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앤디 워홀이 될 수 있다

앤디 워홀 전시 리뷰

등록 2010.01.26 10:54수정 2010.01.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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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o


누구나 예술품을 만들고 예술가가 될 수 있나니. 돈이나 작업실이 없다고 개탄하지 말라. 방법은 아주 아주 간단할지어다. 동네 슈퍼에서 가장 싼 통조림 캔을 한 묶음 사라. 이왕이면 참치 캔으로. 그리고 캔 겉면마다 다른 색을 입히고 대문 앞에 일렬로 늘어뜨리고 간판 하나를 붙인다. 일명 '참치 속살의 변증법적 오르가슴(orgasme)'. 그럴 듯한가. 예술이 별건가. 하지만 어설프게 시도하지 말지어다. 이미 이 방면의 선구자 앤디 워홀과 후학들이 숱하게 복제했으니.

흔히 앤디 워홀의 업적을 팝 아트의 창조, 아트의 대중화 기여에 있다고 한다. 예술은 고매하다는 인식과 관습을 깨고 대량생산된 가공품에 살짝 화장을 얹어 당당히 예술의 반열에 올린 도발성은 사뭇 유쾌하다. 덕분에 캠벨 수프(Campbell Soup) 같은 싸구려 상품도 창의적인 튜닝만 거치면 얼마든지 천혜의 미적 도구가 된다. 범상한 소재를 활용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건 실크 스크린을 이용한 기술이나 팝한 형식이 아닌 '개안(開眼)'이라는 의미이다.


20세기 예술사를 평가할 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은 20세기 전반 피카소, 20세기 후반 워홀로 꼽는다. 두 사람을 비교하면 워홀의 작품은 피카소에 비해 현저히 만만해(?) 보인다. 캔버스에 색상만 변화시킨 아크릴과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한 마이클 잭슨, 마오(Mao) 초상화를 보면 은연중 '나도 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법하기에. 특히 <회상(시대정신 연작)>은 동일한 패턴의 주기를 이어 붙여 11m 길이로 '생산한', 지극히 게으르고 지루한 작품이다.

반복과 복제는 강조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자칫 무개성, 무성의라는 양날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워홀이 이 단순한 표현방식에 필사적이리만치 매달린 건 대량생산 산업체제의 반영일까. 물론 그렇다. 이미 발터 벤야민이 <복제기술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천명했듯이 원본이 복제품과 동급이 되는 시대에 복제됐다고 그 가치가 저하되는 건 아니니까. 벤야민도 원본만이 가지는 아우라의 붕괴가 일어나는 시대상을 음울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예술의 영역이 확대되고 다양해지는 길조로 본 것도 고압적인 위계와 구조가 바뀌는 전환기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격찬했던 복제기술의 쌍두마차 사진과 라디오가 나치의 대중선동 수단으로 전락한 것을 보고 절망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였지만.
  
워홀의 메시지를 파고 들어가면 예술과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하나로 일통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나는 그것이 워홀을 이해하는 키워드이며 그 핵심은 포디즘(Fordism)이 탄생시킨 '표준화'된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로 본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것은 표준화가 선행했기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상품이나 구조, 체제를 특정한 표준화로 수렴시키는 힘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건전지는 국가를 막론하고 동일한 규격과 크기로 가공되며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상품들이 이런 표준화를 통해 다량으로 출하되기에 어디서나 불편 없이 소비할 수 있다. 나라마다 표준이 같은 제품이 많고 동일한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타지인도 그만큼 편리해진다. 그런데 현세기는 언어 문화 입맛 선남선녀를 보는 미적 감각 같은, 예전에는 표준화의 범위에 속하지 않은(않아야 될) 성역(?)들까지 넘보고 있다.

정말 하나의 표준으로 통일된다면? 대량생산된 상품처럼 인간도 균일화된다면 인간 자체도 예술의 대상에서 예술의 도구로 전락하는 미래가 소설만은 아닐듯하다. 표준화는 필연적으로 규제의 부재를 가져온다. 스크린 쿼터처럼 자기 문화를 고수하려고 표준화에 반발하는 시도는 불가불 규제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에. 그래서 표준화가 완수된 곳에는 규제 대신 자본의 방종이 대신한다. MS가 윈도로 표준화를 추진하면서 벌였던 횡포가 생생하다.

<회상(시대정신 연작)>처럼 하품 나도록 단조로운 작품들에서 섬뜩한 일갈이 울리는 것도 그 탓이려나. 시대정신도 표준화시킬 수 있고 복제되어 반복될 거라는. 진보 보수, 좌파든 우파든 권력을 차지하려고 대중에게 구애할 때 시대정신도 양념삼아 잠깐 소비할 수 있다는. 표준화를 예술가나 학자들의 담론으로 치부하기엔 지금의 시대가 심히 불온하다. 거시적인 시대흐름까지 신경 쓰지 못해도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 한국 사회의 표준화 광풍은 꿰뚫어 봐야 하지 않을까. 기업에 충성하는 자기 계발형 인간, 몸짱, 얼짱......


워홀의 작품은 난해하면서도 단순하다. 음울하고 음산하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문제의식은 곱씹어 반복하고 복제할만하다. 내 것으로 소비할 때까지.

Skull


Self- Portrait


Michael Jackson


Electric Chair


앤디 워홀의 Dollar Sign

덧붙이는 글 | 1월 23일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관람하고 쓴 내용입니다. 사진은 기획사에서 받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1월 23일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관람하고 쓴 내용입니다. 사진은 기획사에서 받았습니다.
#전시 #앤디 워홀 #팝아트 #예술 #표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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