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아무 때나 피어나지 않는다

[포토에세이] 사계절, 제 때에만 피어나는 꽃, 그리하여 희망!

등록 2010.01.29 16:03수정 2010.01.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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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한 겨울 추위에도 피어나는 꽃, 가히 봄의 전령이며 겨울꽃이라 할만한다. ⓒ 김민수


나는 종종 사람을 꽃에 비유한다. 꽃처럼 사람들도 피어나는 시기가 다 따로 있다고 믿는다. 어떤 이는 초봄의 개나리처럼 십대에, 어떤 이는 한여름 해바라기처럼 이십대에, 어떤 이는 가을의 국화처럼 사오십대에, 또 어떤 이는 한 겨울 매화처럼 육십대 이후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거라고. 계절은 다르지만 꽃마다 각각의 한창 때가 반듯이 오듯이, 사람도 활짝 피어나는 때가 반드시 온다.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흔들리며 크는 우리들' 중에서


'바람의 딸'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비야씨의 <그건, 사랑이었네>는 요즘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책을 다 읽고 책을 추천해 준 큰 딸에게 소감을 말하자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에도 한비야가 출연했었다며 같이 보자고 한다.

이전에는 꿈꿀 수 없는 세상이다. 이미 지나간 프로그램도 언제든지 원하면 불러다 볼 수 있다니…. 허긴, 요즘에는 나 혼자서는 텔레비전을 켜고 끄지도 못한다. 단순히 온(ON), 오프(OFF) 전원만 누른다고 텔레비전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작해야 9시 뉴스정도를 보는 나로서는 기계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튼 방송까지 본 후에 나는 한 마디로 좋은 의미의 '한비야 쓰나미'를 겪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위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그 인용한 구절을 인용하여 나는 이렇게 썼다.

그렇지, 꽃마다 피는 시기가 따로 있지.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따로 있지. 봄에 여름 꽃 피어나지 않는다고, 가을에 겨울 꽃 피지 않는다고, 겨울에 봄 꽃 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면 그건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 아니지. 꽃은 제 철에 피어야 맛, 간혹 바보 꽃이 피긴 하지만 바보 꽃 치고 제대로 열매 맺는 꽃 없지. 꽃은 제철에 피어야 가장 그 꽃답게 피우지. 그러니 지금 꽃 피지 않았다고 슬퍼하지 마라. 지금 피면 안 되기 때문에, 아직은 너의 때가 아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지금 꽃 피우지 못했다고, 열매 맺지 못했다고 슬퍼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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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봄꽃 개나리, 개나리가 피어나면 완연한 봄이다. 간혹 바보꽃도 피우지만 한창 때는 따스한 봄날이다. ⓒ 김민수


나는 꽃 마다 피어나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안 것이었다. 아마, 꽃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그런 류의 말도 수없이 많이 했을 터인데, 이렇게 내게 감동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면 이제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이리라.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이 따로 있다는 것, 그 엄연한 사실 앞에서 나는 오늘 한국의 교육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피어나기도 전에 획일적인 평가로 성적순이 매겨지고, 피어날 준비도 하기 전에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아이들이 있다. 성적순으로 아이들의 미래가 저당 잡히고, 상위권 성적에 들지 않는 아이들은 모두가 들러리가 되는 세상이다.

다양한 아이들의 재능을 담보하지 못하고, 오로지 입시를 위한 획일적인 인간으로만 양성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교육이다. '대기만성'이라는 말도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도 이미 옛말이 되어버린 지금, 늦게 피는 꽃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아이들의 장점이 시험성적 단 한가지로 평가되는 현실, 학부모들도 그것에 매몰되어 오로지 명문대 합격만이 자녀가 이 사회에서 실패자가 될 확률을 줄여줄 것처럼 맹신한다. 결국, 소수의 학생과 학부모를 제외한 대다수는 실패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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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여름꽃 해바라기, 그들이 해를 바라보는 만큼 씨앗은 영글어간다. ⓒ 김민수


27일, 애플의 최고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태블릿 PC인 아이패드 출시 설명회에 직접 나섰다. 그는 와이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었으며 면도도 하지 않은 꺼칠한 얼굴이었다. 내용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만일 우리나라에서 한 기업의 CEO가 신제품 출시설명회에 이런 복장으로 나왔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획일적인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스티브 잡스와 같은 자유분방한 의상이 가능하기나 할까?
물론, 장단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업무와 상관없이 샐러리맨이라고 하면 와이셔츠에 넥타이 정장을 떠올리는 우리 사회의 구조에서 스티브 잡스와 같은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나와 사업설명회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CEO는 향후 20년 내에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사계절 피어나는 꽃 중에 어느 계절에 피는 꽃이 향기가 가장 좋은지 아시는지? 겨울에 피어나는 꽃이다. 왜냐하면 꽃을 피우려면 다른 계절에 비해 더 많은 악조건을 이기고 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엔 곤충들도 많지 않아 수정을 하기 위한 매개체를 유혹하려면 향기가 진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같은 꽃이라도 영양분이 풍부한 곳에 피어난 꽃과 절벽 바위틈에 피어있는 꽃이 있다면 어떤 꽃이 향기가 더 좋을까? 맞다. 절벽에 피어난 꽃이 향기뿐 아니라 색감도 더 좋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리고 한 가지 꽃만 넘쳐나는 화원을 상상해 보라. 맨 처음에는 혹할지 몰라도 그 얼마나 밋밋할 것인가? 화원이란 다양한 꽃들이 계절을 따라 피고 질 때 제대로 된 아름다움을 간직한 화원이 될 것이다. 다양성 속의 일치, 그러나 우리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로지 하나가 될 것만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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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 국화과의 꽃들은 가을에 피어난다. ⓒ 김민수


비익조라는 전설의 새, 둘이 만나야 비로소 하늘을 날아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오로지 한 쪽만 허용을 한다. 심지어는 우측통행을 하지 않으면 미개인인 것처럼 만드는 사회다. 진보는 절대로 허용할 수 없으며, 진보는 곧 좌파요, 좌파는 곧 공산주의고 공산주의는 곧 우리의 적이다. 뭐 이런 식의 비약적인 논리가 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상식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논리가 통용된다.

꽃은 아무 때나 피어나지 않는다. 꽃이 피어날 때가 되면 누구도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닫을 수 없다. 꽃샘추위가 피어나는 꽃 몇 송이 얼려 죽였다고 봄꽃이 피어나지 않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봄이 오지 않은 적이 있는가!

이 겨울 봄을 기다리며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진통을 마음 아픈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도 희망, 꽃은 아무 때나 피어나지 않지만, 반드시 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야생화 #입시교육 #스티브 잡스 #한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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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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