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빨래'는 렘브란트가 빚은 빛그림일까

[인천 골목길마실 72] 겨울을 따숩게 감싸는 수수한 이야기자락

등록 2009.12.25 13:52수정 2009.12.25 13:5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확대 ( 1 / 26 )
ⓒ 최종규

 

골목마실에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첫째 갈래는 구경꾼 눈길로 어쩌다 살짝 훑고 지나가는 골목마실입니다. 둘째 갈래는 동네사람 눈썰미로 한결같이 지켜보면서 사랑스레 어루만지는 골목마실입니다.

 

저 스스로 둘째 갈래 골목마실을 한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첫째 갈래가 아닌 둘째 갈래로 이어가고 싶으며, 저 스스로 골목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내 고향동네 골목길을 '스치는 풍경'이 아닌 '살아숨쉬는 이야기'로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8년 여름부터 "인천 골목길 사진찍기(cafe.naver.com/ingol)" 누리집을 마련해서 부지런히 골목동네 삶자락을 띄우고 있습니다. 이곳까지 찾아와서 사진읽기를 해 주는 분 숫자는 적습니다만, 보는 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언제까지나 즐겁고 사랑스레 '얻는' 사진찍기를 할 생각이고, 이렇게 얻은 사진은 누구한테나 '도로 나누어 주는' 사진읽기로 잇고 싶습니다.

 

a

말라 버린 잎사귀가 드리운 그림자가 어여쁩니다. ⓒ 최종규

말라 버린 잎사귀가 드리운 그림자가 어여쁩니다. ⓒ 최종규

a

텅 빈 빨래줄만 보아도 곱다고 느낍니다. ⓒ 최종규

텅 빈 빨래줄만 보아도 곱다고 느낍니다. ⓒ 최종규

요 며칠은 다시금 포근한 겨울 날씨가 되었습니다. 며칠 앞서까지는 골목마실을 하는 내내 손발이 꽁꽁 얼고 온몸이 후들후들 떨리는 추위였습니다. 자전거를 몰고 골목마실을 하던 날은 집으로 돌아와서 잠들 때까지도 언손이 녹지 않아 몸시 고달프기까지 했습니다. 이리하여 겨울 골목마실 사진을 들여다보면 '참 춥구나' 하는 느낌을 지우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에도 사진찍기를 즐긴 저부터 따뜻하다고 느낀 사진들이 있습니다. 바로 '골목빨래' 사진입니다.

 

영 도 밑으로 뚝뚝 떨어진 날씨인데도 바지랑대를 세워 알록달록 빨래를 널어 놓은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골목집 옥상에서, 앞마당에서, 헐리고 비어 있는 땅뙈기에 마련한 골목밭이나 꽃그릇 위로 드리운 빨래줄을 보면서 '손발이 꽁꽁 어는 이 날씨가 마냥 춥지만은 않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a

사진을 찍어 놓고도 코끝이 찡하도록 곱다고 느꼈으나, 사진을 찍지 않고 바라볼 때에도 코끝이 쨍하도록 고와서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한참 서 있었습니다. ⓒ 최종규

사진을 찍어 놓고도 코끝이 찡하도록 곱다고 느꼈으나, 사진을 찍지 않고 바라볼 때에도 코끝이 쨍하도록 고와서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한참 서 있었습니다. ⓒ 최종규

a

골목밭을 일구고 꽃그릇을 마련하며 빨래대를 세웁니다. ⓒ 최종규

골목밭을 일구고 꽃그릇을 마련하며 빨래대를 세웁니다. ⓒ 최종규

너무 추워 빈 빨래줄만 있거나, 빨래집게들이 올망졸망 나란히 달라붙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냥저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풍경이랄 수 있지만, 빨래가 걸린 빨래줄은 이렇게 빨래가 널린 모습대로 고왔습니다. 빨래가 안 걸린 빈 빨래줄은 이처럼 빨래가 없는 모습 그대로 예뻤습니다.

 

샛골목으로 한 줄기 비치는 빛살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시멘트벽을 노랗게 바른 2층 옛집 한쪽에 빨래를 수북히 걸어 놓은 자리에는 햇볕이 들지 않았으나, 빛느낌이 참 살가왔습니다. 학교 울타리에 걸어 놓은 양말 빨래는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손바닥공원 안쪽에 깃든 율목동 파란대문 할매집에서 내놓는 빨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제 가슴에 아로새겨집니다. 이곳 빨래 모습은 지난 2007년부터 철따라 새롭게 사진으로 담아 놓고 있는데 언제 보아도 곱고 언제 찾아가도 눈물겹습니다.

 

a

율목동 파란대문집 빨래. 봄 여름 가을 겨울. ⓒ 최종규

율목동 파란대문집 빨래. 봄 여름 가을 겨울. ⓒ 최종규

a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제 눈에는 아름다운 빛그림인 골목빨래입니다. ⓒ 최종규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제 눈에는 아름다운 빛그림인 골목빨래입니다. ⓒ 최종규

골목집 대문 위쪽 물결 무늬 안쪽으로 살짝 보이는 분홍빛 빨래 석 점 사진도 제가 찍은 사진이면서, 스스로 다시 들여다볼 때마다 웃음이 납니다. 파란 겨울하늘을 올려다보는 아기 빨래와 빨래집게 사진 또한 '내가 잘 나서 잘 찍은 사진'이 아니라, '이렇게 수수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우리 앞에 내보여 주었기에 반갑게 얻은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텅 빈 꽃그릇 위로 드리우는 빨래 몇 점에 생긴 그림자는 렘브란트가 빚어 놓은 빛그림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말라 버린 골목나무 잎사귀가 만든 그림자가 새겨지는 빨래나, 나무전봇대 몸통에 묶은 빨래줄이나, 옛 기와집 앞마당에 드리운 빨래줄에 걸린 옷걸이나 모두,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마련해 놓은 살아숨쉬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재개발과 철거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오늘날, 골목길을 사진감으로 삼아 즐거이 골목마실을 하면서 사진찍기를 맛보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누구나 바쁜 짬을 겨우 내어 골목마실을 하기 때문에 좀더 느긋하고 넉넉하게 다리품을 팔며 사진찍기를 하기 어렵겠습니다만, 어차피 한 번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찍기를 즐기시겠다면,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네 시까지 두 다리가 퉁퉁 붓도록 온 골목 구석구석 샛길까지 모조리 훑으면서 겨울날 추위를 추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싱그러운 골목빨래 한 점을 함께 느껴 보시면 어떻겠느냐고 여쭙고 싶습니다.

 

a

빈 빨래집게가 마련해서 보여주는 빛과 그림자를 보면서, 이러한 모습은 마치 렘브란트가 빚어 놓은 빛그림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 최종규

빈 빨래집게가 마련해서 보여주는 빛과 그림자를 보면서, 이러한 모습은 마치 렘브란트가 빚어 놓은 빛그림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 최종규
a

살며시 들여다 보이는 분홍빛 빨래는, 골목집 대문 무늬하고 어여쁘게 잘 어울립니다. ⓒ 최종규

살며시 들여다 보이는 분홍빛 빨래는, 골목집 대문 무늬하고 어여쁘게 잘 어울립니다. ⓒ 최종규

 

두어 시간이나 서너 시간 '출사'로는 골목빨래 깊은 모습을 알아내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대여섯 시간이나 예닐곱 시간쯤을 들여, '마실'이나 '여행'을 떠나 본다면, 돈은 한푼도 들지 않으면서 우리한테 깃든 남다르고 새로운 우리 삶자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없이 베풀어 놓은 따뜻한 선물을 더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얻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a

햇볕이 드는 곳은 햇볕으로, 햇볕이 안 드는 곳은 그늘로 고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 최종규

햇볕이 드는 곳은 햇볕으로, 햇볕이 안 드는 곳은 그늘로 고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 최종규

a

비탈을 따라 지은 골목집 옥상에는 어김없이 빨래대가 마련되어 있고, 알록달록 빛놀이를 하듯 빨래가 걸려 있습니다. ⓒ 최종규

비탈을 따라 지은 골목집 옥상에는 어김없이 빨래대가 마련되어 있고, 알록달록 빛놀이를 하듯 빨래가 걸려 있습니다. ⓒ 최종규

a

햇볕으로 마르는 골목빨래는 더없이 싱그럽습니다. ⓒ 최종규

햇볕으로 마르는 골목빨래는 더없이 싱그럽습니다. ⓒ 최종규
a

어여쁜 모습이라고 느끼며 찍는 사진 한 장이란, 찍는 제가 눈썰미가 밝기 때문이 아니라, 수수하게 살아가는 골목이웃 삶이 어여쁘기 때문에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종규

어여쁜 모습이라고 느끼며 찍는 사진 한 장이란, 찍는 제가 눈썰미가 밝기 때문이 아니라, 수수하게 살아가는 골목이웃 삶이 어여쁘기 때문에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2.25 13:52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골목길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골목빨래 #사진찍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3. 3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4. 4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5. 5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