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자율화로 초등학교까지 국영수 몰입교육

[주장] 교육과정 파행 유도하는 학교자율화 중지해야

등록 2010.02.08 14:41수정 2010.02.0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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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에서 보낸 학교자율화 선전 메일입니다. 지난 실적 보고서와 3월에 본격 시행한다는 것, 7월에 학부모와 학생 체감지수를 조사한다고 합니다. ⓒ 신은희


교과부에서 학교자율화 추진 실적 안내메일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마다 이 때문에 선생님들이 왜 교육이 이렇게 이상하게 가느냐, 학교장 맘대로 교육과정 다 짠다고 불만이 쌓여가는 중인데, 교과부는 자랑스럽게 앞으로의 계획까지 보냈다.

학교자율화 추진 실적 점수로 발표

교과부는 이미 2월 3일에 시도교육청별로 학교자율화 추진 실태를 점검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2009년 6월에 발표한 학교자율화 3단계 방안(학교교육과정 자율화, 교원인사 자율화, 자율학교 지정)이 시도교육청별로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가를 발표한 것이다. 보도자료를 보니 시도교육청별로 각 항목을 A, B, C, D, E로 평가하고 총점까지 발표하였다. 일제고사 점수 발표로 재미를 보더니 이젠 "자율화"정도까지 등급을 나눠 발표한 것이다. "자율성"이 점수로 평가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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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 보도자료 뒤에 보면 참고자료로 시도교육청별로 학교자율화 항목별 등급을 매기고 총점을 매겨놓았습니다. 자율화정도를 점수로 매기는 것도 우습지만 이 중 빨간 선으로 표시한 교육과정 자율화의 학교 실상은 교육과정 파행지수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신은희


이 보도자료에 따라 일부 지역 신문들은 해당 교육청 성적을 발표하였다. 총점으로 발표한 것도 교사 입장에서 씁쓸하지만 같은 점수를 가지고 지역교육청마다 선전한 내용을 보고도 그렇다. 내용도 모르면서 오로지 상위권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대구교육청, 학교자율화 추진 실적 '1위'
경남교육청, '학교자율화 추진' 전국 최고
제주도교육청, 학교자율화 추진 성적 우수
충․남북 학교자율화 '으뜸'

학교를 입시학원으로 만드는 학교자율화

그럼 학교자율화 조치란 과연 무엇일까? 학교자율화조치란 교육관련 규제를 철폐하여 교육의 자율과 자치의 밑바탕을 마련하고 학교교육의 다양성을 유도하기 위해 시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2008년 4․15조치 1단계를 발표하여 학교의 각종 지침 수 백개를 일시 폐지하였다. 그 결과 학교마다 0교시, 야자보충이 부활하여 중고등학생들이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며 촛불집회로 나오게 만들었다.


2009년에 발표한 내용(6월 11일 자체확정)은 학교교육과정 자율화가 핵심이다. 그 내용은 교과별로 수업시수 20% 증감권을 줘서 학교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발표를 보고 대부분의 언론은 앞으로 학교에서 국영수 입시교육이 강화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2011년에나 실시되는 2009개정교육과정 조기 시행으로 초중등교육법 위반에 현재 교육과정(7차, 2007개정교육과정) 정상 운영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관련기사:학교자율화는 부실교육 아니면 편식교육)

연구도 없이 전국 학교가 실험 대상?

특히 수업시수 20% 증감권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교육과정자율학교 등 특수한 학교에나 적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별도의 연구 없이 전 학교로 확대된 것이다. 애초부터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높은데다가 연구진조차 교과군과 학년군제도가 도입되는 2009개정교육과정에 이것이 포함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교과부가 2학기에 급하게 지정하여 진행한 연구학교에서도 굳이 할 필요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거나(충남 00초), 초등교육에 맞지 않아 아예 하지 않았거나(서울 00초), 시행해보니 일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는(충북 00초) 등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즉 연구도 제대로 안된 것을 올해 학교자율화라고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내용도 모르는 채 교육과정 시수표만 가지고 멋대로 늘리고 줄이고 했다. 이것이 2010학년도 각 학년 아이들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애초에 검토할 수도 없고, 국가교육과정 위반이라거나 연구도 없었다는 내용 따위는 알려주지도 않은 상태로 말이다. 그러더니 교과부는 이것을 실적이라고 평점까지 매겨 언론에 발표하였다.

대체 교과목이나 교육 내용이 아니라 시수를 가지고 늘리고 줄이는 것이 교육의 다양성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교육과정 자율화로 학교 교육과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경기, 인천 등의 초등학교 6개 학교 교육과정을 모아 분석해 보았다. 결과를 보니 역시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모든 학교에서 국영수만 늘려

첫째, 모든 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 시간이 늘고 나머지 교과 시간이 대폭 줄어 초등학교조차 국영수몰입교육이 강화되었다. 학년별로 보면 1, 2 학년은 국어, 수학이 늘고 통합교과 시간이 줄었다. 3-6학년은 수학과 영어가 늘고 국어를 비롯한 나머지 교과가 줄었다.

교과부는 학교자율화 조치가 나올 때부터 이런 우려에 대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전인교육을 지향하고 학생들의 직접 조작과 체험활동을 강조하는 초등학교마저 학교자율화 앞에 무너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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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역 한 초등학교의 교육과정시수표를 분석한 것입니다. 1,2 학년은 국어와 수학이 늘고 3-6학년은 수학과 영어가 늘었습니다. 교과부는 이런 자료를 보고 교육과정이 다양화되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는 주5일제때문에 교과별로 균형있게 34시간을 감축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 20%증감까지 하라고 해서 교육과정 시수표가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 신은희


교과부 입장에서 보기에 10시간 안팎으로 늘어난 시간이 별로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증감율은 초등학교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작년부터 일제고사 때문에 주지교과 수업이 늘고 예체능 수업을 아예 하지 않는 학교가 나타나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현상이 자율화사례로 포장되는 것이다. 특히 체육과 실과에서 6시간 - 10시간 넘게 준 학교는 새학년이 되어 아이들이 알게 되면 매우 실망할 것 같다.

수업시수 증가로 주5일제 이전으로 돌아가

둘째, 대부분의 학교에서 연간 수업시수가 늘어 학생과 교사의 학습 부담이 매우 늘었다. 학교별로 수업시수가 적게는 2시간에서 많게는 35시간까지 늘었다. 현재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월2회 주5일제 수업때문에 교과별로 전체 34시간을 줄이게 되어있다. 이걸 줄이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난 곳도 있으니 토요일 수업을 평일날 나눠서 하게 된 것이다. 어른들로 비춰보면 주5일제로 노는 대신 평일에 연장근무를 하는 셈이다. 심지어 1학년까지 11시간 늘려놓은 학교가 있었다. 교과부에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서울지역 학교이다.

이제 새학기가 되면 많은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들이 아우성을 칠 것이다. 특히 3학년은 그렇지 않아도 주당 25시간에서 30시간(영어 증가)으로 5시간이 늘어나는데 수업시간이 더 늘어나 실제 느끼는 부담이 매우 클 것이다. 교사들은 작년 조사 결과 대부분의 학교에서 부진아 지도로 평균 2시간 정도가 늘었는데, 여기에 수업시수가 더 늘어 힘들 뿐만 아니라 수업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올해 교원평가제며 연간 4회 수업 공개가 좋은 영향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자교육 불법으로 끼워넣기

둘째, 한자교육이 생겼다. 7차교육과정에서는 재량활동 시간에 정보통신활용교육을 반드시 하게 되어있다가, 작년부터 시행된 2007개정교육과정은 학교에서 창의적인 활동을 많이 하도록 규제를 다 없앴다. 그런데 대체 왜 한자 교육이 들어갈 것일까?

이는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강조한다는 창의적 체험활동(재량과 특별활동 통합)에 한자가 들어간 것을 악용한 사례이다. 초등학교에는 보건에 한자, 정보통신활용교육까지 들어가서 오히려 재량권을 발휘할 시간 자체가 대폭 줄었다.(관련기사:MB임기 끝나도 교육과정 삽질은 2016년까지 쭈욱?) 교과부의 보도자료에 있는 말을 절대 액면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대표적 사례이다.

교과부는 이 항목은 교육과정자율화 항목에 넣지 않았다. 그런데 전부터 교육과정을 어기고 교장들의 압력으로 한자교육을 하던 일부 지역에서 학교자율화를 빙자해 불법으로 넣은 것이다. 서울은 여기에 디자인 과목까지 반영하라고 담당 장학사들 이름이 들어간 교재를 공문과 함께 내려 보냈다.

재량과 특별활동 통합? 결국 탁상행정  

셋째, 4개 학교에서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서류상 통합하였다. 초등학교는 굳이 통합하지 않아도 이미 주제중심으로 교과까지 통합하여 각종 체험활동을 하는 곳이 많다. 오히려 여기에 한자 등의 과목이 들어와 앞으로 이런 시간이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이걸 굳이 통합하면 복잡해진다. 현재 성적표에는 재량활동 따로 특별활동 따로 나뉘어 있다. 교육청의 예시를 보니 같은 주제(가령 진로)를 재량에 0시간, 특활에 0시간으로 나눠서 쓰라고 한다. 그런데도 단순히 표로만 합쳐서 (재량․특활)이라고 편집하면 교과부는 통합사례라며 자율화 점수가 높다고 선전한다. 조삼모사에 탁상행정이 따로 없다.

20% 증감은 서류로만 하고 수업은 알아서 하라?

학교에서는 이런 교육과정을 짜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 방안이 발표될 때부터 현장 교사들은 말도 안된다고 하였다. 현재 교과서 내용이 주어진 시간 다 써도 아이들이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어느 교과 시수를 함부로 늘리고 줄인단 말인가? 게다가 뻔히 주지교과 늘리라는 소리인데 그러면 초등교육의 성격과 맞지 않는 것 아닌가?

학교장도 교사인지라 당연히 이걸 모를 리 없다. 그렇지만 교육청에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짜면 돌려보내고 학교평가에 반영한다니 어쩌겠는가? 학교장 중임제도 강화한다는데 말이다. 그러니 교육청에 보내는 시수표만 그렇게 내 달라고 애원을 하거나 아니면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실제 수업은 교실에서 담임이 알아서 전처럼 하라고 하면서. 결국 학교자율화는 초등학교마저 서류조작을 강요하거나 이중장부를 일반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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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가 작년 12월 17일 2009개정교육과정을 확정발표하면서 낸 보도자료입니다. 수업시수 증감과 집중이수제가 만나면 국영수 입시교육이 강화되지 않냐는 질문에 학교운영위와 입학사정관제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전혀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체 하는 것이라고 밖엥 볼 수 없습니다. ⓒ 신은희


학부모에게는 "무슨 시수를 늘릴까요?"라고만 물으니 대부분의 학부모가 주지교과를 늘려달라고 하였다. "현행유지"는 자율화 취지에 어긋난다며 "증가"를 강요하는 설문지를 보내놓고 교사들에게 학부모 의견이니 반영하라고 한다. 내년도에 누가 몇 학년을 할지, 학급 아이들 수준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학부모에게 교육과정을 짜라고 책임을 전가한 셈이다. 나중에 책임도 학부모에게 넘길 것인가?

학교 자율화로 교사와 학생 한숨 깊어져

교과부는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자율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작년에는 교육청마다 "이러이렇게 하면 자율화 맞나요?"하는 전화가 많이 왔다는데, 올해는 교과부 성적표 따라 학교마다 알아서 기게 생겼다. 일제고사는 1년에 한 번인데 분기마다 성적표를 공개하면 지역에 분기마다 해당교육청 성적표 가지고 기사를 쓸 것이다. 과연 이런 것이 교육일까? 자율성이 이렇게 길러지는 것일까? 정부의 철학 수준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게다가 교육과정 파행을 학교 자율화라고 선전하는 교과부 때문에 피해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볼 것이다. 작년부터 시행된 2007개정교육과정은 교과서 내용도 많이 바뀌고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아 학습 결손이 우려된다.(관련기사:초등 4학년, 알파벳도 안가르치고 읽고 쓰라?) 그야말로 교사들이 교육과정재구성을 통해 학생들에게 맞는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발휘해야 한다.

과연 교과부에게 교육과정은 제대로 교육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일까? 만날 바꾸고 서류로 통계 내려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교과부의 "자율화"는 학교장 독단으로 자율학교를 신청하고, 그도 안 되면 교육감이 강제로 지정하게 하는 것일까?(2010년 1월 입법예고)

결론은 현재 교과부가 추진하는 학교자율화는 지금보다 더 심한 교육과정 획일화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를 학원과 차이없이 주지교과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게 만들고 교과부에서 제시한 것과 똑같이 하면 자율화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교과부가 학교자율화 점수가 높다고 발표하는 지역과 학교는 학교교육과정이 더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학교가 비민주적으로 운영되어 교사와 학생의 한숨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덧붙이는 글 | 교과부는 교육을 행정사업처럼 획일화하는 학교자율화 사업을 당장 중단하고, 학교 현장에 맞는 정책을 기초부터 차근차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교과부는 교육을 행정사업처럼 획일화하는 학교자율화 사업을 당장 중단하고, 학교 현장에 맞는 정책을 기초부터 차근차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학교자율화 #교육과정 파행 #수업시수증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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