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기른다는 것, 함부로 사랑해서 미안하다

새끼를 낳은 뒤로 더욱 새끼 같아진 마루에게

등록 2009.12.27 21:24수정 2009.12.2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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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이 촉새 자발이, 이 세 녀석들은 몸집도 조금 더 크고 유난스레 나댄다. ⓒ 김수복


사람이 동물을 기른다는 것은 슬픔을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부쩍 드는 이즈음이다. 삶이 곧 슬픔일 수도 있다는 식의 어떤 경지에 도달한다면 슬픔은 곧 희망으로 치환되겠지만, 그게 아닐 경우 기르던 동물을 유기하거나 다시는 그 동물을 기르지 않겠다는 헛된 맹세를 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부록으로 붙기도 한다.


강아지들이 눈을 뜨고 제 발로 바깥을 드나들게 되면서부터 저마다의 성격이 손에 잡히듯이 보인다는 느낌이었다. 어떤 녀석은 작은 소리에도 놀라 꼬리를 감추며 한참씩 우는 소리를 내는가 하면, 또 어떤 녀석은 하는 짓이 얄밉다고 쥐어박아도 딱 한 번만 깨갱, 소리를 내고는 금방 잊어먹고 의연하게 저 하고 싶은 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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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슬픈 표정에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은 이 녀석도 쌍커플이 있다. ⓒ 김수복


사흘 정도 지켜보다가 하나씩 둘씩 이름을 붙여주었다. 울보, 똑똑이, 자발이, 관심이, 촉새, 덤덤이 등등, 그 중에서도 청순가련형의 울보 녀석은 우는 소리가 어찌나 애달프고 눈빛은 또 어찌나 먹먹한 호소력을 띠고 있는지 꿈에서조차 보일 정도로 내 가슴에 그만 깊이 각인되고 말았다. 눈꺼풀마저 쌍으로 져 있어서 더욱 오래 기억을 차지할 것 같은 녀석의 근원을 알 수 없는 그 슬픔을 내가 앞으로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는 나도 모를 일이지만,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곧 이런 느낌들을 축적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아무튼 눈이 내리고, 내린 눈이 조금씩 녹아 개 집 근처가 갯벌처럼 질척거리면서 강아지들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흙투성이가 되어 들어오는 새끼들을 어미가 쉴새없이 혀로 핥아대는데 그 흙탕물은 결국 어미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야 이거 안 되겠다 싶어 지어놓고 거의 사용하지 않은 토끼장으로 녀석들을 이주시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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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곰이 자신의 제왕을 선언하는 것 같은 이 녀 석은 여섯 마리 중 단연 팔팔하다. ⓒ 김수복


"토끼 풀 먹는 것을 보고 있음 하루가 한 시간 같어."

어머니가 예전부터 토끼를 참 많이 좋아하셨다. 그 영향인지 나 또한 토끼들의 오물오물 아삭아삭 풀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그 무엇도 바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 집에 이사를 들자마자 한 것이 토끼집을 짓는 일이었다. 딴에는 토끼들이 자유롭고 활발하게 뛰어다니도록 한다고 투자를 제법 했다. 넓이 1,5미터에 길이 12미터, 여기에 말뚝을 박고 철망을 친 다음 토끼 4마리를 풀었다.

깡총거리는 녀석들을 보며 흐믓흐믓 미소를 짓는 꿈같은 날들을 압류라도 하듯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린 토끼들이 어느새 자라 새끼를 낳았는데 족제비가 찾아오고 들고양이들 또한 비린내를 맡았다. 아직 털도 안 난 녀석들이 핏방울만 몇 점 남겨놓은 채 사라지는가 하면 털이 나고 덩치가 커진 뒤에는 물어 뜯겨 죽은 채로 철망 사이에 끼여 있기도 했다.


그때부터 족제비들과의, 들고양이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니다. 전쟁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의 처참한 패배로 끝을 보고 말았다. 육 개월여 동안 갖은 방법을 써 보았지만 내 능력은 야생동물들의 생존본능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일찌감치 토끼장을 사과상자처럼 작게 다시 만들었다면 전쟁이고 뭐고 치를 필요가 없었겠지만, 그것도 무슨 철학이라고 방목에 준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고집하다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 꼴이었다.

감나무에, 매화나무에, 석류나무에, 목련에... 그렇게 집에 있는 나무마다에, 딴에는 수목장을 한다고 묻은 토끼가 반 년 동안 무려 스무 마리도 넘었다. 마지막으로 어미들까지 그렇게 묻고 만 뒤에 한 생각이 다시는 토끼 안 기른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내내 방치해 두었던 토끼장에 마루와 그 새끼들을 이주시키고 나니 마루 녀석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오줌을 찔끔거리다가 컹컹, 소리를 내 보기도 하고 혀를 길게 빼서 아주 거칠게 새끼가 쓰러질 정도로 핥아대는가 싶더니 자유를 주어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듯이 앞발을 높이 쳐들고 내게로 와락 달려들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밥을 주러 가서 보니 목띠가 떨어져 있다. 줄을 풀어주면서도 목띠는 그대로 두고 있었던 것인데 놀랍고 슬프게도 녀석이 밤새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그것을 풀어서 물어뜯고 발로 짓밟아 아주 못쓰게 만들어놓았다. 줄에 묶여 있을 때는 목띠를 한 번도 풀지 못했던 녀석이, 줄을 떼어낸 지 하룻만에 어떻게 풀어냈는지 목띠를 이빨로 자근자근 씹어놓았다. 얼마나 웬수 같고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저렇게도 씹어놓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랍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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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띠를 어떻게 풀어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 김수복

새끼들이 도왔을까? 아니다. 새끼들은 아직 새끼들일 뿐이다. 제 어미의 목띠를 잡아 뜯어서 풀어놓을 정도까지 이빨에 힘이 들어 있지도 않고 발톱도 아직은 거의 없다. 마루 자신이 앞발 두 개를 사람이 손을 쓰듯이 사용했다는 외에 달리 추론해볼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신기하다, 놀랍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런 생각이나 하고 말았는데 다음 날 아침에는 녀석이 커다란 새 한 마리를 잡아놓았다.

어치라고, 소리도 엄청 밉상인 녀석이 봄에는 딸기를 죄다 쪼아놓고 여름에는 복숭아를, 가을에는 포도며 머루며 배 같은 열매들에 단맛이 들었다 하면 까치들과 경쟁하듯이 쪼아놓는 새가 있는데 이 녀석이 아마 먹을 것을 찾아서 헤매다가 개 밥 찌꺼기를 발견하고 들어갔던 모양이다.

어쨌든 땅 위의 개가 날아다니는 새를 잡았다. 그런데 잡아놓았을 뿐으로, 마루는 고기를 좋아하면서도 먹지는 않고, 먹기는커녕 새의 부리 부분만 마치 확인사살이라도 하듯이 잘근잘근 씹어놓았을 뿐 다른 부위는 이빨 자국 하나 내지 않은 채 보관해두었다가는 내가 나타나자 이것 보라는 듯 앞발로 죽은 새를 살살 긁어가면서 꼬리를 흔들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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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를 어떻게 잡았는지 모르겠다. ⓒ 김수복


그 녀석 참, 역시 진도개라서 저러는 것인가, 어쩌고 그렇게 혼자 흐뭇해 하며 들어왔는데 사흘째 되는 날 새로운 문제가 불거졌다. 이틀 동안은 아마 새로운 거처의 곳곳을 탐색하고 장악하느라 다른 신경을 쓸 틈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틀 동안은 그렇게도 조용했던 모양이다.

녀석은 내가 집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에 아주 민감하다. 밖에서 들어올 때 앞발을 쳐들고 낑낑 소리를 내는 거야 기본이고, 방안에서 뭔가를 찾느라 소리를 약간만 크게 내도 벌써 알아듣고 낑낑 소리를 내며 자발을 떤다. 벽에 앞발을 딛고, 목을 길게 빼고, 그렇게 키를 키운 채로 어서 오라고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이제 새끼도 낳고, 어른이 되었으니 좀 위엄도 갖추고 그러겠지 했지만 녀석은 여전히 내 앞에서는 어린애 티를 내고자 하는 것이다.

문틈으로 가만히 내다보고 있노라면 녀석의 안절부절 못해하는 자세가 사뭇 애절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하나. 너무 예뻐하지 말지어다. 너무 사랑하지 말지어다. 사랑도 결국은 내 감정에 충실한 것이었을 뿐 마루의 훗날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나는 나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루 녀석을 길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나치게 자주 쓰다듬고 지나치게 자주 간지럼을 태우고 했었던 것이다.

어려서 그렇게 했으면 커서도 계속 그렇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하니까 마루는 불만이 있고, 옛 정을 돌려달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거처를 옮기고부터 그 증세가 아주 심해졌다. 아니다. 새삼스레 심해졌다기보다는 공간이 넓어진 만큼 그 활동의 폭 또한 넓어졌다고 해야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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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들보다 더 새끼처럼 왔다 갔다 자발을 떠는 마루. 이렇게 정신없이 날뛰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도 신기하리만치 새끼를 걷어차는 법이 없다. ⓒ 김수복


묶여 있을 때는 차라리 그 자리에서만 뱅뱅 맴을 돌거나 벽에 앞발을 딛고 키를 키우는 정도였기 때문에 그 안타까움의 정도가 그리 커 보이지 않았지만, 길이가 십 미터도 넘는 곳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 보인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단숨에 마치 무슨 달리기 선수처럼 왔다 갔다를 되풀이하며 펄쩍펄쩍 뛰다가 철망을 이빨로 물어뜯고 발로 할퀴어댄다.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가도 내 발자국 소리가 나면 팽개치고 동서남북 왔다갔다 수선을 피우는데 그때 보면 기술도 참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눈을 멀리 있는 내게로 향한 채 앞뒤좌우 구분이 없이 펄쩍펄쩍 뛰는데도 발 밑에서 덩달아 왔다 갔다 하는 작은 새끼들을 밟거나 걷어차는 법이 없다.

이 노릇을 어찌 해야 하나. 집 안으로 들여서 같이 살아야 하나. 아니면 내가 하루 중 절반 정도를 개 집에서 보내야 하나. 한 해도 다 가고, 새로운 한 해를 고민해야 하는 이즈음 마루 녀석은 이렇게도 나를 붙잡고 세상사 다른 아무 것도 중요할 이유가 없다고, 오직 저만 생각해달라고 칭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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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장난이라 보기에는 눈빛이 영 예사롭지 않다. ⓒ 김수복

#길들이기 #지나친사랑 #집착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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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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