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기에 만난 새싹과 물방울 보석

[포토에세이] 매발톱 새싹과 봄비

등록 2010.03.05 14:05수정 2010.03.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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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발톱 새싹과 봄비 새싹과 봄비의 흔적, 그 작은 것들이 봄을 불러온다. ⓒ 김민수


매발톱의 새싹이 올라옵니다. 아직 활짝 피어나지 못한 매발톱 새싹은 겨울을 이기고 피어난 강인한 흔적과 이제 막 돋아난 새싹다운 여림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가의 하얀 얼굴에 비친 실핏줄을 닮은 연록의 잎맥에는 수액이 맑은 강물처럼 흐릅니다.


어제, 사순절기를 맞이하여 팔당 유기농단지에서 금식기도를 했다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팔당유기농단지에 공연장과 자전거도로가 생기게 되었답니다.

"지금 충분히 아름다운데, 이곳에서 생명의 땅을 일구며 살아가던 이들의 일터를 강제로 빼앗아가면서까지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놈의 개발주의 망령이 금수강산을 폐허로 만들고 있어. 우리는 종교적으로 사순절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지금 이 땅, 이 곳의 농민들은 몸으로 사순절기를 보내고 있어. 언제 한번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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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발톱 새싹과 봄비 작은 것들이 주는 평온함을 본다. ⓒ 김민수


기독교에서 지키는 사순절기는 부활절을 앞둔 40일간의 기간으로 예수의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며 부활의 의미를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부활, 그것은 죽음이 전제된 것입니다. 죽음이 없었다면 부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은 예수에게 떠넘기고, 부활의 영광은 자신들이 누리려고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난의 의미도 부활의 의미도 퇴색되었습니다.

고난당하는 이 땅의 모든 생명, 그것을 보듬지 않는 사순절기의 각종 행사들은 예수의 부활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40일 금식기도를 한다고 해도 고난의 현장에 있지 않으면, 고난당하는 생명을 위한 기도없는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기도라면 그게 부활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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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발톱 새싹과 봄비 피어나는 새싹이 봄비를 머금고 있다. ⓒ 김민수


저 작은 새싹이 왜 대견스럽고 예쁠까요?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죽음과도 같은 고난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고 솟아오르기 때문에 대견스럽고 예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초록빛 천지인 여름에 만나는 초록생명에서 겨울을 녹이고 피어나는 새싹이 주는 감동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봄의 새싹이 모든 새싹 중에서 가장 예쁘고 대견스러운 것이지요. 그 새싹에 봄비가 내렸고, 새싹은 봄비를 품에 안아 물방울 보석을 만들었습니다. 그 작은 것들끼리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것'들은 진정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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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발톱 새싹과 봄비 물방울 속에 사진을 담는 나의 실루엣이 담겼다. ⓒ 김민수


그런데 지금의 세상은 작은 것을 홀대합니다. 작은 것을 홀대하는 세상은 '고난' 같은 것들의 의미마저도 바꿔버렸습니다.

그저 '고난'에 처한 사람이나 자연은 죄를 지어 신에게 심판을 받는 것 정도로 가볍게 이야기 합니다. 겨우겨우 힘겹게 고난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어깨에 자기가 지고가야 할 십자가를 지워주고는 '하나님께 영광!'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행위가 십자가를 지고 비아돌로로사를 걸어가는 예수에게 침을 뱉는 행위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이비류의 기독교가 판을 치게 된 이유, 그것은 작은 것이 가진 의미를 홀대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 만한 나무가 된다는 것이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무시한 결과를 오늘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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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발톱 새싹과 봄비 봄은 이렇게 작고 낮은 곳에서부터 온다. ⓒ 김민수


봄은 부활의 계절입니다. 죽음을 죽이고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그 부활을 목격하려면 그 죽음, 고난의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현장이 어딜까요? 굴착기로 파헤져지는 4대강에 깃대어 사는 생명들, 도심재개발에 밀려 쫓겨나는 철거민들, 기계처럼 입시공부에만 내몰린 아이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하루 세끼 건사하기 힘들어 절망하는 이들이 있는 곳... 그런데 그런 곳에는 부활의 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니, 보이지 않을 뿐더러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힘쓰는 이들에게 좌파니 빨갱이니 진보니 급진이니 손가락질을 해대고 편을 가릅니다.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 그들의 친구가 되어 썩어 빠진 위선적인 종교와 맞서다가 결국 십자가 형틀에서 죽음을 당한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는 사순절기건만 그를 따른다는 수많은 이들은 끊임없이 죽음을 강요하고, 죽음을 찬양하는 이 세태에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자신들만이 순전한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많은 사순절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순절 #봄비 #4대강 #부활절 #팔당유기농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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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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