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 만난 한국식당... 여기 미국 맞지?

[세계의 한국식당 ④-미국] 저 김치는 누가 사다 먹을까

등록 2010.02.01 17:06수정 2010.02.1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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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외국 거리를 걷다가 한국식당을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간만에 입맛에 맞는 우리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우리 음식문화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요즘 '음식 한류'가 불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한국식당은 세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들이 새해를 맞아 전세계의 한국식당들을 집중 탐구해봤습니다. 일반 시민기자 여러분들도 자신들이 겪은 한국식당의 추억이나 제안이 담긴 글을 올려주시면 적극 배치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저녁 무렵 식당을 찾다가 발견한 <한국식당>의 모습. 주변의 어둠 때문인지 <한국식당> 간판 네온사인이 더욱 밝아보였다. 왼쪽 모서리 작은 사진은 정면에서 간판과 호돌이 마크. ⓒ 이유경


미 중부에 역사적인 한파가 몰아치던 바로 그날, 지난 6일은 하필 우리집 이삿날이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바깥 온도가 영하 25~30도에 달하는 그때, I-80(80번 인터스테이트 프리웨이)에는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 트럭이나 간간히 지나다닐 뿐, 어린 아이 둘을 실고 여행하는 차는 우리밖에 없는 듯 싶었다.

동북부에서 몰아쳐내려오는 폭풍우에 갇히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서쪽으로 달려야했던 우리 가족은, 네브라스카를 빠져나와 와이오밍에 접어들었을 저녁 무렵 따뜻한 국물과 밥이 간절했다.

와이오밍 주의 샤이엔(Cheyenne). 말이 주도(州都)지, 인구 5만 명 정도의 작은 읍내같은 곳이다. 알고 보니, 샤이엔은 와이오밍에서 가장 큰 도시이지만, 주별로 '제일 큰' 도시를 비교하면 버몬트 주의 버링턴 다음으로 제일 작은 도시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 와이오밍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참고로 '브로크백 마운틴'은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산이고, 영화의 실제 촬영지 또한 미국의 와이오밍이 아닌 캐나다의 알버타지만, 인적없이 황량한 덤풀로 끝없이 이어지는 돌산의 분위기만은 진정 와이오밍답다.)

그런 곳에서 따뜻한 한국식 밥과 국물을 찾다니…. 미국 생활 10년째에, 한인들로 바글거리는 대도시부터 아시안 자체가 뜸한 작은 도시까지 두루 다녀본 내가 그런 야무진 꿈을 꿨던 것은 그만큼 그 날의 여정이 워낙 살벌했기 때문이다.

그저 베트남 식당이나 하다 못해 중국 식당이라도 있다면 뜨거운 포 국수나 덤플링 수프(만두국)라도 먹지 않을까 싶어 간절히 아시안 식당을 찾았는데, 세상에나 '한국식당'이 있었다.

이런 시골동네에 한국식당이 있을 줄이야

이 식당 손님의 90%이상은 미국인이다. ⓒ 이유경


식당으로 다가갈 수록 더욱 '가관'이다. 간판에는 '한국식당' 글씨가 반짝이고, 그 옆에는 호돌이와 둥근 보름달도 떠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 뭐야…."


기자의 경험상 한인 인구만으로도 경제활동이 가능할 만큼 한인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한국 음식만 가지고도 장사가 된다. 그러나 한인 인구가 적은 곳에서 한인이 스시같은 고가 메뉴가 아닌 일반 대중 식당을 연다면 거의 대부분은 미국인들 입맛에 익숙한 아시안 음식들로 영업을 한다. 가령 달짝지근한 데리야키나 달콤짭잘한 중국식 볶음밥과 볶음면, 또는 튀김 만두나 튀긴 닭볶음 등을 팔기 마련이다.

그리고 식당 간판도 '도쿄가든'이나 '판다 익스프레스'처럼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달지, 이 식당처럼 '한국식당'으로, 게다가 한글로 다는 법은 거의 없다.

이것은 한국의 정체성이니 민족적 자부심 같은 문제가 아니라, 미국에서 식당 영업으로 살아남기 위해 한인들이 선택하는 주요 전략의 하나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식당 음식이나 간판, 식당 분위기 같은 것으로 주인이 한인인지 아닌지를 나타낼 필요가 없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아시안 풍의 음식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주문한 음식들. 푸짐한 양은 물론 그 내용물이 매우 알차고 신선했다. ⓒ 이유경


그런데, <한국식당>이라는 간판으로, 미국인조차도 인적이 드문 이 와이오밍에서 갓과 키와 긴 담뱃대, 신랑-신부 전통인형과 한국 지폐 등으로 식당 안을 온통 정성스럽게 꾸민 이 식당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게다가 메뉴판에도 온통 비빔밥, 제육볶음, 떡볶이, 육개장, 된장찌개, 김치찌개, 만두국 같은 너무나 한국적인 음식들 뿐이라니. 냉장고에는 식당에서 직접 만든 병김치도 진열되어 있었다. 한인 인구도 거의 없을 텐데, 도대체 저 김치는 누가 사다 먹을까? 이 식당, 정말 영업은 되는 걸까? 

LA나 뉴욕도 아닌 와이오밍에서, '진짜' 한국음식을 오랜만에 배불리 먹은 뒤, 나는 식당을 운영하는 김순기씨를 인터뷰했다.

"미국인들도 한번 맛들이면 한국음식만 찾아요"

이 식당 냉장고에는 직접 담근 김치가 진열되어있다. ⓒ 이유경

1987년 미국으로 이민 온 그녀는 원래 대전시 대흥3동에서 <막내집>이라는 식당을 운영했다고 한다. 당시 남편과 사별하고 남매를 키우기 위해 식당을 하다 미군이었던 빌 베넷씨를 만나 미국 이민을 왔다. <한국식당>의 내부를 지금처럼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남편의 도움이 제일 컸다.
미국에서의 첫 정착지는 샤이엔이었지만 그 척박한 환경과 사나운 바람 때문에 옆 동네인 콜로라도의 덴버로 이사를 갔다. 덴버에서의 10년 동안 남매를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 손주들을 돌보며 살았지만,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7번이나 당하는 시련도 겪어야 했다.

99년 남편이 공군 하사로 전역하고 이듬해 다시 샤이엔으로 돌아왔을 때, 김순기씨는 처음 만난 한국 여성으로부터 자신이 하던 한국 음식점을 대신 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미국에서 기독교 신자가 됐던 그녀는 당시의 힘들고 지친 삶에서 그 여인의 제안이 마치 하나님이 준 기회와도 같았다고 한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오는 사람을 전도도 하고, 배고픈 사람한테는 밥도 주고, 또 나도 먹고 살고... 사는 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1년이든 2년이든 한 번 해보자고 결심했었요."

그렇게 시작한 <한국식당>을 벌써 10년 째 운영하고 있고, 이후 단 한 번의 교통사고도 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샤이엔의 한인 교회에서 장로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녀에게 가장 궁금했던 질문, 왜 한국 음식만을 파는지, 다른 한인 식당에서 하는 것처럼 데리야키같은 음식을 메뉴에 추가할 생각은 없는지 물어봤다.

"대전에서 막내집 할 때도 똑같이 이런 메뉴였어요. 내가 배운게 한국 음식이고. 주변에서 사람들이 중국식 짬뽕도 만들어서 팔아야 돈이 될 거라고 하는데, 난 남의 것은 하기 싫고 우리 한국 사람들이 먹는 한국 음식을 자랑하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전도도 하고요."

그렇게 한국 음식만 하는데, 손님의 90% 이상이 미국인이란다. 과연 장사가 잘 되는지 물어봤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무엇을 먹느냐며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시켜먹고, 한 번 맛을 들이면 계속 와서 그것만 찾아요. 한국 사람들 먹는 것처럼 더 맵게 해달라고 하는 미국인들도 많고요. 올림픽이 끝난 이후 이곳 미국 교재에 서울 올림픽이 나오나 봐요.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1년에 한 번씩 샤이엔 프론티어 데이즈 로데오(Cheyenne Frontier Days Rodeo)라는 것을 하는데, 그때는 식당이 더 바빠지죠." 
   
<한국식당> 간판에 호돌이가 왜 그리도 돋보이는지 이제 알았다.

"돈은 못 주지만 밥은 줄 수 있지요"

주인 김순기씨(오른쪽)와 그녀와 5년째 함께 일하는 김정애씨. 식당 주방에는 한국 TV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위성 TV 가 설치돼 있다. ⓒ 이유경


하루에 식당을 찾는 손님은 줄잡아 50~60여 명 선이다. 김순기씨는 함께 일하는 김정애씨와 둘이서 일할 수 있는 지금의 규모에 아주 만족해한다. 

부자가 아니라 돈으로 남을 도울 수는 없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밥은 줄 수 있다는 김순기씨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갚으며 사는 것이 꿈이다.

3~4년 전 어느 가을 무렵, 행색이 말이 아닌 한 한국인 중년 여성이 보따리를 들고 <한국식당>을 찾아오곤 했다. 건강이 안좋은지 얼굴에 뭔가가 아주 많이 났던 이 여성은 미국인 남편으로부터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타향에서 한국 사람과 음식이 그리웠던지 그녀는 돈도 없이 식당을 찾아왔었고, 그때마다 김순기씨는, "내가 돈이 많지 않아서 돈은 줄 수 없지만 밥은 줄 수 있다"며 밥을 차려주곤 했다. 또 길거리를 배회하는 것이 위험해서 필요할 때는 차비도 건네줬다. 

어느 날,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어디가서 착실히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찾아주겠다. 아니면 (그녀를) 대신해서 남편을 신고해 줄 수도 있다"는 김순기씨의 말에 그 여성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또 언젠가 월급을 받으면 갚겠으니 밥을 줄 수 없겠냐며 한 미국인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4명의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볶음밥을 만들어주었다. 밥값을 갚겠다고 했던 그 미국인이 다시 오지는 않았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면서 자신도 먹고 살 수 있는 지금의 일이 그녀는 매우 은혜롭다고 말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음식을 통해 갚는다는 그녀. 미국 시골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그녀가 만든 비빔밥과 된장찌개, 김치찌개에 양념된 그 따뜻한 마음이 아닌가 싶다.

#한국식당 #와이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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