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형제, 볼락 낚시에 나서다

남해안 선상과 갯바위에서 펼쳐진 감생이, 볼락, 벵어돔 낚시이야기

등록 2009.12.28 15:42수정 2009.12.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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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물린 5짜급 겨울철 손맛의 대미 감성돔은 겨울이면 월동을 위해 따뜻한 남쪽으로 몰린다 ⓒ 심명남


새벽 5시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온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녘, 유독 환한 불빛 아래 사람들 움직임이 분주하다. 언제든 불쑥 들이닥쳐 연중 24시간 문이 닫히지 않는 곳. 거친 뱃사람들 기질이 배인 탓일까? 그곳에 가면 항상 파닥거리는 생동감과 활력이 넘친다. 24시간 문이 열려있는 낚시점 풍경이다.

겨울낚시 "초보도 4짜, 5짜를 잡을 수 있는 확실한 시즌"

날도 추운데 웬 낚시?라고 할지 모르지만 겨울철 이곳 낚시점은 일년 중 가장 호황기다. 그 이유는 요즘이야말로 연중 가장 씨알이 굵은 감성돔과 볼락 그리고 뱅어돔 철이기 때문이다. 남해안에는 요즘 낚시에 갓 입문한 초보도 낚시대만 담그면 4짜, 5짜(40~50cm)의 감성돔을 잡을 수 있다 하니 가히 강태공 아니 강프로로 무혈입성할 수 있는 확실한 시기다.

그도 그럴 것이 가을철 먹이를 빵빵하게 주워먹고 기름기가 번들번들해진 감성돔은 월동을 위해 따뜻한 남쪽으로 몰린다. 이들은 조사들이 유혹하는 푸짐한 먹이감에 쏠린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여기서부터 물고 끌리는 싸움이 시작된다. 겨울철 대표 어종인 볼락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문제는 아무리 실력이 출중할지라도 포인트가 나쁘면 허당. 그래서 초보든 프로든 간에 포인트 선점은 낚시에서 가장 기본이다.

감성돔을 잡기 위해서는 고기를 모이게 하는 밑밥용 집어제와 크릴, 홋무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볼락을 잡으려면 민물새우와 갯지렁이인 청개비가 그만이다. 겨울철 손맛의 대미가 감성돔이라면 조사들 입맛을 당기는 고급어종 볼락은 떼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물때만 잘 만나면 한꺼번에 쿨러를 가득 채울 수도 있다.


지난 주말 보트를 띄워 낚시포인트로 유명한 안도, 연도권으로 대어사냥에 나섰다. 3주 전부터 세운 계획을 실행에 옮긴 탓일까. 일행 5명은 오직 대어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기대에 부풀어 낚시용 밑밥과 미끼를 잔뜩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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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펼쳐진 갈매들이 먹이를 달라며 고기잡이 배 뒤를 따라가는 풍경이 감미롭다. ⓒ 심명남


흔히 갈 때 맘과 올 때 맘 다른 가장 대표 취미가 낚시라지만 그래도 물반 감생이(감성돔) 반이라는 요즘, 확실한 대물이 기다리는 바다다. 낚시를 할 때만큼은 영화 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로 표현된다. 대어를 잡겠다는 헛된 욕심도 가져보지만 낚시를 떠나는 진정한 이유는 답답한 현실을 탈출해 스트레스를 날려버려 정신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강태공들의 기도 "용왕님 5짜의 감생이를 점지해 주소서"

이곳 기상은 삼한사온(三寒四溫)으로 겨울철은 주로 하늬바람 때문에 바람이 불면 파도가 금방 거칠어진다. 다행히 아침에는 어제까지 불던 바람이 잔잔해 파도가 일지 않았다. 1시간 남짓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감성돔 낚시로 유명한 남면 안도의 남고지 포인트다. 남고지는 수심이 15m 내외로 감성돔이 즐비해 포인트 경쟁이 심한 곳이다. 오늘은 주말이라 그런지 갯바위에 온통 낚시꾼들이 울긋불긋 수를 놓은 듯하다. 이렇게 많은 조사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무엇일까?

"용왕님! 불쌍한 중생들에게 오늘 꼬옥 5짜의 감성돔을 점지해 주소서!"

일행 중 두 명을 갯바위에 내려놓고 우리 삼형제는 배낚시를 하기 위해 다도해 연도에서 한참 떨어진 알마섬으로 향했다. 알마섬은 무인도인데 수심이 30m가 넘는 직벽으로 대어들이 많고 배가 없으면 낚시가 힘든 포인트다. 또한 바람이 불 때 섬과 섬 사이 동굴 같은 통 안은 볼락 굴락지다. 마침 바람이 일고 파도가 높아 통 안으로 왔는데 배를 고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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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락낚시는 한 마리가 물면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물기 때문에 입질이 온다고 채비를 바로 올리면 안 된다. ⓒ 심명남


볼락은 매우 예민하고 영리한 물고기이다. 흔히 볼락을 발 낚시라 하는 것은 고기가 들어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는 낚시가 아니라 고기가 모여있는 곳을 찾아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 해초인 몰이 무성하게 자란 곳을 노리면 많은 마릿수의 볼락을 잡을 확률이 매우 높다. 또한 볼락낚시는 한 마리가 물면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물기 때문에 입질이 온다고 채비를 바로 올리면 안 된다.

낚시 열개가 묶인 카드에 민물새우와 갯지렁이를 끼우고 제대로 낚시를 시작했다. 수심은 20m 이상 쑥 들어간다. 그런데 곧바로 와야 할 신호가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주위는 온통 갯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뿐, 잠시 고요한 침묵만이 흐른다.

오랜만에 삼형제가 모였다. 삶에 찌들려 바쁘게 살다 보니 점점 형제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어릴 적 큰 형님은 7남매인 우리 형제들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했다. 한참 공부해야 할 시기에 배를 타서 동생들 학비를 보탰다. 이후 지겨운 뱃생활을 정리한 뒤, 많은 자격증을 따고 고입과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국내 굴지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노조활동으로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이후 또다시 새로운 삶을 헤쳐나가지만 삶이 만만찮아 보여 안쓰러울 뿐이다.

"물었다. 바로 이거야!"
"야, 볼락이다. 씨알이 장난 아닌데……"

큰 형님의 낚시대가 휘어지고 작은 형님의 낚시대도 소식이 왔다. 입질이 시작된 것이다. 형님이 올리는 것을 구경하는 사이 내 낚시대도 휘어진다. 한꺼번에 몇 마리씩 올라오는 볼락은 역시 손맛이 죽인다. 이 맛에 낚시에 빠지는 모양이다. 한참 동안 볼락을 낚는 사이 물때가 지났는지 소식이 뜸해진다. 이후 점점 바람은 더 불어나고 파도가 굵어진다. 작은 보트로 이곳까지 왔지만 파도가 높으면 항해가 힘들어질지도 몰라 철수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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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소호동에서 출발한 최근 미국에서 사왔다는 10억원짜리 보트가 선상낚시를 즐기고 있다. ⓒ 심명남


겨울바다는 변덕스런 인간의 심성을 닮았나 보다. 성질이 났는지 기상이 계속 악화되자 이곳에서 수중여로 유명한 상산동 칼바위 끝으로 이동해 배낚시에 들어갔다. 칼바위 역시 공략 어종은 볼락이다. 한참 낚시를 하는데 근사한 보트가 우리 곁에 와서 낚시를 한다. 이 보트는 우리보다 30분 먼저 요트장을 출발한, 최근 미국에서 사왔다는 10억원짜리다. 우리와는 상대가 안 되는 호화보트다. 우리곁에 서니 마치 티코와 에쿠스 격이다.

동료들에게 실력 들통난 박프로 "역시 프로는 달라"

이렇게 오전을 보내니 어느덧 오후 2시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동료들을 싣고 동고지 방파제로 이동했다. 헌데 그렇게 실력을 자랑하던 동료들은 별 재미를 못 봐 '뻘쭘'하다. 칼잡이인 내가 잡은 고기를 썰었다. 감성돔, 볼락, 오징어, 쥐치 등 횟감으론 고급어종들이다. 다들 겨울바람을 원 없이 맞아서 오늘 조과는 별 성과가 없었지만 스트레스를 훨훨 날려 버렸다. 우리는 잡은 고기로 회를 썰어 술 한잔에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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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타고 떠난 보트가 방파제에 정박되어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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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낚시를 떠난 동료들이 잡은 고기로 회를 썰어 술한잔에 위안을 삼으며 건배를 하고 있다. ⓒ 심명남


내일이면 동고지 방파제에서 맛본 횟감이 그리워지겠지만 저마다 낚시에 대한 푸념을 늘어 놓는다.

"난 말이야 오늘 채비가 안 맞아 실력발휘 못했어."
"어제 5짜 감생이들 용꿈 꿨당께"

그렇게 실력을 자랑하던 일명 박 프로의 말이다. 그런데 술이 한잔 거나해진 동료가 이런 말은 남겼다.

"야 박 프로니 오늘도 저번처첨 어시장 가서 고기 사가지고 가겠다?"
"집 사람한테 자랑하려면……"
#감성돔 #볼락 #겨울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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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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