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와 부엌이 내 안에 들어왔다

전업주부에 가장까지 되고 보니

등록 2010.01.29 19:17수정 2010.01.29 19:1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페라 <나비부인>과 영화 <M 버터플라이>는 같으면서 다르다. 말장난 같지만 다르면서 같다고 할 수도 있다. 여자가, 여성이, 이 세계 내에서 차지하는 그녀의 비율이, 그 무게가 전혀 다르면서도 같고, 같다고 생각하고 보면 또 전혀 다르다. 이 모호한 경계를 이천 자 이내로 명쾌하게 논술하라.

 

내가 만일 입학사정관으로 임명이 된다면 이런 문제를 출제하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내용의 답안지를 합격으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 그보다도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그렇다. 내가 먼저 써봐야 할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한가하기 짝이없는 이런 생각으로 오페라 <나비부인>과 영화 <M 버터플라이>를 번갈아가며 보고 있던 중이었다. 판소리에 익숙한 어머니 또한 치매라는 녀석에게 중요한 많은 것을 빼앗겨 버렸다고는 해도 <어떤 개인 날> 같은 아리아를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표정과 음색만으로도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 있고 보면 모자가 함께 보기에 썩 적절한 소재이기도 했다.

 

남자에게 버림받는 여자가 자살을 한다. 그것도 칼로, 여자의 자살은 대들보에 긴 머플러 같은 것을 걸어놓고 목을 거는 것이 그나마 '우아하고' 뭔가 '여자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데 이 여자, 나비부인은 '대담하게도' 칼로 할복을 하는 남자들의 방식을 채택한다.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다 문득 떠오른 식칼

 

a

고무장갑을 스스럼없이 낄 날이 있을 런지. ⓒ 김수복

고무장갑을 스스럼없이 낄 날이 있을 런지. ⓒ 김수복

 

하늘에서 흙비가 내리듯이, 핏물이 쏟아지듯이 그녀의 찢어지는 목소리는 높아가고, 병풍 뒤에서 칼이 번뜩이는데, 그 순간 내 눈 앞에 언뜻 식칼이 보인다. 언뜻 보인 그것은 이내 구체적으로 보이고, 뒤이어 칼도마가 나타난다. 냉장고가 보이고, 어지럽게 늘어놓은 반찬그릇들이 춤을 추며 나온다.

 

이런, 이런 또 시작이구나. 내가 뭘 또 까먹고 있었던 것이지? 머릿속으로 싱크대와 냉장고와 식탁 위의 풍경이 휙휙 지나가면서 몸이 벌떡 일으켜지는 순간 게으르자, 게을러야 한다, 또 다른 나는 그렇게 조용히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아무리 '그것'을 모른다고 외면해도, '그것'은 집요하게 나를 추궁하며 덤벼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비디오를 정지 상태로 해놓고 일어서야만 한다.

 

허둥지둥 부엌으로 나와서 두리번거리는데, 그러면 그렇지, 먹다 남은 김이 공기에 노출된 채로 식탁에 놓여 있다. 만져 보니 벌써 눅눅해져 버렸고, 이제야 비닐이나 통에 넣어둔다 해도 그것이 보송보송해질 까닭은 이미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눅눅함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게끔,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니까 먹어야 한다. 먹어 버려야 한다.

 

그렇게 남은 김을 죄다 입에 쑤셔 넣고 다시 방으로 가서 정지 상태의 비디오를 재생으로 돌려 <나비부인>을 보고자 하는데, 이런, 이게 뭐냐, 다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여전히 화면 속에서 자살을 준비하고 있지만, 자살을 준비하는 그녀가 아까의 그녀인 것은 틀림없지만, '무식하게' 입안에 김을 잔뜩 넣고 우물거리는 식으로 이미 '오염'돼 버린 나를 그녀는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다른 얼굴로, 다른 음성으로 다른 절규를 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다.

 

전업주부 생활 1년만에 5kg 더해진 체중

 

그 앞에서 나는 왜 김을 그렇게 놔두었던 것일까. 그때 무슨 일이 있어서, 무슨 다른 일을 하다가 깜빡 잊어먹고 방치했던 것이지? 이거 혹시 내게도 주부건망증 같은 것이 생긴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파편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나비부인>을 보는 듯이 안 보는 듯이 보고 있었던가 어쨌던가, 어느새 저녁이다. 저녁을 지어야 한다. 그나저나 저녁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를 어떻게 썰어서 어떤 국을 끓여야 하나.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보니 내가 참 많이 착실해졌다. 전업주부가 되면 다들 이렇게 착실해지는가 싶기도 하다.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살림이야 오래 전부터 해 와서 익숙하다고는 해도 예전에는 전혀 이렇지가 않았다. 워낙 밖으로 쏘다니는 시간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밥은 사나흘에 한 번이나 할까 싶을 정도였고, 그래서 가스 한 통이 일 년을 써도 남아돌았다. 집에 있다 해도 어떤 날은 영화 같은 것에 미쳐서 배가 고픈 줄을 몰랐고, 영 배가 고프면 라면이나 생쌀을 이빨이 아파서 더 이상은 못 먹을 때까지 씹어 먹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주 반대가 되었다. 책갈피를 넘기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냉장고 안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밤에 잠을 자다가도 부엌의 어떤 장면이 일목요연하게 마치 한 장의 세밀화를 보듯이 떠오르는데, 그때는 반드시 일어서야만 한다. 일어서지 않으면 금방 무엇인가 썩거나 불이라도 날 듯이 불안하다. 그래서 허둥지둥 달려가 보면 틀림없이 처리했어야 할 일이 방치된 채로 남아 있다. 뚜껑을 덮지 않은 반찬통이 눈에 보인다던가, 냉장고 안에서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쉬어버리는 콩나물 같은 것이 구조신호라도 보내듯이 삐적삐적 말라가는 식이다.

 

이렇게 살아온 날들이 얼마였던가. 일 년을 얼마 안 남긴 이즈음 나는 체중이 아주 많이 불어 버렸다. 스무 살 이후로 62에서 65 사이를 시소게임 하듯 왔다갔다만 했을 뿐 그 이상 올라가본 적이 없는 체중이 지금은 70을 넘었다. 멀쩡한 음식물이 상해서 쓰레기가 되는 '참사'는 막아야 한다고 제법 머리를 써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남은 음식을 이런 이유로 먹어 치우고 저런 핑계로 또 먹어 치우다 보니 그것들이 죄다 피가 되고 살이 되어버렸다.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가려워지는 손

 

a

치워도, 치워도 노상 어지러운 부엌. ⓒ 김수복

치워도, 치워도 노상 어지러운 부엌. ⓒ 김수복

 

체중만 는 것이 아니다. 손에도 뭔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근질근질하고, 자꾸 가렵다.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아예 무슨 철사 같은 것으로 긁어대는 듯이 뻗치고 아프다. 살거죽이 마치 햇볕에 바싹바싹 몸을 뒤틀어대며 말라가는 무말랭이가 되어 버렸다는 느낌이다. 손등에 뭘 좀 발라야 하나 어쩌나 고민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또 음식에 그 냄새가 배어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슬쩍 일어난다.

 

그래서 고무장갑을 좀 껴 보자,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하자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보았지만, 그런데 이게 또 쉽지가 않다. 손이 마구 거칠어진다 싶을 때는 고무장갑, 고무장갑, 하고 무슨 법조문이라도 외우듯이 노래를 부르지만, 막상 손에 물을 묻혀야 할 때가 되면 고무장갑이고 뭐고 다 잊어버린 채 물 속으로 손을 넣게 되고, 일이 다 끝나면 그제야 아 이런, 고무장갑을 또 잊어버렸네, 하는 식이다.

 

야아 이것 참 어렵구나. 전업주부가 된다는 거, 예전에는 그저 사소한 일상으로나 치부하고 말았던 가사노동에 이런 면이 있었던가, 하고 문득문득 감탄을 하는 나,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다. 전업주부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씩이나 하게 된 나 자신의 어떤 부분이, 사소하다고 무시해 왔던 일에서 커다란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된 나 자신의 그 어떤 부분이 새로운 발견이다.

 

어머니가 평소와는 달리 밥맛이 없다는 구실로 밥이라도 남길라치면 또 어떤가. 뭐가 잘못 된 것일까. 매울까, 짤까, 싱거울까, 순식간에 몇 가지 의문을 떠올리며 한편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고 도리질을 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왜 남기냐고 물어보고, 남긴 그것을 떠서 먹어보고, 납득할 만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납득을 시켜달라는 듯 "왜 숟가락을 자꾸 놓아요?" 어쩌고 부지불식간에 짜증 아닌 짜증을 내고 섭섭해 하며 입술을 뾰로퉁하게 부풀리는 나, 이게 어찌 새롭지 않은가 말이다.

 

어디에 무슨 한나절짜리 품팔이라도 있어서 나가는 날은 또 어떤가. 해가 아직 한 발이나 남아 있는데도 사용자의 눈치를 살피며 얼른 가야 하는데 어쩌나, 어쩌나 이런 '싸가지없는' 걱정부터 하게 되고, 내 배가 고프면 내 입에 무엇을 넣을 생각에 앞서 집에 있는 사람 생각에 안절부절 못해하는, 오랜만에 동창들과 어울려 어디 멀리 소풍을 갔다가도 식구들 생각에 얼른얼른 집으로 돌아가는 아줌마들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게 닮아 있는 이런 내가 내 안에 있을 줄은 정말이지 꿈에서도 몰랐다.

 

이것이 전업주부가 느끼는, 느껴야만 하는 숙명적인 행복인 것일까. 그러고 보면 행복이라는 것은, 그것은 받는 데서도 오지만 주고 있을 때, 아니 어쩌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훨씬 크고 복합적인 향기를 띠며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0.01.29 19:17 ⓒ 2010 OhmyNews
#전업주부 #가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2. 2 "어버이날 오지 말라고 해야..." 삼중고 시달리는 농민
  3. 3 새벽 2시, 천막 휩싼 거센 물길... 이제 '거대야당'이 나서라
  4. 4 네이버, 결국 일본에 항복할 운명인가... "한국정부 정말 한심"
  5. 5 구순 넘긴 시아버지와 외식... 이게 신기한 일인가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