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와 대안 중심의 선거연합은 불가능한가

[주장] 선거공학만 남은 선거연합... 진보의 미래 밝힐 수 없어

등록 2010.03.08 12:09수정 2010.03.1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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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윤호중 민주당 수석사무부총장(가운데)과 야5당 관계자, 시민사회단체 운영위원들 이 "2010 지방선거에서 현 정부와 거대여당의 일방적 국정 운영을 저지하고 공동승리를 위해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며 5당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윤호중 민주당 수석사무부총장(가운데)과 야5당 관계자, 시민사회단체 운영위원들 이 "2010 지방선거에서 현 정부와 거대여당의 일방적 국정 운영을 저지하고 공동승리를 위해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며 5당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4일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5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연합을 이루겠다는 선언을 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현 정부와 거대여당의 일방적 국정 운영 저지"가 이번 선언의 가장 핵심적인 목표로 제시되어 있다.


이로써 이른바 '반MB연합'이 일차적으로는 성사된 셈이다. 물론 실질적인 후보 조정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 최종 결과를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일방적 국적 운영 저지"를 핵심 목표로 내건 이 연합은 '진보대연합'은 물론이고 '민주대연합'보다 함량 미달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번 야5당의 선거연합 합의는 '반MB연합'에 불과


혹자는 '반MB연합'이 '민주대연합'과 결국은 같은 말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그 차이에 주목하고 싶다. 무엇에 반대하는 연합과 무엇을 위한 연합은 차이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의 틀에 고착화된 개념이 아닌, 민주주의를 위한 대연합으로서의 '민주대연합'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며 적어도 이를 재구성할 수 있는 틈을 준다는 측면에서 미래지향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


'진보대연합'도 마찬가지다. 이를 몇몇 조직의 통합을 뜻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사고하지 만 않는다면, 진보적 가치와 진보적 대안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진보의 미래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열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인 가능성을 담아낼 수 있는 이 두 갈래의 연합 구상은 그 씨앗조차 뿌려지지 못한 채 '반MB연합'의 그림자에 깔려 질식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들 야5당은 일단 연합을 선언하면서 공동정책은 일차적으로 8일까지 마련한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선후의 문제가 바뀌었다는 지적을 한다. 야5당이 연합을 하는 데 있어서 공동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공동의 정책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연합이 아니라 선거공학적 논리에 다른 모든 것이 밀려났다는 비판인 셈이다.


물론 이들 야5당은 합의문에서 "공동정책을 기반으로 한 가치 중심 연합"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판이 힘을 얻는 것은 멀리까지 거슬러갈 것도 없이 최근 민주당이 연루된 상징적인 두 사건 때문이다.


하나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지방의회마저 4인 선거구제를 폐지하려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근민 전 제주지사의 민주당 영입 건이다. 전자는 정치적 다양성을 가로막고, 보수 양당 체제를 고착화하려는 적극적 시도이고, 후자는 성희롱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받은 인사를 다만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로 끌어당긴 도덕적으로도 도저히 용납키 어려운 처사이다.


공동정책과 가치는 나중에 얹어보겠다고?


이런 가정을 해보자. 만일 민주당이 광역단체장 몇 자리를 다른 정당들에 양보했다고 치고, 야5당 연합이 순항을 했다고 치자. 우근민 전 지사가 야5당 단일 제주도지사 후보가 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 아닌가. 합의를 다 해놓은 다음 이런 문제들은 나중에 해결하면 된다는 변명은 하지 말자.


이 때문에 전국의 여성단체들이 다 들고 일어나고 있는데, 진보정당이라는 간판을 단 정당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문제의 그 정당과 후보 자리를 놓고 밀고 당기는 협상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 과연 아름다운 모습인가.


아무튼 이번 야5당 합의에서 정작 알맹이는 빠져있고, 당선 가능성과 득표율 제고를 위한 야합만이 남은 것처럼 보인다. 필자가 생각하는 알맹이는 적어도 1987년 민주화운동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과 1997년 이래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을 말한다.


너무 과도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종국에 이것이 야5당의 틀에서 관철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논쟁이 되고 조금이나마 국민적 관심을 끌 수는 있어야 한다는 바람은 있었다. 적어도 두 개의 진보정당이 이 논의에 참가하고 있었기에.


안타깝지만, 이로써 여당이 야당이 되고, 야당이 여당이 되어도 대중의 삶의 위기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명박 정부 이전 지난 10년간의 값비싼 경험은 말짱 도루묵이 된 것처럼 보인다. 나름대로 민주당과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던 진보정당들도 이젠 앙상한 조직과 자기 보존 논리만 남겨놓았을 뿐, 미래를 개척하려는 결기는 뒷전으로 밀쳐놓은 것처럼 여겨진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퇴행을 불러일으키는 합의가 될 수도 있어


또한, 이번 야5당 합의가 끝까지 관철된다고 하면, '반MB연합' 그 자체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정치적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정치 구도가 단순한 여야 구분으로 후퇴하게 되고, 야당의 지향점의 차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정당의 내부 민주주의도 후퇴하게 된다. 광역단체장은 물론이고 기초의원의 출마까지 나눠먹도록 판을 짠다는 것은 당원 중심의 정당이 아니라 보스 중심의 정당에서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와 연관된 것으로 국민의 참정권 제약도 무시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났다. 이구동성으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이 위기의 근본 성격을 제대로 짚어야만 공통의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논의는 이를 건너뛴다. 현재의 위기는 단순히 독재정권에 의한 1987년 민주화운동이 만들어낸 민주주의 이전으로의 퇴행 때문이 아니며, 신자유주의 시대에 나타난 민주주의 위기의 일반적인 현상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의 해법, 민주주의 운동의 과제는 단순히 이명박 정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민주회복일 수 없다.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 방향과 그 과제는 1987년 이후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조차 넘어서는 것이며, 이는 1997년 이래 일관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따라서 각종 연합 논의도 단순한 저항연합을 넘어 이러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연합의 성격을 띠어야만 그 긍정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반MB연합'이 다른 모든 논의를 압도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그러한 대안연합 논의의 가능성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연합에 주목하자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MB연합' 이외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주목할 만한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오는 3월 15일에 개최될 '복지국가 제안' 대회다. 이 대회의 제안자는 민주당 몇몇 의원들에서부터 진보정당의 대표자들까지 다양하다. 이들 가운데에는 복지국가를 매개로 하여 진보정치의 통합을 바라는 이들까지 있다.


물론 복지국가라는 말이 매우 추상 수위가 높고, 최근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까지 복지국가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욱 구체성을 확보해야만 그 실체와 방향이 드러나겠지만, 아무튼 저항연합을 넘어서서 긍정어법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한 틀을 만들어보자는 시도라는 점은 일단 긍정적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당이 지난 3월 1일 모든 조직과 개인에게 공식적으로 제안한 '기본소득연합'이다. 사회당은 중앙위원회의특별결의문을 통해 "이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진보의 내용을 채우고, 실질적인 대안연합의 구성에 앞장설 것"이라며 그 취지를 밝혔다.


"기본소득은 정부가 어떤 수급자격이나 요구조건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돈을 지급한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지급되며, 최저생계비 이상 수준으로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출처: <한겨레21>(2010.2.8)


기본소득에 관한 더 많은 정보와 각종 소식은 사회당 기본소득위원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웹사이트 등에서 얻을 수 있다.

지난 1월 말 서울에서 열린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작년 한 해 기본소득을 둘러싼 많은 논의가 있긴 했으나 아직까지 기본소득은 소개 단계에 머물고 있는 수준이라 그 연합의 포괄 범위가 크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사회당이 밝힌 것처럼 "'기본소득연합'은 한국 사회 최초의 대안연합"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터 기본소득을 내건 모든 후보를 지지하고, 다양하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기본소득 의제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기본소득연합'이 선별적이고 시혜적인 복지를 넘어서는 보편적 복지를, 임금노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동사회 혁신을 가장 앞장서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 수탈경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대안 형성을 통해 기본소득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비록 지금은 그 힘이 미약할지라도 가치와 대안 중심의 다양한 선거연합 시도가 정치연합으로 발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진보의 미래를 개척하는 일은 더욱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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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독일 총선을 앞두고 독일 기본소득네트워크가 만든 기본소득 지지 후보 홍보 웹페이지 첫화면 ⓒ 최광은

2009년 독일 총선을 앞두고 독일 기본소득네트워크가 만든 기본소득 지지 후보 홍보 웹페이지 첫화면 ⓒ 최광은

지난해 9월에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는 좌파당과 녹색당이 꽤 선전했었는데, 이 때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후보들에 대한 관심 또한 컸다.


당시 100여명이 넘는 기본소득 지지후보들이 있었고(녹색당 소속 59명, 좌파당 소속 28명, 무소속 34명 등), 독일 기본소득네트워크는 이 후보들을 "Grundeinkommen ist wählbar"라는 슬로건 아래에 지원했다. 이 슬로건을 영어로 의역하면 "You can vote for basic income(당신은 기본소득에 투표할 수 있습니다.)" 정도가 된다.


아무튼 총선 결과 30명의 기본소득 지지 후보들이 당선되었다. 30명의 연방하원 의원 가운데 15명은 녹색당 소속, 5명은 좌파당 소속, 1명은 사회민주당 소속 등이었는데, 이들이 받은 표를 합산하면 모두 2,133,083표였다.


올해 3월에 치러지는 프랑스 지방선거에서도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후보들에 대한 지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2010.03.08 12:09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기본소득 #지방선거 #사회당 #진보정당 #우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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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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