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3만9천원으로 제주도 간 옥탑방녀야

[제주도 여행1] 제주도로 떠나는 귀찮은 마음?

등록 2010.03.04 14:27수정 2010.03.0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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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이란 기다리는 데 있다고 했던가. 밥을 먹다가도 헤벌죽 웃고, 욕지거리를 찍찍하면서 알바 할 때도 가끔 피식 웃었으며, 친구들한테 "나 놀러가"라고 이야기 할 때는 숫제 키득키득 웃어대기까지 했다. 3월 1일부터 25일까지, 두 달 전에 이미 예정된 나의 제주도 여행 때문이었다.

제주도 여행을 결심한 이유는 아주 사소한 곳에 있었다. 어디는 가고 싶은데 돈은 없고, 그러다 인터넷을 하는데 제주도 왕복 항공권이 39000원이라는 '꿀정보'를 발견했다. 차편만 있으면 어떻게든 가게 된다는 '무대뽀' 심정으로 무려 2달 전에 제주도 행 비행기 왕복표를 무작정 끊어버린 것이다.


2005년에 생긴 이래 지금까지, 저렴한 가격으로 서울-제주도는 물론 일본, 방콕, 싱가포르등을 운항하는 제주항공에는 얼리버드 요금제라는 것이 있다. 외국의 이지젯(저가항공)과 같이 미리미리 표를 끊어 놓으면 반값 이상으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나는 두 달 전에 예약해서 가장 저렴한 편도 만원으로 표를 끊을 수 있었다.

이 요금제 이용으로 인해 여행 일정 고민도 단번에 덜어 버렸다. 사람들이 왜 굳이 "25일?'이라고 많이들 물어봤지만 딱히 이유는 없다. 단지 내가 살펴보았던 시점의 얼리버드 요금제가 3월은 1일부터 시작해서 25일까지 있었던 것! (나 너무 쿨한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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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 비행기표 10,000원씩, 거기에 공항이용료 8,000원 유류할증료 11,000원이 더 붙었다. 이게 바로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걸까? ⓒ 이유하


제주도 왕복 항공 39000원? 여행 준비는 거기까지!

그러나 나의 제주도 여행 준비는 딱 거기까지. 대책없이 항공권만 끊어놓고 이리 빈둥, 저리 빈둥 거리다 보니 제주도 가기 바로 전 날이 되었다. 오 갓! 하루는 이렇게 긴데 날짜는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거지? 덜컥 제주도 가기 전날이 되자 아무, 정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것이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행 25일이면 나름 장기 여행이 아니던가. 도대체 나는 25일 동안 제주도에서 무얼 한단 말인가.

언제나 그렇듯 막판에 덜컥 겁이 나는 밤새 인터넷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어서 출발하는 당일 (3월 1일) 늦잠을 자는 만행을 자행했다. 허겁지겁 일어나니 10시. 비행기 시간은 오후 2시 50분이었지만 준비하기엔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어나자마자 뭔가 께름직한 느낌이 뒷목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밖에는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휙휙 소리를 내며 바람+비+눈발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는 소심한 나는 좌절했다. 혹시 비행기 못 뜨는 거 아냐? 라는 설레발부터 캐리어는 어떻게 끌고가지 라는 현실적인 고민까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게다가 아침부터 무선 인터넷도 잡히지 않는 것 아닌가. 예정에도 없는 팔자 타령을 하면서 전전긍긍하기를 30분. 결국 114에 전화를 걸어서 제주항공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 혹시 오늘 비행기 뜨는가 해서..."
"네? 고객님.. (당황한 목소리) 확인된 결항 사항은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 정도의 날씨면 항공사 전화가 불이 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화기를 들자마자 들려오는 상냥한 항공사 직원의 목소리에 부끄러워졌다.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직원의 목소리 내부에는 '뭐 이런 걸 물어보고 그래, 아마추어같이'라는 말이 숨겨져 있는 거 같아 전화 받는 내내 기어들어갔다. 그래,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쯤 비가 온다고 비행기가 안 뜨겠어? 그날 전화한 촌스러운 여자 저 맞습니다, 맞고요.

비행기 뜨나요? 초보 여행족의 설레발

일어나자마자 얼을 쏙 빼고 나니 할 일이 바빠졌다. 어제 분명히 짐을 싸놓긴 했고, 청소도 해놓긴 했고, 할 게 없어서 빈둥거리기 까지 했는데... 막상 아침이 되니까 할 일이 태산이었다. 일단 거의 한 달이라는 공백이 생기는 나의 옥탑방의 안위를 위해서 쓰레기 버리기, 냉장고 비우기, 가스 잠그기, 빨래 걷기 등등등 실생활 정리 폭탄을 해결해야했다.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버리고, 어젯 밤 남아있는 재료를 몽땅 끌어다 만든 떡볶이와 밥통의 밥 전부를 억지로 위장으로 밀어넣고는 남은 반찬들은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넣었다. (아껴먹고 있었던 내 밑반찬들아! 미안.) 최종적으로  냉장고 속에 남아있던 계란 3개를 3초 정도 바라보다가, 버리기도 그렇고 먹기고 힘들어서 물에 폭폭 삶아서 배낭에 넣어버렸다. (누가 보면 좀 창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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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나의 짐. 바지 하나, 티셔츠 3장, 세면도구, 운동화, 수면바지 및 실내복, 화장품 등 간단하게 짐을 꾸린다고 했는데도 너무 무거웠다. ⓒ 이유하


마지막으로 짐을 정비할 차례. 캐리어를 끌고 가느냐 배낭을 들고가느냐 어제 하루 종일 꺼냈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선택한 캐리어. 분명 아무것도 안 넣었는데 20리터짜리 캐리어가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문제는 옷들이었다. 아무것도 안 들고 가자니 그렇고, 들고 가자니 여행가서 패션쇼 할 것도 아닌데 싶기도 하고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가져가기 미묘한 옷들과 한 10분 노려보기 한판 승부를 펼치고 나니 벌써부터 여행이 지겨워지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가는 당일, 비행기표를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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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기상악화로 인해 예정보다 30분 정도, 비행기 출발 시간이 늦어졌다. ⓒ 이유하

여행 가는 당일인데도 설렘은 개뿔! 귀찮고, 무겁고, 짐 많고, 하다 못해 단 오늘의 계획도 안 짜놓은 알짜 무대뽀 여행이 과연 재미있을까 하는 의문감에 (그럼 미리미리 준비하던가) 우아하게 공항에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고 했는데 밀려드는 시간의 압박에. 지금이라도 비행기를 타지 말까라는 고민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기억해 내야 했다. 맨 처음 제주도 여행을 결심한 이유를, 그 기다리는 재미로 살아온 지난 두 달을. 그리고 평소보다 강도 높은(?) 알바를 하면서 하기 싫어도 일하고, 아파도 일해서 모은 깨알 같은 돈으로 간당간당하게 떠나는 여행임을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중간에 기상 악화로 30분 정도 지연되긴 했지만 금방 제주도에 도착했다. 이젠 뭐 하지? 대책없는, 그저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번 제주도 여행. 과연 신바람 나는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제주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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