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 시장을 한국인이 장악했다고?

[세계의 한국 식당③-호주] 메뉴 개발하는 한국인, 답습하는 일본인

등록 2010.01.27 08:48수정 2010.01.2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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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외국 거리를 걷다가 한국식당을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간만에 입맛에 맞는 우리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우리 음식문화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요즘 '음식 한류'가 불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한국식당은 세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들이 새해를 맞아 전세계의 한국식당들을 집중 탐구해봤습니다. 일반 시민기자 여러분들도 자신들이 겪은 한국식당의 추억이나 제안이 담긴 글을 올려주시면 적극 배치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신문을 읽으면서 스시를 즐기는 호주 회사원 ⓒ 윤여문


일본이 아무리 김치를 '기무치'라고 우기면서 국제상품 특허권을 얻어도 김치는 분명히 한국음식이다. 같은 맥락으로, 한국에서 스시를 초밥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스시는 일본음식이다.

일부 한국 누리꾼은 "스시가 고대 중국에서 생겨나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문헌이 전해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800년대 초반에 스시를 지금의 형태로 만들고, 날생선을 먹지 않는 서양을 포함해서 전 지구에 전파한 국가는 일본이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미 세계화 된 음식을 두고 더 이상 배타적 상품권을 고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 스시 업계가 과거를 답습하는 동안, 한국인들이 '퓨전 스시'를 꾸준히 개발해서 저만치 앞서가는 상황에서.

지난 10년여간에, 호주에서 '웰빙 푸드' 붐이 형성되면서 빠르게 성장한 스시 업계를 한국계 이민자들이 장악했다. 개략적인 통계지만 호주 스시 업체 70% 이상을 한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 현장 취재를 통해서 그 현황과 배경을 알아보았다.

메뉴 개발하는 한국인, 답습하는 일본인

호주 스시 업계의 외형적 형태는 공장에서 스시를 만들어 매장에 공급하는 '테이크 어웨이(take away)' 방식과 식당에서 스시를 만들어서 고객에게 서빙하는 '즉석 스시(on site)' 방식으로 나뉜다. 대부분의 한국인 업체는 '테이크 어웨이'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편, 한국의 '회전 초밥 전문점'과 비슷한 형태의 호주 즉석 스시 업계는 한국인이 소유한 '스시 베이(Sushi Bay)'와 일본계 소유 '스시 트레인(Sushi Train)'이 양분하고 있다. 두 업체의 연혁을 알아보니 '스시 트레인'이 1994년, '스시 베이'가 2004년에 자체 브랜드를 가진 업체로 창업됐다.


그런데 10년 늦게 출범한 '스시 베이'가 호주 스시 업계의 선두로 나섰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과감한 투자를 통한 공격적 경영과 전산망을 활용한 첨단 관리방식이 시대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그보다 훨씬 큰 이유가 메뉴 개발이었다.

'스시 트레인'이 기본 메뉴 60여 개를 계속 답습하는 동안, 후발주자인 '스시 베이'는 약 10년에 걸쳐 90여 개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서 현재 150여 개의 메뉴를 자랑한다. 특히 스시에 익숙하지 않은 호주인들의 입맛에 맞는 '퓨전 스시'를 개발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스시 베이' 파라마타 지점의 북적거리는 점심 시간. ⓒ 윤여문


본사 직영과 프랜차이즈의 차이

기자는 현장 확인을 위해서 '스시 베이'와 '스시 트레인' 식당 여러 곳을 방문했다. 그런데 '스시 베이'가 11개 매장 전부를 본사에서 직영하는 것과는 달리, '스시 트레인'은 프랜차이즈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스시 베이'가 전체적으로 통일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스시 트레인'은 각 매장 주인의 개성이 엿보였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경영권이 분산된 '스시 트레인'의 경우 큰 예산이 소요되는 메뉴 개발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됐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 보니, 스시 메뉴 개발의 성공 여부는 업체 간의 경쟁 차원을 떠나서 호주 음식 업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큰 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 측면에서 '스시 베이'의 메뉴 개발은 자사의 발전과 더불어 호주 스시 업계에 크게 공헌하는 일이기도 했다.

더욱이 서양 문화권의 호주에서 동양 음식으로 호응을 얻으려면 호주인 특유의 미각과 전통적 취향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할 터인데, 스시 업계의 현실은 과연 어떤지 궁금해졌다. 보다 상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스시 베이' 본사를 방문해서 신이정(49) 사장을 인터뷰 했다. 다음은 신 사장과의 일문일답.

컴퓨터 프로그램 직접 개발해서 활용

- 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를 공부하던 중에 음식 업계로 진출했다던데.
"호주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대로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것(such is life)' 아닌가. 그러나 음식 비즈니스를 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아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어쩌면 그게 오늘의 '스시 베이'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 어떤 측면에서 그런가?
"비행기를 타고가야 하는 골드코스트를 포함해서 '스시 베이' 지점이 11곳이나 된다. 새로 개설될 예정인 지점들도 대부분 지방에 소재한다. 첨단 전산망을 활용하지 않으면 본사 직영 시스템을 운용하기 어렵다."

- 컴퓨터 프로그램은 직접 개발했나?
"지금은 구식이 됐지만 창업 초기에 밤샘을 하면서 개발했다. 데이터를 직접 수작업으로 입력하면서 갈등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의 전공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처럼 큰 장점이 어디 있겠나."

- 직원들의 반응은 어땠나? 혹시 귀찮게 생각하지 않던가?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했다. 식당 경영에 첨단관리시스템을 활용하는 걸 보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본사 직영의 중앙관리시스템에 업종의 구분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컨베이어에 실려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시 접시들. ⓒ 윤여문


9살 딸이 지은 '스시 베이' 브랜드

- '스시 베이'라는 브랜드 느낌이 아주 좋다. 특히 호주에서 베이(만, bay)이라는 단어가 주는 고급스런 이미지도 그렇고. 혹시 직접 지었나?
"5년 동안 '스시 트레인'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다가, 자체 브랜드를 가진 회사로 창업하면서 가족회의를 했다. 남편과 아이들(1남 1녀)이 몇 개씩의 아이디어를 냈다. 그 중에서 당시 아홉 살이었던 딸이 지은 '스시 베이'로 결정했다. 딸아이는 그걸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언제부터 중앙관리시스템을 채택했나?
"6개 지점까지 나 혼자서 관리하다시피 했다.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본사를 개설해서 중앙관리시스템의 골격을 짰다. 관리부서와 개발 팀(Project Team)으로 나뉘는데 개발 팀에 무게의 중심이 실렸다. 그때부터 밤샘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메뉴 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한 '스시 베이'

- '스시 베이'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고객들의 리뷰가 수백 개 올라있었다. 맛, 가격, 서비스 등의 평점도 있는데 특히 메뉴에 대한 좋은 평이 많았다.
"메뉴 개발에 사운을 걸고 심혈을 기울인 덕분으로 생각한다. 본사 메뉴 개발 팀은 마치 정보 전쟁을 수행하듯이 벤치마킹을 하고 고객의 반응을 살핀다. 회사에서도 개발 비용을 과감하게 투자한다."

- 타 업체와 경쟁하다보면 아무래도 비밀유지에 신경을 많이 쓸 것 같은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일단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저작권에 해당되는 소스 개발 부분은 비공개 사항이다. 그래서 일부 아이템은 메뉴 북과 웹사이트에도 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200여 명의 직원들이 각 지점에서 표준화된 레시피에 따라서 조리하기 때문에 공개가 불가피하다."

- 혹시 이런 기회에 특별한 소스 하나를 공개할 수 있나?
"잘 못하면 개발 팀장한데 경고 먹는다.(웃음) 유럽 출신 고객들은 아무래도 버터, 치즈 등의 소스를 선호한다. 그러나 매콤한 맛을 즐기는 중국계 고객들을 위해서 한국에서 수입한 고추장 소스를 개발했다. 그릴 된 새우에 버무려진 고추장 소스의 달콤 매콤한 맛은 일품이다."

- 같은 맥락으로 유럽계 고객들이 선호하는 스시가 따로 있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한국 스시, 일본 스시, 호주 스시가 다른 이유가 거기에 있다. 특히 스시가 눈으로도 즐기는 음식이라는 관점에서 스시 윗부분에 올리는 '토핑'으로 호주인들에게 익숙한 재료를 활용하는 것도 메뉴 개발 팀의 주요관심사다.

'스시 베이'가 개발한 퓨전 스시 ⓒ 윤여문


'맥도널드' 긴장하게 만든 '스시 베이'

호주는 2008년 미국을 제치고 비만 세계 1위의 불명예를 얻었다. 체내지방을 늘리는 육식 위주의 식사습관 때문이다. 그 결과 맥도널드 성장률 1위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비만으로 인한 질병 발생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정부 보건당국에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운동을 장려하고, 지나친 육식과 청량음료 소비의 자제를 권유한 것. 초중등학교 매장에서는 햄버거, 피자 등과 초콜릿, 청량음료를 팔지 못하도록 법적인 규제에 나섰다.

그러면서 '웰빙 푸드' 선풍이 불었다. 그 중의 하나로 불포화지방 음식으로 스시가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스시 베이'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시점이었다. 그러자 쇼핑센터에 먼저 입주하고 있던 맥도널드점이 '스시 베이'가 들어오는 걸 경계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스시 베이'는 매장 근처의 지역신문이나 극장 광고를 활용해서 회사 광고 못지않게 스시가 '웰빙 푸드'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웹사이트 식당 리뷰에 올라온 고객들의 댓글에 "원래 날생선을 먹지 않았는데 '스시 베이' 광고를 보고 먹기 시작했다"라는 내용도 있다.

경제 불황의 틈새 적극 공략해서 성공

'스시 베이' 본사에서 제공한 분석 자료를 읽어보니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2006-2009년 스시 베이 영업실적' 막대그래프에 2008-2009년 기간 부분이 쑥 올라가 있는 것.

2008년 9월에 발생한 국제금융위기에 따른 호주의 불경기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각종 경제지표는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렸고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보다 못한 연방정부는 3차례의 경기부양책 현금보너스를 지급했고 소규모 상인들에게 세금납부 유예의 혜택을 주었다.

오죽하면 케빈 러드 총리가 수영복 차림으로 등장해서 국내여행을 권유하고, 현금보너스를 지급하면서 새 TV를 사라고 권유했을까. 그런데 바로 그 기간에 '스시 베이'가 급성장을 이루었으니 조금 의아하지 않은가.

이 대목에서 신이정 사장은 "한순간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나 곧 기회라는 영감이 떠올랐다. 그 영감에 따라 주머니가 얄팍해진 중산층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적극 마케팅을 펼친 것이 불경기 기간에 급성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기자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한국 고추장을 소스로 활용한 '새우 스시' ⓒ 윤여문


'고가 음식 + 패스트푸드' 전략으로

불경기의 영향으로 고급음식점 이용의 횟수를 줄여야하는 사람들이 고급음식점 대신 스시 식당을 찾도록 틈새공략에 나선 것. 사실 스시는 고가 음식에 해당되기 때문에 웬만한 직장인들도 큰맘 먹고 찾아간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스시의 대중화 작전에 나선 것이다.

1월 13일 점심시간에 '스시 베이' 파라마타 지점에서 만난 은행 간부 게리 홀리필드(37)는 "스시와 녹차음료수로 멋진 점심을 즐겼다. 34호주달러(약 3만4000원)가 약간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이제는 중독이 되어서 1주일에 두 번 이상 스시를 먹는다"고 말했다. 참고로 '스시 베이' 본사 자료에 의하면 1인 평균 소비액은 18호주달러(약 1만8000원)다.

그는 이어서 "2008년 6월에 '스시 베이 파라마타'가 문을 열었는데, 그 당시 처음으로 스시를 맛보았다"면서 "유리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며칠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는데, 내 일생에서 아주 잘한 결정 중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홀리필드는 "호주 직장인들이 패스트푸드를 주로 이용하는 것은 시간을 절약하자는 이유가 큰데 스시는 고급 음식이면서 패스트푸드의 장점을 겸하고 있어서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라는 견해를 밝히면서 "호주에서의 스시의 전망은 아주 밝다"고 말했다.

2009년 직원 '송년의 밤'에서 수상자와 함께한 '스시 베이' 신이정 사장 ⓒ 스시베이

새해 분위기가 여전한 지난 1월 15일, 신이정 사장은 시드니 파라마타 강변에 '소렌조(Sorenzo)'라는 고급 식당을 개업했다.
'스시 베이'를 경영하면서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식과 일식을 프랑스식과 이탈리아식 메뉴로 새롭게 개발하여 고급 식당 분야에 도전한 것. 이탈리아 언어처럼 들리는 '소렌조'는 신이정 사장 가족 4명의 이름을 합성해서 만들었다. 

'스시 베이' 본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적 덕목으로 삼는 "한국인 특유의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가 '소렌조' 개업의 동기가 됐다.

특히 한식 메뉴를 적극 개발하여 한국 음식의 세계화에 기여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이윽고 먼 바다에 이르는 창밖의 파라마타 강처럼.
#한국식당 #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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