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선물한 마술, 나뭇가지에 핀 수빙

함백산 만항재 상고대

등록 2010.03.01 12:58수정 2010.03.0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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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항재 쉼터 전나무에 핀 상고대가 황홀합니다. ⓒ 조정숙

만항재 쉼터 전나무에 핀 상고대가 황홀합니다. ⓒ 조정숙

"와! 자연이 만든 작품이 이리도 경이로울 수가 있을까? 언니, 형부, 여보. 여기, 좀 보세요. 너무나 환상적이에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름다운 세상이에요. 어쩜 이리도 멋있을 수 있을까요. 단잠을 깨고 일찍 달려온 보람이 있어요."

 

"엄마 저게 뭐예요? 하얗고 날카로운 것들이 나무 위에 많이 붙어 있어요. 그런데 너무 예뻐요. 온 세상이 마술을 부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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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최용환(41) 씨와 아들 윤식, 가운데 박선화(40)씨 가족과 언니,형부 ⓒ 조정숙

왼쪽 최용환(41) 씨와 아들 윤식, 가운데 박선화(40)씨 가족과 언니,형부 ⓒ 조정숙

이른 새벽부터 눈 비비며 엄마를 따라 나선 초등학교 4학년인 윤식이가 이런 풍경을 처음 본다며 놀란 표정입니다. 연휴를 이용해서 2월 마지막 날 새벽 단잠을 깨고 오전 5시30분쯤 서울에서 출발하여 태백산을 오르기 위해 오전 8시30분쯤 함백산 만항재를 지나가던  중 나무 위에 핀 상고대를 보면서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차를 멈추고 박선화(40)씨가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상고대'사전을 찾아보니 "겨울철 날씨가 맑은 밤에 기온이 0도 이하 일 때 대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승화되어 차가워진 물체에 붙는 것을 말한다. 나무서리, 상고대라고도 하며 서리보다 많은 양이 지표면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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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에 수증기가 달라 붙어 수빙이 열렸습니다. ⓒ 조정숙

나뭇가지에 수증기가 달라 붙어 수빙이 열렸습니다. ⓒ 조정숙

온도가 급강하하는 겨울이나 낮 기온과 밤 기온의 온도차가 심하고 습도가 많을 때 고지대에 나타나는 상고대, 수많은 사진가들은 환상적인 나무 위에 핀 꽃을 담기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지요. 이른 새벽 해뜨기 전에 피는 꽃이기에 밤잠을 포기하고 밤새 달려 이곳을 찾거나 전날 근처에서 숙소를 정하거나 하여 작품을 담기도 합니다.

 

이 멋진 풍경을 담기 위해 전날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사전답사를 위해 오후 함백산을 올랐습니다. 고갯길 중턱을 오를 때쯤  가시거리가 10m정도도 안될 만큼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이런 풍경은 다음날 멋진 상고대를 보여줄 확률이 높기에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수십 번을 올라도 쉽게 만날 수 없었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내심 걱정했었는데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안도의 숨을 고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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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백산 정상에서 바라본 구름위의 태백산 봉우리 ⓒ 조정숙

함백산 정상에서 바라본 구름위의 태백산 봉우리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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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백산 정상에 있는 kbs 송신탑 위로 해가 떠오릅니다. ⓒ 조정숙

함백산 정상에 있는 kbs 송신탑 위로 해가 떠오릅니다. ⓒ 조정숙

함백산 정상에 오르자 구름바다가 온 세상을 삼켜 버렸습니다. 멀리 태백산이 작은 봉우리로 구름바다 위에 보일 뿐입니다. 함백산은 강원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1573m 정상에서 부는 매서운 바람은 영상17도까지 오르는 초봄의 날씨와는 무관합니다. 살 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이 오한을 느끼게 할 정도입니다.

 

다음날 일출과 함께 멋진 상고대와 운해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내려옵니다.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는 겨울이면 눈꽃보다 상고대가 많이 핍니다. 일종의 서리꽃인 셈이지요. 습기를 머금은 안개가 급격한 추위로 나무에 엉겨 붙어 하얗게 나무에 꽃이 피는 겁니다. 마치 쌀가루를 뒤집어 씌워놓은 것처럼 새하얗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눈꽃과는 달리 날카로워 보이면서 나뭇가지에 피는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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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에 핀 상고대와 안개가 운치를 더한다. ⓒ 조정숙

전나무에 핀 상고대와 안개가 운치를 더한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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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올라 왔다는 학생들, 함백산 산행을 위해 모여 있다. ⓒ 조정숙

대구에서 올라 왔다는 학생들, 함백산 산행을 위해 모여 있다. ⓒ 조정숙

 

여러분을 마술의 세계에 초대합니다

 

상고대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점점 커 나갑니다. 바람이 세게 불며 과냉각된 물방울이 많을수록 상고대가 잘 자라기 때문에 상고대가 만들어진 모양을 보고 바람의 세기를 알 수 있다고도 합니다. 상고대를 수빙(樹氷)이라고도 한답니다.

 

바람이 약하고 기온이 낮을 때는 새우 꼬리 모양의 쉽게 부서지는 상고대가 생기고 이런 모습은 지역이 낮은 곳에서 일순간 볼 수 있는 상고대입니다. 바람이 세고 기온이 높을 때는 단단한 비얼음이 생기게 되는데 안개 알갱이가 완전히 얼어붙기 전에 다른 알갱이들이 달라붙어 결국 단단하고 투명한 얼음이 되어 나뭇가지 위에 달라붙게 됩니다.

 

상고대는 늦가을과 초겨울, 이른 봄에도 자주 핍니다. 안개가 많거나 기온차가 심한 해발 1500m 안팎의 고산지대에서 주로 볼 수 있지만 적당한 온도 습도 바람 등 기상조건이 맞는다면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상고대를 만날 수 있답니다.

 

안개 외에 비나 눈이 온 뒤 포근했던 날씨가 밤 사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때 공기 중의 수분이 얼면서 나무에 달라붙어 꽃이 피기도 하지요. 낮에는 따뜻했다 밤새 기온이 급강하하는 조건은 국내의 경우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상고대를 보려면 높은 산을 올라야 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 그리고 태백시 등 세 고장이 한데 만나는 지점에 만항재라는 고개에서는 이런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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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 시작하자 상고대가 우수수 떨어진다. ⓒ 조정숙

해가 뜨기 시작하자 상고대가 우수수 떨어진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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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항재 상고대너머 산위로 구름바다가 펼쳐집니다. ⓒ 조정숙

만항재 상고대너머 산위로 구름바다가 펼쳐집니다. ⓒ 조정숙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해발 1573m) 줄기가 태백산(해발1567m)으로 흘러내려 가다가 잠시 숨을 죽인 곳이라는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갯길로 알려져 있는데, 정상에 만항재 쉼터가 있고 이곳에 전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전나무에 핀 상고대가 환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함백산 산행을 위해서 대구에서 이른 새벽 출발해 만항재에 오전 9시40분쯤 도착한 학생들이 놀라며 뿜어내는 감탄사가 굽이굽이 고갯길에 메아리 되어 되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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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가 많이 피는 만항재 산속에는 복수초가 몽우리를 터트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조정숙

야생화가 많이 피는 만항재 산속에는 복수초가 몽우리를 터트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조정숙

아무리 기온이 급강하한다고 해도 습도가 40∼60% 정도로 건조한 상태에서는 상고대를 만나기가 힘듭니다. 상고대는 해가 뜨면 서서히 녹아 사라지기 때문에 부지런해야 볼 수 있습니다. 잠깐 동안 환상의 마술을 부렸던 상고대는 어느 틈엔가 떠오른 해와 함께 우수수 떨어지며 사라져버립니다. 사람들은 환상의 세계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지만 마술에서 깨어나 잠깐의 시간을 그리워하며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꽃망울을 터트리기 위해 기다리는 복수초가 눈 속에서 살포시 나와 반갑게 인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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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숙
2010.03.01 12:58 ⓒ 2010 OhmyNews
#상고대 #만항재 #함백산 #KBS송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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