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 민동석 "'PD수첩 무죄' 판사 퇴출운동"?

전 쇠고기 협상대표, 사법부 맹비난... 공직자 신분 망각 논란

등록 2010.01.20 21:13수정 2010.01.2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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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MBC PD수첩 제작진 5명 전원 무죄 선고를 받은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정책관이 법정을 나와 "자유민주주의와 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응하겠다"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MBC PD수첩 제작진 5명 전원 무죄 선고를 받은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정책관이 법정을 나와 "자유민주주의와 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응하겠다"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 중 명예훼손의 점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20일 오전 11시 30분경 서울중앙지법 519호 법정.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다가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MBC <PD수첩> 제작진 전원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이었다.

 

내내 굳은 표정으로 방청석에 있던 민동석 외교통상부 외교역량평가단장(전 농림수산식품부 정책관)의 얼굴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당시 정부측 수석대표였고,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당사자 신분으로 공판에 참석했다.

 

공판이 끝나자, <PD수첩> 관계자 등은 박수를 쳤고, 보수단체 회원들은 "판사의 옷을 벗기라"며 고함을 치는 등 거칠게 항의해 잠시 소란이 일었다. 그러나 민동석 단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조용히 이들의 틈을 비집고 재판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법원 1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와 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적법한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말한 뒤,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민동석 "이념적으로 경도된 판결... 판사 퇴출 운동 벌일 것"

 

2시간 뒤, 민동석 단장이 다시 기자들 앞에 섰다. 이날 오후 2시경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을 방문한 민 단장은 "판결을 보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사법부를 향한 그의 성토는 비장했다.

 

"제작진이 방송에서 30군데가 넘는 조작 변조 과장을 해서 국민을 속이고 길거리로 내몰고 해서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혼란과 국론분열을 야기하고 국제적으로도 대한민국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작진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자 법질서와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사법부가 이념에 편향된 일부 언론에게 휘둘렸다고 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의 판결은 사법 역사에서 수치스러운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대목까지는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제작진을 고소한 당사자로서 충분히 피력할 수 있는 소회라고 이해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민동석 단장은 갑자기 "이번 판결을 보면서 사법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판사가 법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는데 파괴자가 됐다. 이제 이런 일을 막아서 사법부가 국민 위가 아닌 아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재판과정을 공개해서 밀실에서 재판결과가 만들어지는 일을 못하게 어떤 조치든지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 단장은 더 나아가 "우리는 국민의 법 감정, 일반적 법 상식을 넘어선, 편향된 판결을 하는 사법부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판사들을 퇴출시키려는 국민청원 운동을 벌이려고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민사상 정정보도를 인정한 1심과 2심 내용까지 뒤집으면서 <PD수첩>에 무죄를 선고하는 편향된 판결을 한 것은 이념적으로 경도된 판결이 아닐 수 없다"며 "이런 편향된 판사들은 국민 보호를 위해 탄핵소추하는 운동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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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MBC PD수첩 조능희 책임PD 등 제작진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5명 전원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MBC PD수첩 조능희 책임PD 등 제작진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5명 전원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자기 사건 담당판사 퇴출 운운... 공직자 맞나?

 

순간 민 단장의 얼굴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얼굴이 묘하게 겹쳤다. 이날 6시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두 사람의 입에서 똑같이 사법부에 대한 이념 공세와 개혁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사법제도개선특위 1차 회의에서 "최근 일부 법관의 이념편향적 판결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국민적 여론과 법원이 좌파를 비호한다는 비판까지 등장하고 있다"며 "제왕적, 독선적 법관에 대한 견제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내려진 직후에는 조해진 한나라당 대변인이 논평을 통해 "국민의 사법부가 돼야 할 법원이 특정 배경과 성향, 이념에 치우쳐 변질돼 가고 있다"며 "사법부를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선 국민적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들의 주장과 민동석 단장의 주장이 일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재판장을 소란하게 만든 보수단체 회원들의 '비이성적인' 구호와도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발언 주체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한나라당은 정치 세력이고, 보수단체 회원들은 일반 시민이지만, 민동석 단장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엄연한 고위 공직자다. 

 

2008년 7월 그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 이후 불거진 이른바 '광우병 파동'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의를 밝혔다. 그러나 당시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이 사표를 반려하자, 그는 통상정책관직을 수행하며 '친정'인 외교통상부로의 복귀를 기다렸다. 3개월 뒤, 그는 농식품부를 떠나 외교통상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당시 민 단장은 "농림부에서 한미FTA 농업부문 협상과 '뜨거운 감자'로 모두가 꺼렸던 한미 쇠고기 협상을 맡아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며 "농림부에서의 근무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외교 협상에서 농업 현장의 목소리를 더 충실히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나 적어도 2010년 1월 20일, 그는 '농업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한 공직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법부 개혁과 '편향 판사' 퇴출을 요구하는 그의 목소리는 '투사'를 연상케 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책임지고 진행한 정부 중요 정책에 대해 비판 방송을 내보냈다는 이유로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음은 이날 <PD수첩> 판결문 중 일부다.

 

"이 사건 보도를 통해 피해자들이 수행한 '쇠고기 수입협상'이라는 정부 정책을 비판한 행위는 언론의 자유의 중요한 내용인 보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볼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쇠고기 수입 협상을 수행한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고 하여 바로 피해자들 개인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거나 그러한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이제 그는 자신의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해 법원 판결에 반발하며 공개적으로 담당판사 퇴출 운운함으로써 공직자의 금도를 벗어났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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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석 전 농식품부 정책관과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지난해 9월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 전 장관의 '박비향(撲鼻香)'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민동석 전 농식품부 정책관과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지난해 9월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 전 장관의 '박비향(撲鼻香)'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2010.01.20 21:13 ⓒ 2010 OhmyNews
#PD수첩 #민동석 전 정책관 #광우병 파동 #미국산 쇠고기 #판사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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