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니들이 죄가 많다

[서평] 팔리 모왓의 <잊혀진 미래>

등록 2010.01.04 09:37수정 2010.01.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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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팽이출판

팔리 모왓의 <잊혀진 미래>의 원제는 'People of the Deer'. 사슴의 사람들. 즉 사슴부족이라는 뜻이다. 사슴부족은 사슴을 주식으로 삼으면서 살았던 캐나다의 에스키모를 말한다. 캐나다 북부지방의 툰드라 지대에 살던 이들은 순록을 잡아먹으면서 살았다. 이들 부족은 이할미우트라고 불렸다.

1946년, 한 남자가 이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 그들과 2년 동안 같이 지냈다. 그는 그들과 같이 지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았고, 그들과 교감해 그들의 동료로 인정을 받았다. <잊혀진 미래>는 그 남자가 이할미우트와 함께 지낸 기록이다.


팔리 모왓은 그들과 함께 지낸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더불어 백인의 횡포를 낱낱이 고발한다. 1886년, 이할미우트 부족은 7천 명이었다. 하지만 1946년 팔리 모왓이 그들에게로 갔을 때 그들의 수는 40명으로 줄어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백인들 때문이었다.

순록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던 이할미우트 부족 남자들이 사슴 사냥을 포기하고 여우사냥에 나서면서 이 부족 사람들에게 위험이 닥쳤다. 백인들은 이들에게 총과 탄약 그리고 먹을 것을 주면서 여우를 잡도록 회유했다. 여우 가죽을 가져오면 물품을 나눠주었다. 이할미우트의 용감한 사냥꾼들은 순록을 잡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순록 잡는 법을 버렸고, 끝내는 순록을 잡는 방법마저 잊어버렸다. 용감한 순록 사냥꾼이었던 아버지의 사냥법이 아들에게 전수되지 않았던 것이다.

백인을 믿은 자들은 늘 그렇듯이 백인들 때문에 멸망에 이르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우 가죽을 잔뜩 들고 백인 교역소를 찾은 에스키모들은 텅 빈 오두막과 마주친다. 여우 가죽은 값이 떨어졌고, 백인들은 에스키모에게 아무런 통고 없이 철수했다. 여우 가죽을 먹을 것이나 탄약으로 바꿔가야 하는데 바꿔 줄 사람들이 사라져 버렸으니, 이들에게 당연히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었다.

사슴 사냥 못하면 혹독한 겨울을 넘길 수 없는 사람들

위기는 그냥 넘길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다. 이할미우트 사냥꾼들은 빈손으로 가족이 사는 이글루로 돌아갔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긴 굶주림뿐이었다. 영하 50~60도를 오르내리는 북극 지방의 긴 겨울을 나려면 사슴을 잡아 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들은 먹을 것이 없었다. 여름내 사슴을 잡는 대신 먹을 수 없는 여우를 잡았으니. 사슴의 무리는 겨울을 나려고 멀리 떠나버린 지 오래였고, 극한으로 추운 툰드라 지대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다. 굶주림으로 자식이 죽고, 아내가 죽고, 끝내는 가족을 부양하던 사냥꾼마저도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7천 명이 40명으로 줄어드는 데는 그리 긴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한 이십 년 남짓?

그들이 우리에게 우리 사람들의 전통적인 사슴 사냥방식을 내려놓고 여유사냥으로 바꾸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했고 한동안 모든 일이 잘 되어 우리는 번성했지요. 우리들의 대부분처럼 나도 젊은 시절부터 좋은 여우사냥꾼이 되었고, 여우를 잡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 아버지 시절 사슴을 사냥하던 방식을 나는 많이 알지 못했지요. 왜냐하면 내 소총에 탄약이 있는 한 그것을 알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할미우트 부족의 사냥꾼 오호토는 증언한다. 소총이 있으나 탄약이 없으므로 사슴을 잡을 수 없었다고. 그는 굶주림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잃었고, 혼자만 살아남아 그 이야기를 팔리 모왓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왜 당신네 백인들은 한 번 왔다가, 한 번 머물고 나서는, 우리가 당신들의 도움이 가장 절실히 필요할 때에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것입니까? 왜 그런 거지요? 여우 털을 가지고 오면 탄약으로 바꿔준다고 가르쳐 준 것이 상인들인데, 왜 상인에게 여우 털을 가져갈 수가 없고 그 대가로 탄약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까? 이 불가사의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굶주림이 닥치면 이할미우트 부족에게는 살아남는 등급이 보이지 않게 정해진다. 연장자가 가장 먼저 죽어야 하고, 다음은 어린아이들이다. 그 다음 등급은 여자,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인 사냥꾼이다.

노인은 살아 있어봤자 남은 가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굶주림의 위기가 닥치면 노인들은 가장 먼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혹독한 눈보라가 부는 밤, 모든 옷을 벗고 눈보라 속으로 걸어 나가는 노인들. 가족은 그 사실을 알지만 모르는 척 외면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남은 자들은 살아남아 부족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사냥꾼과 여자가 살아남는다면 다시 낳을 수 있기 때문에 희생의 우선순위가 된다. 여자들은 젊은 여자일수록 살아남을 수 있다. 나이 들어 자궁이 잉태할 능력을 잃은 여자는 종족의 보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이자 사냥꾼이 없다면 나머지 가족들은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니 그가 가장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어찌 보면 냉혹한 현실이지만, 그들은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그들이 늘 이렇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감정이 앞서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모든 가족이 죽음 앞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아내는 말한다, 아들을 살리려면 아버지의 고기가 필요하다고

부부에게는 어린 아들 둘과 늙은 아버지가 있었다. 이들은 길고 긴 겨울에 혹독한 굶주림 앞에 직면했다. 먹을 것은 전혀 없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속삭인다. 아버지를 죽여서 그 고기를 먹어야겠다고, 그래서 아이들을 살려야겠다고.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어떻게 가족들을 먹여 살리면서 살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대할 수도 없다.

아내는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시아버지에게 가서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않고 있다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다. 아내는 시아버지의 목을 조르려고 노끈을 준비하지만, 끝내 목을 조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멀찌감치 누워서 이 모든 상황을 귀로 듣고 있던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숨을 죽인 채 있다가 안도한다. 두 아들은 끝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굶어죽고 말았다.

다른 이야기 하나. 가장이 병들어 누웠다. 먹을 것은 거의 다 떨어졌다. 이대로 있으면 모두 굶어죽을 판이다. 젖먹이 아이가 딸린 아내는 걸어서 열흘 정도만 가면 친척이 사는 이글루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길에 아이를 데려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젖먹이인 아이를 환자인 남편이 돌볼 수 없었다. 어미가 없으면 아이는 살 수 없는 상황. 아내는 아이를 눈보라 속에 내놓고, 먼 길을 떠났다. 두 주일 만에 일족의 텐트에 아내는 도착했고, 아내의 오빠는 개썰매를 타고 환자를 구하러 왔고, 환자는 살아났다.

사슴의 이동통로에서 사슴을 잡아 고기와 지방과 가죽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이할미우트 부족들은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렸고 극소수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남은 그들 역시 캐나다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들은 죄다 사라졌을 지도 모르겠다. 팔리 모왓이 이들의 현실을 보고 들은 것이 1946년부터 1948년까지 2년간이었으니, 40명에서 28명으로 줄어든 이할미우트가 아직도 명맥을 잇고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법 없이도 자기네끼리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가던 이할미우트 부족 사람들은 아마도 백인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여전히 순록을 사냥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들이 절대로 굶주리지 않고 겨울을 나는 건 아니지만, 이토록 빠르게 인구가 감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백인들이 짓밟은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토착민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백인들은 여러 대륙에 발을 들여놓았고, 무자비하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대륙에 발달해 있던 문명을 혹은 문화를 짓밟고, 토착민들을 살상했다. <잊혀진 미래>는 백인들이 벌인 짓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팔리 모왓은 열다섯 살 때, 처음으로 북극 땅으로 여행을 떠나 사슴의 강을 보았다. 캐나다 북극에 살고 있는 순록인 카리부 무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처음 보고, 그는 매료당했다. 그의 기억 속에 각인 된 북극의 땅은 끝내 그를 다시 불러들였고, 그는 두려움 없이 그 땅을 찾아가 이할미우트 부족들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삶과 죽음, 생존 그리고 문명과 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준다. 그래서 기회가 닿는다면 한 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한데, 너무 많은 오·탈자와 문맥이 맞지 않는 문장들이 거슬린다. 좀 더 성의 있게 책을 마무리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건 그 때문이다.

잊혀진 미래 - 사슴부족 이누이트들과 함께한 나날들

팔리 모왓 지음, 장석봉 옮김,
달팽이, 2009


#사슴부족 #이할미우트 #에스키모 #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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