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와 결혼한 이유, 한 사람만 바라보기 위해

한국으로 시집 온 필리핀 아줌마의 하루

등록 2009.12.29 15:06수정 2009.12.2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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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두 번째를 맞았다. 이주센터 한글교실 수료식에서 수료증을 받은 학생은 여섯 명. 작년에는 10명이 넘었는데 모두 아기를 낳느라, 취직이 돼 일을 나가느라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들어버렸다. D는 올해도 수료증을 받았다.

D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얼굴에는 부끄럽지만 자랑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처음 D를 만났을 때 그녀는 항상 커다란 등산용 배낭을 등에 맨 채 수업에 오곤 했다. 센터 선생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한국에 온 후 그녀의 남편은 가족을 버려준 채 가출을 했었고, D는 공장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했다. 무기력해진 D는 심한 우울증으로 급기야 치료를 받아야 해 아이 둘을 돌볼 상황이 아니었다. 시댁 식구들은 남편을 수소문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

"남편, 돈 안줬어요. 그 때 일 없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돈 안주면 말 안해요. 대답 안해요. 지금은 공장에 다녀서 돈 있어요. 처음에 남편이 때렸어요. 집에도 안들어왔어요. 그래서 머리하고 온 몸이 많이 아팠어요."

배낭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는 물음에 D는 "물건이요. 집에서 쓰는 거..." 하고 무심하게 대답하곤 했었다. 빠짐없이 수업에 나와 공부를 열심히 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소식이 끊어지던 D. 그래도 올해는 거의 빠지지 않고 수업에 나왔다. 그리고 오후에는 도시락 회사로, 상품 포장회사로 일을 하러 나갔다.

한글을 가르치며 그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첫 번째 작업이 그들과의 인터뷰였다. D는 나의 청을 선선히 받아들여 준 첫 번째 학생이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 D는 여름 내내 그랬듯 헐렁한 티셔츠에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 맨발에다 장식이 전혀 없는 파란 색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물방울이 튄 D의 종아리에는 오소소한 소름이 돋아있었다. 

"오늘 오후엔 일 안해요?"
"오늘 일 없어요."
"그럼 오늘 같은 날 뭐 해요?"
"뭐 그냥..."

D는 항상 이렇게 웃으며 '그냥' 하고 얼버무린다.

"있다가 마트 갈 거예요. 내일 애들이 와요."
"애들? 어디서?"
"애들, 어린이집에 있어요. 거기서 학교 다녀요."

D는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아이들을 보살필 수 없었고 이주센터의 주선으로 아이들을 수녀님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보냈다. 큰 애는 벌써 초등학생이었지만 동생과 함께 어린이집에서 지냈고 토요일이면 집에 왔다. D는 나에게 커피를 마시러 가자 했다. 시내 도로 변에 있는 맥도날드 2층으로 올라갔다. 한사코 커피값을 내겠다는 D를 한쪽으로 밀어두고 커피를 샀다. 패스트푸드 2층은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오고, 음악소리는 컸으며, 좁은 의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은 두 아줌마의 모습이 생뚱맞았지만 그런대로 따뜻했다. 

한국어에 컴퓨터까지 배우는 필리핀 부인, 모두 아이들 위해서

D는 필리핀 마닐라 어느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한국에서 온 남편과 맞선을 봤고, 일주일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난 코리아 한국스타일 잘 몰랐어요. 그 때 돈 생각도 안했어요. 지금은 애들 있어서 돈 벌어야 해요."

그녀가 아이들을 위해 할 일은 돈을 버는 것 말고 또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배우는 것. 필리핀 출신이라 영어가 되지만 딸은 한국말이 어눌한 엄마에게 영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주센터에서 여는 한국어반 기초, 중급, 주말반까지 모두 참석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고 싶어 시청에서 하는 컴퓨터 교실도 듣는다. 직접 보살피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모든 생활과 계획은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필리핀에서 형제 중에 아빠가 달랐어요. 엄마가 애인이 많아서 아빠가 다른 언니, 동생하고 같이 살았어요. 난 싫어. 한 사람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녀가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한 이유는 한 남자와 아이를 키우며 오래 살고 싶어서였다. 가난해도 한 사람과 오래 살면서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은 것이 D가 바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남편만 똑바로 살어 그러면 좋아요. 비즈니스 가게 하고 싶어요. 스몰 스토어. 물건 팔고 그러는... 남편이 나이가 많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어요. 천천히 천천히 하면 괜찮아요. 앞으로 할 수 있어요."

띄엄띄엄 말을 해주며 D가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D의 까맣고 거친 손이 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글씨를 쓰는 D의 손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핸드크림을 들고 가 발라주었던 그 손이었다. 그때 그녀의 손은 거칠었고, 겨울이 아니었는데도 여기저기 부르터있었다.

하늘은 아직 어둡게 내려앉아 있었지만 비는 어느 새 가늘어져 있었다. D와 나란히 걸어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검정색 우산을 받쳐 든 D는 느릿느릿 지하에 있는 마트로 들어갔다. 두부나 만두를 장바구니에 담아낸 그녀는 계산대에서 야쿠르트 뭉치를 내 가방 안에 억지로 밀어넣었다. 작년 수료식 때 데리고 갔던 내 딸아이를 D는 기억하고 있었고, 그 애에게 갖다 주라고 했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비에 젖은 슬리퍼가 자꾸 D를 미끄러지게 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선물을 받아든 나는 대신 D를 집 앞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차로요? 좋아요?"

말이 빠르지 않지만 대답은 항상 시원하게 해주는 D. 이번에도 그랬다. D의 집앞 골목. 지붕 낮은 오래된 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그 어디쯤이 D의 집이라고 했다. 그 집들 담장 뒤로 신축한지 몇 년 안 된 웅장한 시청 건물이 보였다. 집 앞에 도착해 D가 차에서 내리는데 빗방울이 다시 굵어졌다. 짧은 인사, D는 다시 검정색 우산을 펼쳐들고 한 손에는 비닐봉투를 든 채 앞만 보고 느릿느릿 걸어갔다. 부지런히 빗물을 거둬내고 있는 와이퍼 너머로 D의 뒷모습이 점점 흐리게 멀어져갔다.

덧붙이는 글 | 2년째 이주센터에서 다문화가정 여성을 대상으로 한글강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들과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다른 그들이 우리로 함께 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2년째 이주센터에서 다문화가정 여성을 대상으로 한글강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들과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다른 그들이 우리로 함께 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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