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뿌듯하게 채운 책 쉰 가지

[책이 있는 삶 125] 지난 한철 이런 책을 읽고 쓰며 살았다

등록 2010.01.19 11:02수정 2010.01.1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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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봄과 여름에 걸쳐 적바림한 느낌글을 돌아봅니다. 이 느낌글들은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띄우기도 하고, 시민단체 신문인 <시민사회신문>에 싣기도 했으며, 사진잡지 <포토넷>에 싣기도 했습니다. 읽어낸 책을 차근차근 느낌글로 삭여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 깜냥껏 하나하나 적바림해 본다고 몸부림을 치면서 하나하나 끄적여 내고 있습니다.

 

책읽기는 책을 사들여서 읽어치우면서 끝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과 생각을 줄거리와 잘 엮어서 삭인 다음 느낌글로 뽑아내야 하고, 이렇게 느낌글로 뽑아낸 다음에는 나 스스로 내 삶을 새롭게 가꾸면서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새로 거듭나는 내 삶'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비로소 책읽기는 오롯이 영글지 않느냐 싶습니다.

 

꼭 쉰 권을 하나하나 되돌아봅니다. 앞으로 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지난 2009년 가을과 겨울에 걸쳐 적바림한 느낌글도 차근차근 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해에 두 번씩 쉰 가지 책을 되짚으면서, 내가 참 좋은 책을 알맞게 골라서 읽고 느낌글로 삭여 왔는지, 그렁저렁 내키지 않아도 '애써 읽었으니 느낌글이라도 써야지?' 하는 매무새는 아니었는지 곰곰이 짚어 보고 싶습니다.

 

지난 봄과 여름에 즐겁게 읽고 기쁘게 느낌글을 쓴 책들

 

 1.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1년 : 프로벤슨 부부 / 문선사, 1984

 2.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 : 추송웅 / 기린원, 1981

 3. 17+i, 사진의 발견 : 김윤수 / 바람구두, 2007

 4.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 폴 인그램 / 알마, 2008

 5.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 다케타즈 미노루 / 진선북스, 2008

 6. 여자의 식탁 5 : 시무라 시호코 / 대원씨아이, 2009

 7.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 : 조원진ㆍ김양우 / 삼인, 2009

 8. 호두 : 아베 하지메 / 계수나무, 2006

 9. 재개발 아파트 : 김영미 / 청개구리, 2009

 10. 풍부한 유산 : P.라핀 / 성바오로출판사, 1991

 11. 마오리족, 하늘과 땅이 낳은 사람들 : 뉴질랜드 옛이야기 / 산하, 2009

 12. 아버지의 쌀알 : 민풍 호 / 달리, 2009

 13.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 김선주 / 삼인, 2009

 14.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 한무영 / 그물코, 2009

 15. 海軍兵學敎 : 眞繼不二夫 / 國書刊行會, 1978

 16. 강아지똥 할아버지 : 장주식ㆍ최석운 / 사계절, 2009

 17. 날고양이들 : 어슐러 K.르귄 / 봄나무, 2009

 18. pong pong : 오자와 마리 / 대원씨아이, 2009

 19. 그늘 속을 걷다 : 김담 / 텍스트, 2009

 20. 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 샘터, 2005

 21. 열정세대 : 김진아 외 아홉 사람 / 양철북, 2009

 22. 우애의 경제학 : 가가와 도요히코 / 그물코, 2009

 23. 한민족과 그 예술 : 야나기 무네요시 / 탐구당, 1976

 24.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 김영갑 / 하날오름, 1996

 25.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 츠지모토 마사시 / 知와사랑, 2009

 26.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 토마스 야이어 / 양철북, 2009

 27. 우리 마당으로 놀러 와 : 문영미ㆍ조미자 / 우리교육, 2007

 28.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 다케나카 치하루 / 갈라파고스 ,2009

 29. 똥꽃 : 전희식ㆍ김정임 / 그물코, 2008

 30. 시와 혁명 : 김남주 / 나루, 1991

 31. 슈베르트 : 폴 란돌미 / 신구문화사, 1977

 32. 그때 그곳에서 : 에드워드 김 / 바람구두, 2006

 33. 산골 아이들 : 함성호 / 눈빛, 2007

 34. 티베트 승려가 된 히피 의사 : 툽뗀 갸초 / 호미, 2009

 35. 페르세폴리스 2 : 마르잔 사트라피 / 새만화책, 2008

 36. 나의 꿈꾸는 눈동자 : 제니 수 코스테키-쇼 / 보림, 2009

 37. 白い風 : 川上 淸 / 1974

 38. 영원한 것을 : 나가이 다카시 / 성바오로출판사, 1964

 39. 숨어 있는 예수 :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 달팽이, 2008

 40. 자연의 색채를 사랑한 이인성 : 신수경 / 나무숲, 2009

 41. 산촌 유학 : 고쿠분 히로코 / 이후, 2008

 42.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 : 아놀드 로벨 / 비룡소, 1996

 43. 어시장 삼대째 21 : 미츠오 하시모토 / 대명종, 2009

 44.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 임영인 / 삶이보이는창, 2009

 45. 무식하면 용감하다 : 이두호 / 행복한만화가게, 2006

 46. 아파트에 미치다 : 전상인 / 이숲, 2009

 47. 종이 봉지 공주 : 로버트 문치ㆍ마이클 마첸코 / 비룡소, 1998

 48.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 : 강제욱, 이명재, 이화진, 박임자 / 포토넷, 2009

 49. 퇴색공간 : 허영만 / 당산, 1990

 50. 흐느끼는 낙타 : 싼마오 / 막내집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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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들어온 책들 1. ⓒ 최종규

내 마음에 들어온 책들 1. ⓒ 최종규

이렇게 쉰 가지 책이름을 죽 적어 보았는데, 이 쉰 가지 책 가운데에는 별을 다섯 붙일 만하다고 느끼는 책이 있는 가운데, 별 하나 붙이기에도 아깝다고 느끼는 책이 있습니다. 1964년에 처음 나오고 꾸준히 사랑받았으나 판이 끊어진 <영원한 것을> 같은 책은 헌책방에 제법 나돕니다만, 오래된 책이라고 여기는지 알아보는 손길이 몹시 적습니다. <아파트에 미치다>는 한국사람 스스로 아파트 문명을 파헤쳐 보고자 애쓴 책이지만, 글쓴이 스스로 목소리만 너무 높인 나머지 줄거리를 알차게 여미지 못했습니다. <열정세대>는 글을 쓴 분 높낮이가 너무 벌어져서 아쉬웠으나, 푸름이 목소리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사하라 이야기>에 이어 나온 <흐느끼는 낙타>는 산문이 고스란히 문학(소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이야기가 아닌가 느낍니다. <시와 혁명> 같은 문학평론이 되읽힐 수 있으면 오늘날 우리 시는 사뭇 거듭나지 않을까 생각해 보고, <퇴색공간>을 헌책방에서 캐내면서 겉과 속이 다른 글쟁이(또는 만화쟁이) 삶이 돈과 이름값하고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느끼도록 합니다.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1년>은 다시 안 나온 줄 알았는데 지난 2008년에 새옷을 입고 나왔더군요. 얼마 앞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사랑받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요. <슈베르트> 같은 책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되살려내는 분은 없지만, 이런 책이 나오고 읽히고 해야 비로소 예술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갗으로 느끼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예술답게 북돋울 수 있습니다. <나의 꿈꾸는 눈동자>는 틀림없이 훌륭한 그림책인데, 나라안 그림책 작가치고 이만한 작품을 못 그릴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나라안 그림책 작가는 '이 그림책에서 다룬 이야기'를 너무 하찮게 여긴달까요. 아름답고 알뜰하게 펼쳐내는 마음그릇이 좁다고 할까요. <종이 봉지 공주>도 퍽 훌륭한 그림책이지만, 이만한 이야기는 번역보다는 창작으로 일구어 내어 우리 아이들한테 선물해 주면 얼마나 기쁠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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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들어온 책들 2. ⓒ 최종규

내 마음에 들어온 책들 2. ⓒ 최종규

 

<17+i, 사진의 발견>은 썩 훌륭하지는 못한 사진이야기라고 느끼지만, 일부러 꼼꼼히 읽고 찬찬히 느낌글을 적었습니다. 글쓴이 눈썰미와 깊이가 괜찮았으며, 이렇게 '다 다른 목소리'를 내어 사진을 말하려는 움직임이 반가웠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호두>는 잘못 그린 대목이 곳곳에 나오기는 해도 따뜻함이 감도는 좋은 작품입니다.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은 돈도 종이도 품도 모두 아까운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책에 글과 사진을 넣은 젊은이들은 참말 우리 세상을 어떤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왜 스스로 껍데기를 벗어던지지 않고 자꾸만 껍데기를 뒤집어쓰려고 할까요.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가 우리 나라에서 제대로 읽히거나 삭이게 될 날까지는 아주 멀었다고 느낍니다. 이 책을 쓴 분처럼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이 드물기도 한 한국이지만, 이렇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삶을 읽어낼 가슴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화책 <여자의 식탁>은 1권부터 4권까지 하나하나 훌륭했는데, 5권 또한 더없이 훌륭했습니다. 만화책 <pong pong>도 그렇고요. 그러나, 동화책 <날고양이들>은, 글쓴이께서 아무리 판타지문학을 훌륭하고 새롭게 열어젖힌 분이라 하더라도 '날로 먹고 보려'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짙게 들었습니다. 왜 이 작품을 그리 높게 여기는지 알쏭달쏭합니다. 그림책 <우리 마당으로 놀러 와>는 글감과 그림감을 '자연생태'에서 따왔다고는 하나, 글쎄요, 몹시 배부른 목소리요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보며 어떻게 하자고 손을 내미는지 아리송할 뿐입니다. 우리네 자연생태 그림책 눈높이는 이 틀거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치는가요. 그예 나라밖 그림책을 옮겨내는 데에서 머물러야 할까요.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같은 책이 곧잘 팔리는데, 굳이 책으로 쓸 만한 이야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삶이 조금도 배어들지 않고 머리만 굴리는 이야기로 '전쟁이 왜 말썽거리인가?'를 따져 보아야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은 제 좁은 생각을 많이 일깨우고 깨뜨려 준 고마운 책입니다.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은 뻔히 아는 이야기만 가득했는데, 어쩌면 저한테는 뻔한 이야기일 테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나도 모르거나 못 깨우친 사람이 많은 한국땅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애의 경제학>을 두고 오래된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오래된 이야기로 여기는 오늘날 사람들 가슴과 머리와 몸뚱이는 얼마나 새롭거나 파릇파릇한지 잘 모르겠어요. 다들 입만 살아 있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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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들어온 책들 3. ⓒ 최종규

내 마음에 들어온 책들 3. ⓒ 최종규

 

사진책 <산골 아이들>을 보면서, 어설피 글을 붙이려 하다가는 사진까지 함께 망가뜨리게 됨을 똑똑히 깨닫습니다. 글과 사진, 또는 글과 그림 두 가지를 한꺼번에 잘하기는 어려울 수 있는데, 못하면 못하는 줄을 스스로 깨닫고 더 가다듬거나 스스로 놓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이밖에, 그러니까 2008년 겨울과 2009년 봄 사이에 쓴 느낌글 가운데, <민들레 솜털>이라는 훌륭한 만화책 이야기를 쓰던 일이 떠오릅니다. 이 책이 더없이 좋아서 여러 차례 이웃한테 선물해 주었는데, 저 스스로 느낌글을 쓰면서 참으로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니사>라는 놀라운 이야기책 느낌글을 쓸 때에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 <니사>를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노랑가방>이라는 멋진 동화책 이야기를 쓰면서 마음이 들떴고, <뛰어라 메뚜기>처럼 널리 사랑받는 그림책 이야기하고 <내 어머니 이야기>처럼 거의 사랑 못 받는 만화책 이야기를 쓰면서 가슴이 넉넉해졌습니다. 사진책 <수복호 사람들> 느낌글하고 <2분 간의 녹색 운동>이라는 환경책 느낌글을 적으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갈마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바로잡거나 곧추세우기가 그렇게 어려울까요? 우리는 우리 삶터를 꾸밈없이 바라보거나 들여다보기 그렇게 힘들까요? 사진책 <제7의 인간> 느낌글은 여러 해를 묵힌 끝에 겨우 써냈습니다.

 

좀더 많은 책을 다루고 싶었지만, 아쉬운 대로 지난 봄과 여름에는 이런저런 책들을 이만저만 얕은 깜냥을 펼쳐서 느낌글로 다루어 보았습니다. 아기를 잠재운 깊은 밤이나 새벽녘에 눈을 비벼 가면서 적었습니다. 기저귀 빨래를 하며 손을 쉬는 틈틈이, 아기 죽을 끓이고 옆지기 밥을 끓이는 사이사이, 없는 틈을 마련해 겨우겨우 글 하나를 여미면서 살아왔습니다. 올해에도 이 같은 삶은 마찬가지이리라 봅니다. 아이 키우고 아픈 옆지기 보살피는 아빠로 살면서 책 읽고 글 여미고 삶 가꾸는 하루하루는 무척 고단한데, 이 고단함이야말로 좋은 선물이라고도 느낍니다. 책을 다 읽고 느낌글로 펼쳐낸 다음 내 나름대로 내 삶을 고치려고 애쓸 때마다 늘 뿌듯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책읽기 #책이야기 #책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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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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