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날 때까지 놀게 해주세요"

[사진] 홍대 앞을 찾은 젊은이들과 아이들의 새해 소망

등록 2010.01.12 10:27수정 2010.01.1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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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날 때까지 놀게 해주세요 ⓒ 이승철


"2010년 새해 당신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이루고 싶습니까?"


지난해 말 서울 홍익대 앞을 찾은 사람들에게 새해 소망을 직접 쓰게 하여 전시한 2010년 새해 소망의 문이 하얀 눈이 쌓여 있는 서울광장에 세워져 있다. 사각형 벽과 아치형 문, 그리고 가운데 기둥 모양의 전시공간에 빽빽이 쓰여 있는 수백, 아니 수천 장의 소망의 글들 중에서 눈길을 잡아끄는 몇 개를 살펴보았다.

먼저 눈길을 붙잡은 소망은 "코피 날 때까지 놀게 해주세요"였다. 얼마나 공부에 시달렸으면, 얼마나 놀고 싶었으면 코피 날 때까지 놀고 싶다고 했을까? 이 바람은 어쩌면 요즘 각종 과외와 입시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어린이들과 중고등학생들의 공통적인 소망이 아닐까 하는 느낌에 가슴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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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갖고 싶어요, 내 방이라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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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존중 받는 살맛나는 세상 ⓒ 이승철


두 번째 글은 "집 갖고 싶어요, 내 방이라도..."였다. 이 소망도 어른의 것은 아니었다. 아직 어린 학생일 것이 분명했다. 집 없는 서러움을 느끼고 있는 학생의 절실한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고 있어서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아픔으로 다가왔다. 특히 집을 가질 수 없다면 자신의 방 한 칸이라도 갖고 싶다는 열망을 소망의 쪽지 글로 적은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세 번째 글은 조금 차원이 달랐다. "사람이 존중 받는 살맛나는 세상"이라는 소망은 이름으로 미루어볼 때 어느 여성의 소망인 듯했다. 사람이 존중 받는 살맛나는 세상이라니,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사람이 전혀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지난 1년 동안 용산참사가 해결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했으니 무리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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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전역하게 해주세요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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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환경을 살려요 ⓒ 이승철


어디 용삼참사뿐인가. 사람의 목숨을 초개같이 여긴 희대의 살인마와 나영이 사건,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수많은 비인간적인 일들을 생각하면 분명 사람이 사람답게 존중 받지 못했던 것은 엄연한 현실이지 않은가.


네 번째 글엔 군에 복무 중인 연인이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었다. "2010년은 전역의 해, 무사히 전역하게 해주세요" 류지♡. 군에서 복무 중인 연인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느껴져 살포시 미소 짓게 하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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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살아 숨쉬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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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없는 모두가 위너인 세상 ⓒ 이승철


다섯 번째 소망은 "지구가 아파요, 우리 환경을 살려요"였다. 이 소망의 글에는 "지구를 사랑하는 어린이, 지구가 아파요, 당신의 자녀에게 쓰레기장을 남겨주실 껀가요? 당신의 자녀를 쓰레기장에서 키우실 건가요?"라고 쓰여 있어 어느 환경운동가의 소망을 담은 글인 듯했다.

여섯 번째 소망은 "정의를 살아 숨쉬게"였다. 정의롭지 못한 우리 사회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었다. 어느 젊은 대학생이 우리 사회가 매우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쓴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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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도 행복한 세상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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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마음껏 먹게 해주세요 ⓒ 이승철


일곱 번째 글은 "루저 없는, 모두가 위너인 세상"이었다.  이 글은 지난해 어느 TV방송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프로그램에 대한 반발심을 담은 글인 듯했다. 정말 루저들이 우글거리는 세상보다는 모든 이가 위너인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덟 번째 소망도 어느 학생의 글이었다. "시험 0점, 꼴찌도 행복한 세상." 그런데 꼴찌도 행복한 세상이 과연 존재하긴 할까? 아니 존재할 수 있을까? 새해 들어 새로 시작한 방송드라마 <공부의 신>을 보노라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꼴찌도 행복한 세상'은 너무 철없는 소망으로 그칠 것 같아 안타깝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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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꺼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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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말 잘들었으면 좋겠다 ⓒ 이승철


아홉 번째 소망의 글은 너무나 눈물겨운 내용이었다. 밥그릇에 수북한 밥 그림과 함께 "밥 한 공기. 밥 마음껏 먹게 해주세요"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밥 한 공기 마음껏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 얼마나 눈물겨운 소망인가? 4대강 사업이라며 수십조 원을 쏟아 붓는 나라에 한 공기의 밥을 마음껏 먹지 못해 새해 소망으로 바라는 국민이 있다니,

열 번째 소망은 그래도 조금은 로맨틱한 소망이었다. "Dong Young, 넌 내꺼." 누군가를 점찍어 '넌 내 거야'라고 찜하다니. 이 얼마나 달콤한 소망인가. 아홉 번째 소망과는 너무나 다르고 여유 있는 소망이어서 빙긋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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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절 괴롭히지 않게 해주세요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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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이마 주름살 펴줄 다리미 사고 싶다 ⓒ 이승철


그 다음은 "동생이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다", "오빠가 제발 절 괴롭히지 않게 해주세요"로 어린이들의 소박한 바람이 담긴 글들이었다. 그러나 "아부지 이마의 주름살을 펴줄 다리미 사고 싶다"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다. 걱정과 근심으로 늙어가는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안타까워하는 말인지, 자꾸 화를 내는 아버지의 얼굴표정을 탓하는 내용인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17일까지 전시되는 소망의 글들엔 흔하고 일반적인 소망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노라면 정말 절실하고 심각한 소망의 글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2010년 새해에는 저들의 절실한 소망들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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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새해 바람을 담은 쪽지 글을 전시 중인 2010 소망의 문 ⓒ 이승철

#새해 #소망 #코피 #홍대 앞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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