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 만에 "설국"으로 변해버린 서울 풍경

인간은 자연 앞에 겸손해야

등록 2010.01.05 08:23수정 2010.01.05 08:2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단 하루 만에 "설국"으로 변해버린 서울 풍경


a

단 하루만에 내린 눈으로 서울은 "설국"으로 변해버렸다. 창경궁 눈 터널을 산책하고 있는 연인들. ⓒ 최오균


지상엔 "눈 폭탄", 지하엔 "지옥철"

과연 하늘의 힘은 무서웠다. 서울은 불과 4시간 만에 쏟아진 "눈 폭탄 " 세례를 받고, 지상의 모든 버스는 "거북이"로 변했고, 지하철은 "지옥철"로 변해 늑장을 부리며 시민의 발을 꽁꽁 묶어 놓고 말았다.
.
2010년 첫 출근일인 4일 새벽부터 쏟아져 내린 눈은 불과 4시간 동안 17cm가 넘어 서울거리는 "폭설대란"이 일어났다. 눈은 오후까지 쉬지 않고 내려, 기상청은 오후 3시 현재 서울에 28.1cm의 눈이 내렸다고 밝혔다. 하루 적설량을 관측하기 시작한 1937년 이후 73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이다.

a

갑작스런 폭설로 발이 묶인 시민들이 우산을 받고 서 있다. 강변역 9시경. ⓒ 최오균


a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지하철은 지옥철로 변하고. 갈아타는 역에서는 몰린 인파가 서로 엇갈려 빠져나가는 데만도 한참을 걸려야 했다. 동대문운동장 역 10시경 ⓒ 최오균


갑자기 내린 눈 폭탄으로 거리는 극심한 교통정체를 빚어냈고, 지하철은 대거 몰린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갈아타는 역에서는 몰린 인파가 서로 엇갈려 빠져 나가는데만도 한참을 걸려야했다. 거기에다가 전동차가 고장까지 나 연착을 하는 바람에 시민들은 우왕좌왕하며 하루 종일 시달려야 했다.

점점 차가 줄어드는 거리

5cm 정도의 눈이 내릴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를 믿고 출근길에 자동차를 몰고 나온 시민들은 쌓이는 눈 때문에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했다.


시동이 꺼지는 차가 속출했으며, 체인을 감지 않는 차는 물론 체인을 감은 차도 웽웽거리며 헛바퀴를 돌리기가 일쑤였다.

a

극심한 교통체증을 보이던 거리는 오후부터 점차 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차없는 거리로 변한 북촌의 가회로. 오후 3시30분경 ⓒ 최오균


아무리 염산을 뿌려댔지만 워낙 많이 쏟아지는 눈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후까지 눈이 계속 쏟아지자 거리에는 자동차의 행렬이 눈에 뛰게 줄어들었다. 성북동이나 북촌처럼 언덕배기가 있는 거리는 아예 자동차를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단 하루 만에 "설국"으로 변해버린 서울

자동차가 끊긴 북촌거리는 고요한 정적에 휩싸였다. 택배를 나르거나, 철가방을 들고 중국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하얀 눈에 덮인 북촌은 일본의 노벨문학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연상케 했다. 이렇게 단 한나절 만에 서울은 순백의 세계, 눈의 나라로 변해 있었다.

눈에 덮인 한옥은 지붕만 배꼼이 보이고, 골목은 치어놓은 눈으로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눈 이불을 뒤집어 쓴 자동차는 골목의 한쪽에서 졸고 있었다.

a

쓸어놓은 눈이 작은 산을 이루고 있다. 서울 북촌 ⓒ 최오균


a

설국으로 변한 북촌. 눈에 덮인 한옥은 지붕만 빼꼼이 보인다. 북촌 가회동 오후 3시 경 ⓒ 최오균


이 추운 겨울에도 붉은 남촌 열매는 눈에 둘러싸여 더욱 빨갛게 보인다. 그것은 차라리 빨간 설화다. 아이들만 신이나 눈싸움을 하거나 골목의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고 있다.

북촌에서 바라보는 인왕산은 겸제의 "인왕제색도"를 방불케 한다. 겸제는 비온 뒤의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상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화폭에 담았는데, 지금 폭설에 잠긴 인왕산은 어찌 보면 하얀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a

빨간 설화를 연상케 하는 남촌 열매. 북촌 가회동 ⓒ 최오균


a

겸제의 "인왕제색도"를 방불케 하는 인왕산. 북촌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설경 ⓒ 최오균


눈 덮인 고궁은 "별 천지"

그런가 하면 눈에 덮인 고궁은 "별 천지"의 세계다. 하얀 눈을 이고 있는 고궁은 고색창연하다 못해 눈이 부시다. 창경궁 명정전은 하얀 눈에 덮여 정중동 자세를 취하고 있다.

벼슬의 품위를 나타내는 표시석도 거의 눈에 잠겨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이 거대한 눈 덩이 앞에 무슨 계급을 따지겠는가?

a

아름다운 설경에 둘러싸인 고궁은 별천지다. 하얀 눈에 덮여 더욱 고색창연하게 보이는 창경궁 명정전. ⓒ 최오균


창경궁에는 유독 소나무가 많다. 폭설을 맞은 소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휘어져 힘에 버거워하고 있다. 그 모습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그 자체다.

못다 진 단풍나무는 하얀 설화로 피어나 있다. 휘어진 나뭇가지는 눈 터널을 만들어 내고, 고궁의 숲은 설화로 가득하다.

a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소나무. 창경궁 후원 ⓒ 최오균


a

아름다운 설화로 변한 나무들. 창경궁 ⓒ 최오균


인간은 자연 앞에 겸손해야

자연은 이렇게 변화무쌍하다. 자연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비해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자연은 이처럼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필멸의 유한하고 왜소한 존재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에서 역설했듯이 인간은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과 대비되는 유한하고 고독한 존재다. 단 하루에 쏟아지는 눈도 인간은 어찌할 수 없는 힘없는 존재가 아닌가?

아름다운 "설국"으로 변한 서울 풍경! 자연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요, 종교다. 인간은 자연을 숭배하고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하며,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눈 폭탄 #설국 #폭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4. 4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5. 5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