는 '말씀'과 '매뉴얼'을 들이밀지 않고, 그가 헤쳐온 삶을 이야기하며 '나도 했는데,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용기 잃지 말고 힘내세요'라고 손짓한다. 세상에는 잘 살수있는 '법칙'을 이야기하고, '희망과 긍정'을 설파하는 많은 책들과 말들이 넘쳐나지만 한비야의 긍정과 사랑의 메시지는 수많은 책과 말들의 가지지 못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바로 그의 긍정과 사랑이 그의 삶으로 든든하게 증거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들과 정치인들이 소리높여 외치는 희망의 메시지에서 느끼는 공허함을 한비야는 삶이라는 실체로 빈틈없이 메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비야의 글은 힘이있고, 우리의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삶이 가진 위대한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과 지식이 아닌 '사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은 많이 팔리고 읽혀져야 한다. 뭐 크게 별다를 것 없이 듣기 좋은 이야기로 보이는 한비야의 책이 많이 팔리고 더 많이 읽혀야 하는 이유다.

다히로 이야기, 그게 어디 남의 얘기인가

이 책에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다히로'라는 소녀의 이야기였다. 소말리아의 앳된 소녀인 다히로가 여성할례라는 악습으로 신체는 물론 마음과 영혼의 큰 고통을 당하는 이야기였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성기를 자르고, 꿰매어 버리는 아프리카의 상황에 대한 글은 잘못된 악습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고 비위를 상하게 했다. 역겨운 심정에 책장을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현장을 목격하고, 다히로의 손을 잡아주었던 한비야도 "분해서 몸까지 덜덜떨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도 한비야와 같이 분노했다. '이런 야만적인 아프리카!'라고 속으로 수도없이 욕하며 다히로를 동정하고 위로했다. 그런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런 야만이 어디 아프리카에 있는 미개한 나라만의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만적인 행태의 종류가 다를 뿐 그것이 세련된 모습과 조금 더 문명적인 모습을 갖추었을 뿐인 야만은 우리에게도 차고 넘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없으면 공장도 못돌리는 주제에 불철주야 싼값에 몸바쳐 일하는 노동자들을 멸시하는 사장님들과 그들을 잡아 쫓아내는 잘사는 나라 티내기에 몰두하는 정부, 밥을 굶게 생긴 아이들의 무료급식마저 거두고자하는 사람들, 잠도 안재우고 학원에 학교에 뺑뺑이를 돌려 수능을 못보면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게 하는 교육, 갈곳없는 철거민들이 죽어도 눈하나 깜짝안하는 우리가 소말리아에서 여성할례를 신성시하는 저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다히로의 이야기에는 '저런 야만인들!'하며 흥분하는 우리가 지금 바로 우리가 사는 땅에서 행해지고 있는 다른 종류의 '여성할례'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안의 수많은 다히로들의 이야기들에 우리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멀리 내 얘기가 아니라서 마음껏 화내고 울 수 있는 소말리아의 다히로 이야기만 아니라, 바로 우리옆에서 오늘도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다히로들에게도 손을 내밀고, 그런 세상에 분노해 몸을 덜덜떠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성경의 한 구절이다. 한비야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구호활동, 끊임없이 새로운 모험으로 자신을 내모는 삶, 자신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는 세계시민이 되고자 소망하는 것들의 원동력이 '사랑'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한비야의 펄떡이는 자연산의 값비싼 삶은 사랑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덮으면 나지막히 고백해 본다. 나를, 사람과 세상을 더 사랑해야겠다고. 한비야의 삶이 더욱 더 펄떡이길. 그리고 우리의 삶도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자연산의 삶이 되길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권오재의 블로그 '오재의 화원'(vacsoj.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권오재의 블로그 '오재의 화원'(vacsoj.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푸른숲, 2009


#한비야 #권오재 #그건 사랑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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