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뜯으러 다니다 머물 곳을 발견하다

제주 서귀포 무위재, 알고보니 화가 선생님이 운영하는 펜션

등록 2010.02.09 10:38수정 2010.02.0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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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재 입구 무위재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무위재. 무위재는 꾸밈없이 순수하다는 뜻을 가진 제주도 표준어라고 합니다. 제주도에선 제주도 말을 사투리라 하지 않고 표준어라고 했습니다. ⓒ 변창기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어느 야산을 개간해 친환경 귤 농사를 짓는 농부 김영남(44)님의 초청으로 지난 토요일(2월 6일) 오후 울산에서 제주로 갔습니다. 저녁에 그분은 쉴 곳으로 가자며 무위재로 안내했습니다. 무위재는 지역 이름이 아니라 한 펜션 이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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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재 앞 항아리 설치 미술 화가 답게 항아리로 설치 미술을 만들어 놨습니다. ⓒ 변창기


"무위재 주인장이 화가랍니다."

허허로운 공터 한가운데 아담하게 지은 집이 보였습니다. 김영남 님이 화가라고 소개한 그분이 집앞에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미리 연락 받았는가 봅니다. 화가 선생님은 치렁치렁 긴 머리칼에 잘생긴 외모였습니다. 화가 선생님은 저에게 하룻밤 지낼 방을 안내했습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노꼬메가 무슨 뜻이지요?"

방으로 가면서 보니 각 방문에 생소한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다랑쉬방, 용눈이방, 영아리방, 노꼬메방. 제가 하룻밤 지낼 방이름이 노꼬메였고 궁금해서 물어 본 것이었습니다.

"제주도 오름 이름입니다"


그렇게 말문을 연후 화가 선생님과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참 관심이 많은 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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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선생님의 작품 앞에서 화가 선생님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흐뭇하게 웃고 계십니다. 자신이 그림 그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 변창기


화가 선생님은 홍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 양평 근처에서 미술 가르치는 일을 20여년 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다 시끄러운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꼈고 도시를 떠나 자연과 함께 조용한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몇해전 봄 먼저 제주도에 이주해 살고 있던 동생집에 놀러 왔었고 나물 뜯으러 다니다 우연히 지금의 무위재를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와 여기서 한번 살아보고 싶은데."

화가 선생님은 무위재를 보자 마음에 도장이 찍혔다고 합니다.

"형님, 무위재 주인이 세 놓는다네요."

무슨 일인지 알아보니 무위재를 부부가 함께 만들고 운영해오다 그만 남편이 병환으로 운명을 달리 했다고 합니다. 부인 혼자 무위재를 운영해오다 힘에 겨워 서울 자식들 집으로 올라 간다는 것입니다. 그 정보를 입수하자말자 곧바로 1년간 임대 비용을 구해와 계약하고 당장 이사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작년 이맘때였다네요. 그러니까 1년 정도 되는 셈입니다.

"살다보니 장단점이 있더군요."

그렇게 원하던 정원 생활에 장단점이 있다니 의외였습니다.

"주변엔 모두 60, 70대 어르신 뿐이더군요. 서울 살 땐 그림쟁이 친구도 많았고 그림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보내는 재미가 있었는데 제주에 사니 그런게 없어 조금 아쉽죠."

화가 선생님은 생각보다 많이 소탈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것이 동양화 기법이었다는데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하나같이 얄궂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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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화 기법에서 소나무를 멋지게 그려 놓았습니다. 그냥 본대로 그린 그림입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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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상상화 기법으로 이젠 사실화 기법으로 그림 그리지 않고 위와 같이 상상화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위 그림 제목이 '가슴에서 피는 나무'라고 합니다. ⓒ 변창기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 세밀화 기법들은 모두 사물을 보고 베끼는 거잖아요. 어느날 그런 그림 그리기가 답답하게 느껴지더군요. 제 취향도 아니구요. 그 후부터 상상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그 첫 작품이 이 '가슴에서 피는 나무'죠."

화가 선생님이 추구하는 그림은 형태를 단순화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알쏭달쏭 상상속으로 들어가게끔 하는 것. 그러니까 영화가 덜 끝난듯이 끝나는 아쉬움과 함께 그 결말을 보는 이의 상상에 맞기는 것과 같은 그림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틀과 울타리를 답답해 하고 울타리 밖을 추구하는 취향이 저랑 닯은 꼴이 있는듯 합니다. 40대 후반인 화가 선생님은 웬일인지 아직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 나이 드신 어머님이랑 살고 계시니 혼자 사는건 아니네요. 단지 처자랑 결혼을 안 한 상태라고나 할까요?

다음날 아침 화가 선생님은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장소를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그림 그리는 장소는 집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냥 컨테이너 박스 속에다 그림 그리는 도구를 놔두고 거기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벽에는 시골생활 하면서 틈틈이 그린 그림을 여기저기 붙혀 두었습니다.

"시골 생활이 보기보다 할 일도 많고 바쁘네요. 온지 1년 됐는데 아직도 정리해야 할 일이 쌓였어요."

화가 선생님 어머님이 아침 밥 먹으라 불렀습니다. 담백하고 소박한 어머니표 밥상이 몇년만이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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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차려주신 아침상 손님인 저도 아침 같이 먹자며 불러 주셨습니다. 단촐하지만 어머님의 정성이 가득 담긴 건강 밥상입니다. ⓒ 변창기


"저는 어머님과 성당엔 다녀와야 합니다. 그 분 오실 때까지 따뜻한 방에 가 쉬세요."

아침을 다 먹은 어머니와 화가 선생님은 외출복으로 갈아 있고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화가 선생님이 잠시 주변 정리하러 간 사이 어머님이 성당갈 채비를 하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아드님이 참 훌륭하신 분이세요."

나이 많으신 어머님은 제 말에 근심어린 목소리로 응수하더군요.

"이제 저 애 하나만 치우면 다 치우는데 나이 들어 가면서 결혼도 안하고 저러고 사니 걱정이 태산 같아요."

화가 선생님이 다가오자 아무말도 않은 척하며 태연하게 차에 올라 탔습니다. 화가 선생님은 저에게 울산 잘 올라 가라며 인사를 남기고 자가용 운전석에 올라 탔습니다. 그리곤 시동을 걸더니 이내 부릉 거리며 멀어져 갔습니다.

어머니에겐 50이 다되어가는 아들이 여전히 어린 아이로 보이나 봅니다. 인자하신 어머니와 노총각 화가 선생님의 승용차가 그렇게 멀어지고 난 후 잠시 뒤에 맘씨 좋은 제주 유기농 귤농사 짓고 사는 농부님이 저를 태우러 오셨습니다. 저도 농부님 차에 올라 타고 무위재를 떠났습니다.

무위재에서의 하룻밤. 아마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거 같습니다. 특히 마음 따뜻한 노총가각 화가 선생님과 인자하신 어머님이. 
#무위재 #제주 #서귀포 #귤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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