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실패와 버락 오바마의 승리

새로 쓰는 희망과 절망의 좌표

등록 2010.02.02 10:41수정 2010.02.02 10:41
0
원고료로 응원
노무현의 실패는 우리 모두의 실패다.

난 노무현의 임기중의 정책과 노선에 한번도 찬성을 한 적이 없다. 그는 미국의 강압에 맞서지 못하고 이라크에 파병을 했고. 한미 FTA에 비준을 했으며 여전히 노조와 민생을 탄압했고 국내 반환경적인 정책을 승인했다. 그 와중에 노무현을 비판적으로 지지했던 진보세력은 점차 그에게서 멀어져 갔고, 노무현은 임기 내내 기성 엘리트 정치인과 뿌리를 달리하는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겨 못 잡아 먹어  안달했던 수구 언론과 재벌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려야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확정 되던 날, 미국에 있던 나는 직장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춤을 췄고 점심시간에 친한 동료들에게 축배를 돌렸다. 노무현 개인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극우 보수 세력에게 피땀으로 이루어낸 민주 정권을 넘겨줄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각팍한 현실에서 일구어냈던 희망과 승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현실 정치권에서 조직된 세력도 재벌의 돈줄도 없었던 노무현이 당선된 배경에는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뜻을 모으고 그걸 현실화시킨 시민들이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무언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그 힘을 현실 정치에서 보여줬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이러한 승리의 경험은 중요하다. 그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결집된 의지와 노력이 가시화된 성과로 나타나게 한 시민들이, 그 선거에서의 승리한 경험을 토대로, 자신들이 지지한 대통령이 진정한 참여 정부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감시하고 강제하는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결과적으로 봤을때 불행하게도 그렇게 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고작 "진보적" 정치 성향을 가진 대통령을 하나 덜렁 뽑아 놓고 사회가 바뀌길 바라는 것은 복권 한장 달랑 사놓고 일등 당첨을 꿈꾸는 것보다 더 허황된 일이지 않을까.

오바마의 승리는 미국 대자본의 승리다.

버락 오바마, 아프리카 케냐 출신 아버지를 가진, 미국 주류 정치권 후보의 프로파일에서 한참 거리가 먼 그가 대통령이 될 수있었던 것은 -미국 선거 운동 사상 대기업들의 기부를 가장 많이 받은 걸 차치하고서라도- 지긋지긋한 부시세력과 공화당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사람들의 결집도 큰 몫을 했다.


2008년 한해, 정치에 무관심했던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수십년만에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오바마를 통한) "희망"을 이야기하며 그를 통한 새로운 미국을 꿈꾸는 모습을 보았다. 개인으로서 오바마는 능력 있고, 머리 좋고, 기성 정치인들에 비해 정직해 보이고, 말과 행동이 일치할 것처럼 보이는, 게다가 빈민가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배경을 가진 젊은 흑인 정치인이다.

오바마가 당선되던 날, 최소한 그날만큼은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나를 비롯한 주변 급진적 활동가들도 기쁨을 감추지 않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을 함께 축하했다. 그가 백악관에 입성한 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오바마를 지지했던 젊은이들과 딱 오바마가 선거 당시 보여줬던 만큼의 "진보성"을 가진 지지층들은 노무현 정권 말기 한국의 소위 "노빠"들만큼이나 맥이 빠져 있다.

오바마는 당선되자마자 실업과 경제난으로 쓰러져가는 서민들의 원성을 뒤로 한 채,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두 당은 사실 거대자본의 이해앞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으며 7천억 달러나 되는 돈을 투기성 투자의 결과로 스스로의 발등을 찍은 월 스트리트의 금융 자본 구제를 위해 조건없이 지원했다.

2003년부터 계속된 전쟁을 멈추겠다는 약속은 아프카니스탄에 삼만명 추가 파병으로 묵사발이 되었으며 서민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하겠다는 계획도 사실상 현실성 부족한 내용으로 결국 서민이 아니라 의료 보험 회사 배만 불려주는 정책으로 전락할 것이 예견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 누가 (월스트리트와 미 군산복합체를 비롯한 대자본 기업들을 제외하고) 오바마를 미국의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지난 주 수요일 저녁에 있었던 임기중 최초의 국회 연설에서, 그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예산을 제외한-노인/저소득층 의료 보조기금, 사회보장기금은 예외- 모든 예산을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도 천문학적 예산을 자랑하는 국방 예산은 계속 확대할 것을 천명했다.

다시 말하면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사람들이 70퍼센트 이상으로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꼽은 교육 예산을 비롯한 최악의 상황에 빠진 민생고를 돕는 어떤 정책 예산도 동결한다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환경 관련 예산은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이쯤 되면 오바마가 누구의 대통령으로 일을 하고 있는가는 명백해진다. 오바마를 통해 희망을 보고 꿈꾸었던 많은 젊은이들, 투표에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흑인들, 이민자들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소외되었던 마이너리티들 그리고 진보 운동 진영은 지금 쓰디 쓴 입맛을 다시고 있다.

희망을 꿈꾸고 절망을 곱씹기 앞서 행동하자

지금 이명박 정권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현실 정치에 환멸과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부당하고 부정의한 현실과 민생과 환경을 죽이는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항거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다르게 보일뿐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문제들임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 촛불 시위가 용산참사나 노동자 탄압에 대한 적극적인 항거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 정부의 정책이 민생을 탄압하고, 공공재 영역을 무차별적으로 사유화하고, 비리재벌과 외국 자본을 비호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일사천리 진행되고 있는 지금, 삼년만 더 버티자, 삼년 후에 두고 보자 하는 사람들을 아직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이제 정말 정신을 차릴 때가 되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복권 당첨을 꿈꾸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헛물만 켜고 있을 것인가. 좀 더 살기좋은 민주적인 사회는 다음 선거 때 이루어지는게 아니고 좀 더 진보적인 대통령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 아닌 것이다. 그걸 기대하고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그것을 통해서만 변화를 이뤄내려고 한다면 백년이 지나도 우리의 현실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우리의 손으로 직접 해결해 나가면서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단기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마법은 어디에도 없다. 애시당초 그런 "만능해결책"은 이 지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가 삶과 사회의 주인으로 떨쳐 일어나 찾아가고 만들어가지 않는다면 기적같은 해결책을 가진 천재가 나타나서 우리 앞에 어떤 길을 열어 준다 해도 그것이 우리가 애써 물 주고 가꾸어 뿌리 내린 변화가 아닌 이상, 상황이 악화되면 뜬구름처럼 사라져버릴 지속 가능하지 않은 헛된 꿈일 뿐이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싸우지 않고 삼년 후에, 민중의 삶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정치 세력 확보에 급급한 그놈이 그놈인 "야당 후보" 중 가장 덜 "반동적"인 후보를 찾아 투표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인가? 행운을 빈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나는 절대 그런 행운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확신한다.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사회를 뒤집어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삼년 후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보다 조금 나은 후보를 당선시켜서 오는게 아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각자 자신이 속한 지역 공동체와 생활의 터전에서 맞닥뜨린 문제들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각자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관심있는 부분-환경, 언론, 교육, 문화, 반전, 평화, 가난, 노동, 아동, 여성, 인권-을 스스로 가장 잘 한다고 생각하는 일과 방식으로 접근해서 적극적으로 풀어 나가고 그 안에서 쌓인 경험과 힘을 모아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한 사안에서는 공동전선을 만들어 함께 싸워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새 세상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좀 더 살기 좋은 세상, 대다수 민중이 주인되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더디지만 유일한 방법이다.

행동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고 꿈꾸는 희망은 망상이다. 그런 희망은 우리에게 결국 더 큰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 준다. 작은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변화를 위해 쉼 없이 실천하는 사람만이 희망을 이야기 할 자격이 있다. 개개인의 작은 노력이, 그 실천 안에서 숨 쉬는 희망이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지금 변화를 위해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절망스러울 것이라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혁명 #민주주의 #사회 변혁 #실천 #생활속의 혁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3. 3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4. 4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