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제대한 아들놈, 합격통지 받은 기집애

밥안먹어도 배부른 놈 나와 보시오~내가 그렇소!

등록 2010.02.10 09:08수정 2010.02.1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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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들놈이 제대를 했다. 보자마자 "어, 벌써 나왔냐" 했더니 이놈 갑자기 기도가 막혔는지 말을 못하고 그냥 물먹은 소마냥 눈만 꿈뻑 거린다. "경제도 어려운데 기냥 말뚝 박지"란 소리에 '켁' 가쁜 숨을 몰아 쉬더니 "아이고 아부지요 지가 철조망에서 월매나 뺑이치고 온줄 아세요"라 말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동설한. 쌀독에 쌀도 별로 없는디 그냥 나라가 주는 밥 쪼매 더 먹다가 날이나 풀리거나 나오지 에이 쩝쩝쩝...

 

여우꼬랑지 열두개는 간에 기별도 안오듯 먹어 정신연령이나 말빨 하나만큼은 나랏님도 공자님도 단상 아래로 물러나게 만드는 우리집 깻잎소녀 둘째 기집애. 드디어 모 대학에 수시합격 했으나 갑자기 거기엔 아니 가겠다고 폭탄선언. 와이, 왜, 뭐땀시, 우얄라꼬...이 애비 목젖에 청양고추 묻힌듯 타는 목마름으로 물어봐도 면벽후 묵언참선, 동안거에 들어 가버린다. 아이고 나원참. 가지 많은 나무도 아니건만 올겨울 쪼까 날씨가 거시기 한건 우리집 영향도 있었것지유.

 

제대한 아들놈이 다음날 보이질 않는다. 허걱! 아니 이놈이 어제 애비가 농담 삼아 던진 말에 상처를 받아 가출을 했나, 집밖으로 나가는걸 본 사람이 없다. 신호음은 가는데 전화도받지 않는다. 장이 뒤집어 지는 걸 환장이라고 한다. 밴댕이 옆풀떼기 같은 내 속이 드디어 뒤집어질 무렵 통화가 겨우 되었다. "어디여?" "알바하는디유" "무신 알바" "그런거 있시유" "그런거 뭐" "그런게 있다니깐요" 뚜뚜뚜...이런...너 오늘 들어오면 죽음이다. 그러나 그놈 내가 잠들기 전에 그날 안들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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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대배치후 첫면회. 작대기하나 이병단게 어제 같았는데(오른쪽이 아들) ⓒ 서정삼

▲ 자대배치후 첫면회. 작대기하나 이병단게 어제 같았는데(오른쪽이 아들) ⓒ 서정삼

수시합격한 서울을 버리고 지방대학에 가겠단다. 이런 삼베바지 방귀 새는 소리하고 있네..머스마도 아닌 기집애를 그것도 지방엘 내가 잘도 보내겠다. 내가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그리는 못한다. "안돼" "왜 안되는데요" "그걸 몰라서 물어" "네, 몰라서요" 뭘 믿고 저리 당당하게 대드는지 허걱! 또 장이 뒤집어 질라고 그런다. 환장 또 환장, 나중에는 속 저밑에서 된장까지 올라 오겠다. 그래서 '이런 된장'이라는 말이 생긴갑다.

 

새벽 5시반. 일산에서 10년 살아온 나도 모르는 인력시장에 나간 우리 아들놈. 거기서 배정받은 파주 어느 반도체공장에 나가 알바를 시작했다. 아니 나 같아도 한 달은 먹고 자고 등어리에 욕창이 생기도록 놀겠는데 이놈은 또 뭘 믿고 꼭두새벽, 그것도 인력시장에까지 나갔는가 말이다. 이 애비가 용돈을 안준데 대한 시위? 아니면 여자친구 생일이 곧 다가오나? 그런게 아니었다. 그냥 군바리 정신 남아 있을때 사회 경험을 해 보고 싶어서란다. 아이고 하느님 아부지 이런 귀한 자식을 주셔사 오늘에야 자식 키운 보람을 참으로 거시기하게 느껴 봅니다요 그려.

 

4년 전액장학금에 기숙사 무료. 한달 생활비 50만원. 3학년때 1년간 유학제공등등. 이 학교가 본인의 최종학력이 아니다. 아빠 지금 힘드신 거 알고 고민 끝에 결정했다. 그러니 막지 마세요. 학교로부터 돈받으면서 공부하겠다는 자식, 내 어이 막으리오. 500만원 가까운 입학금 통지를 받고서 난 학생회빈지 뭔지 8만원만 내고 끝냈다. 뭐 꼭 이 애비가 돈 때문에 무릎 끓은건 아니다만 지방 가서도 넌 잘할 수 있는 내 딸이기에 아무 걱정없이 보내 주리라. 아이고 하나님 아부지 이런 귀한 자식 또 주셔서 기쁨 두배, 행복만땅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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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10일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내딸 ⓒ 서정삼

▲ 중학교때.. 10일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내딸 ⓒ 서정삼

결국은 자식 자랑이였다고 어느 독자분 돌맹이 아니라 울산바위를 던진다면 난 오늘 기꺼이 맞아 죽자. 자식때매 죽을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그러나 오늘 마시는 술잔엔 아무도 모르는 내 눈물도 있으리라...그것이 부모 마음인것을 아신다면 아무도 나에게 돌을 못던지시리라.

2010.02.10 09:08 ⓒ 2010 OhmyNews
#그냥얼떨결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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